일곱 가지 ‘업(up)’
일곱 가지 ‘업(up)’
1. 클린 업(Clean Up): 깨끗하고 청결하게 자신의 몸을 가꾸라.
손자 녀석이 아무리 귀여워도 냄새나는 할아버지 품에 안기지는 않을 것이다. “난 할아버지 냄새가 싫단 말이야.” 이런 얘기가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면 우선 며느리 볼 낯도 없다. 깨끗하고 청결하게 자신의 몸을 가꿀 필요가 있다.
2. 드레스 업(Dress Up): 멋 부리는 노인이 아닌, 멋을 아는 노인이 되라.
철마다 계절에 맞는 고급 옷, 유행에 어울리는 옷을 입으라는 게 아니라 깨끗이 입으라는 것이다. 블루진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 노인이 있긴 하지만 자기 개성에 맞는 옷, 가급적 계절에 맞는 옷으로 깨끗하고 깔끔하게 나서는 노인이 한결 품위 있게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옳은 얘기다. 우선 깨끗한 용모, 말끔한 첫인상은 그 사람의 품격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멋 부리는 노인이 되라는 게 아니라 멋을 아는 노인이 되라는 것이다.
3. 셧 업(Shut Up): 나이 들수록 말을 아끼고 경청하라.
동창회 모임이나 각종 모임에 나가 보면 유독 혼자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꼭 있게 마련이다. 아는 것도 많으니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失言(실언)할 수 있다. 이런 작지만 잦은 실수, 실언들이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대신 상대방의 얘길 경청해 주고 되도록 박수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게 바로 셧업(Shut Up)이다.
4. 쇼 업(Show Up): 주위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서로 확인하라.
가급적 동창회 모임, 과거 직장의 소모임, 경조사에 되도록 참석해 흘러간 지인들을 자주 만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나이 들수록 늙어 가는 자신의 얼굴도 보여주고 주위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소일하며 늙어 가는지, 얼마나 아름답게 늙어 가는지를 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게 바로 쇼업(Show Up)이다.
5. 치어 업(Cheer Up): 긍정적인 사고로 밝고 건전하게 생각하라.
항상 웃고 기뻐하고 매사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어찌 항상 웃을 수 있겠는가. 달리 말하자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밝고 건전하게 생각하면 기쁘고 웃을 일이 많아질 것이다.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치어 업(Cheer Up)하라!
노후를 위한 돈을 준비하라
6. 페이 업(Pay Up): 지갑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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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당당하기 위해서는 노인들에게도 돈이 있어야 한다. 사진은 지하철 택배 일을 하는 노인들. |
나이가 들수록 약간의 돈은 필요하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매월 최소 50만원 안팎의 경비가 필요하다. 우선 경조사비용과 일주일에 친구 서너 명이 어울릴 소주 값 정도의 인격유지비가 든다. 물론 추렴해서 돈을 낼 때도 있지만 한 달에 한 번쯤은 친구끼리 번갈아 가며 대포 값을 지불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지갑을 열고 페이 업(Pay Up)하라!
그러기 위해선 퇴직 전에 老後(노후)를 위해 별도의 저축이 필요하다. 얼마나 저축할 것이냐는 각자의 능력이나 개인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노후 자금은 꼭 필요하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국민연금은 80만원 안팎이다. 이 돈이면 손자 녀석 과자 값과 인격유지비 정도는 된다. 그러나 노후의 생활비로선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 낮에는 여의도 후배가 마련해 준 사무실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책 포장 작업을 한다. 저녁엔 프리랜서로 다시 상암동으로 가서 방송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 “인생에는 오르막 고개와 내리막 고개, 그리고 설마 하는 뜻밖의 고개가 있는데, 바로 이 뜻밖의 고개라는 인생의 덤과 같은 행운은 어느 날 우연히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이 ‘설마 하는 뜻밖의 고개’는 누구에게라도 뜻밖에 찾아올 수 있다.
바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우선 건강이 담보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 인생의 덤과 같은 행운을 잡았으니 즐겁고 행복하다. 나는 건강이 준비돼 있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고 매일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반드시 ‘설마 하는 뜻밖의 고개’라는 덤과 같은 행운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설마 하는 뜻밖의 고개’에서 덤으로 받은 행운의 몫에서 일정액을 떼어 2년 만기 적금을 불입하고 있다. 용도는 2년 후 해외여행을 떠날 나만의 비자금이다. 새벽에 일어나 정신없이 깃발 따라다니느라 무얼 보았는지 저녁엔 초주검이 되고 새벽에 눈비비고 허둥지둥 헤매는 그런 관광이 아니라 배낭 메고 걷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낯선 땅, 낯선 도시, 낯선 동네를 혼자서 걸으며 고독에 강한 그런 인간의 여행을 하고 싶다.
노인들 스스로 당당하라
7. 기브 업(Give Up): 양보하라.
마지막으로 기브 업(Give Up)하라는 것이다. 이는 체념하고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양보하라는 것이다. 해마다 수백억이 넘는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노인들에게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을 베푸는 서울시가 고맙기는 하지만, 그 누적 적자가 시민들의 세금으로 고스란히 돌아가니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나도 그 시혜를 누리는 한 사람이지만 요즘 지하철을 타면 가끔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가 있다. 물론 가뭄에 콩 나듯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친절이 고맙기는 하지만 내심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다. 아직은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라는 친절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게 다행이다. ‘할아버지’ 이런 얘기가 나오면 나는 정말 지하철을 안 탈 것 같다.
물론 10년, 20년 후면 속절없이 70대 후반에서 80대 후반일 텐데…. 참으로 끔찍하다. 내가 그때까지 이 세상에 버티고 있을려고? 여하튼 그때 일이야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지금은 노인 대접 받는 게 솔직히 싫다.
누군가 그랬다. ‘모두가 친절히 대해 주면 늙음을 자각하라’고. 맞는 말이다. 우리가 노후에 받아야 하는 것은 동정심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인간적인 대우다.
인간적인 대우를 강요할 수 있을까? 요즘 젊은이들이 과연 얼마나 노인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줄까? 기대해서도 안 되지만 노인들 스스로가 당당하게 늙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자리를 양보하면 차라리 “너희들은 온종일 공부하느라 피곤할 테니 앉아서 읽던 책 마저 읽어라” 하고 서서 가는 게 낫다. 노인 티를 내지 않고 오히려 젊은이에게 양보하는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게 옳다.
나는 머리 염색을 하고 다닌다. 젊게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초라하게 보이는 게 싫어서다. 스스로 뒷전으로 물러서는 조그마한 양보가 ‘어른다움의 미학’이다.
요즘 지하철을 무료로 승차할 수 있는 시니어 패스가 나오니 천안을 넘어 온양까지 무임승차로 다녀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전에는 천안에 가서 병천 순대를 맛보고 두어 시간 소일하다 귀경하던 사람들의 나들이 코스가 연장돼 온양까지 가서 온천욕도 즐기고 오후 느지막에 돌아오는 노인들이 많아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