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봉
2007. 6. 23. 16:21
 | | ▲ 녹음이 짙은 오대산 상원사 | | ⓒ 박도 | | 버스를 네 번 갈아타다
묵직한 통증으로 병원에 갔더니 양의사도 한의사도 모두 내게 휴식을 권했다. 하기는 내가 생각해도 몸을 너무 혹사했다. 이참에 가까운 오대산이라도 다녀오고자 혼자 카메라만 덜렁 메고 집을 나섰다.
강원도 횡성군 안흥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정선행 직행 시외버스를 타고 방림삼거리에서 내려 무작정 버스를 기다렸다.
30여 분이 지나자 장평행 노란 완행 시외버스가 멎었다. 곧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대화에 닿았다. 때마침 장날이었다. 조선달이나 허생원 차림의 장돌뱅이는 보이지도 않고 어딘가 장날 풍경이 썰렁해 보였다. 요즘 시골 장은 어디나 슈퍼나 마트에 밀려 피서철 지난 바닷가 풍경이다.
장평에서 곧장 진부행 버스로 갈아탔다. 10여 분 뒤 진부에 닿았지만 오대산 상원사 월정사행 버스는 금세 떠난 뒤라 50여 분을 기다려야 했다. 여기부터가 내 데뷔작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의 배경 무대다.
비전향 장기수의 딸 나선미와 아내를 잃은 신문기자 한명훈이 강릉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폭설로 버스가 대관령을 넘지 못하고 진부에서 머물자 그들은 달을 벗 삼아 눈길도 마다 않고 월정사로 향하는 것으로 작품이 시작된다.
 | | ▲ 오대산 상원사 월정사로 가는 길 | | ⓒ 박도 | | 달밤
아름다운 달밤이었다. 월정사로 가는 도로 양편 전나무 가로수가 눈을 듬뿍 이고 있었다. 절이 가까워질수록 계곡이 좁아지고 숲이 점차 우거졌다. 계곡에는 시원시원히 곧게 뻗은 전나무들이 우람했다.
"달밤 경치가 무척 환상입니다."
그네가 달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마치 시베리아 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네, 그래요."
"이런 밤, 좋은 길벗을 만나 더욱 운치가 있네요." "저도 그래요. 오늘 한 기자님 못 만났다면 지금쯤 그 집 건넌방에서 졸고 있을 테죠. 아찔해요, 얼마나 따분할까요."
"절벽에서 떨어지다 나뭇가지를 잡은 기분입니다." "네? 과장이 좀…." "글쎄요. 좀 두고 봅시다. 그 나뭇가지 옆에서 산삼까지 발견할 지도." "기자 분들은 추측도 잘 하나 봐요."
그네는 싱긋 웃으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푸르스레한 달빛에 비친 그네의 모습이 무척 요염했다.
-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 중에서
그들은 걸어서 30리 길을 걸어갔지만 지금 나는 버스를 타고 그 길을 쫓고 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인데 30년이 지난 뒤지만 그제와 다름없이 월정사로 가는 길에는 전나무 가로수가 이열종대로 열병하듯 서 있었다.
 | | ▲ 오대천 계곡 | | ⓒ 박도 | | 그해 여름
마침 내가 탄 버스가 상원사까지 간다기에 월정사는 하산 길에 둘러보기로 하고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월정사를 지나면 곧 다리가 나오는데, 40년 전에는 시멘트다리가 아니고 징검다리였다.
 |  | | ▲ 상원사 어귀 | | ⓒ 박도 | 1965년 여름, 그때 내가 다녔던 대학 불교학생회가 여름 수련회를 월정사에서 가졌던바, 참가학생 30여 명이 상원사에 갔다가 월정사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30여 명이 갑자기 불어난 오대천을 건너다가 개울 중간에서 급류를 이기지 못한 학생 10여 명이 그대로 물살에 휩쓸려 조난당했다.
그들 희생자 가운데는 김아무개 여학생도 있었는데, 1년 선배로 내게 무척 호의를 베풀어줬다. 그때 조난당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좀 더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새 버스는 상원사 앞에다 내려주었다. 기사가 20여 분 시간이 있다고 하여 서둘러 상원사로 올랐다.
상원사는 예닐곱 번 더 다녀간 곳이라 모두가 눈에 익었지만 갈 때마다 언저리 경치에 탄복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하지를 앞둔 이 즈음은 초록이 가장 왕성할 때라 그 빛깔을 좋아하는 나는 그 황홀감에 한껏 탐닉할 뿐이었다.
 |  | | ▲ 상원사 동종 | | ⓒ 박도 | 천 년 고찰 상원사가 한국전쟁 중에도 전화(戰禍)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방한암 스님 덕분이었다.
한국전쟁이 치열할 즈음 국군은 상원사 월정사가 적의 거점이 된다 하여 월정사를 소각한 뒤 상원사마저 소각하려 하였다. 그러자 방한암 스님은 법당과 함께 소신(燒身) 공양하겠다고 하여, 그 굳은 신념에 감복한 군인들이 대신 문짝만 떼어 불사르고는 발길을 돌려 이 고찰을 지켰다는 현대판 전설이 전하고 있다.
국보 제36호인 상원사 동종을 눈요기만 하고는 뜰에서 사방 산 능선을 조망한 다음 월정사로 가고자 내려오는데 극락에서 사는 멧새 한 마리가 내 발길 앞에서 아장거린다. 그는 이 흔한 자동차의 홍수 속에, 텅 빈 버스라도 놓칠세라 서둘러 하산하는 내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놀자고 재롱을 부렸다.
"멧새야, 예가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인 줄 내 어찌 모르랴만 다음에 보자구나."
 | | ▲ 상원사 들머리 전나무 숲 | | ⓒ 박도 | |
 | | ▲ 상원사 뜰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다 | | ⓒ 박도 | |
 | | ▲ 상원사 뜰에서 바라본 동쪽 산 능선 | | ⓒ 박도 | |
 | | ▲ 상원사 계곡의 초록 잔치 | | ⓒ 박도 | |
 | | ▲ 속세로 가는 길 | | ⓒ 박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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