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판타스틱!'
지난달 10일 개장한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을 살펴본 히딩크 감독이 던진 말이다. 규모와 디자인 그리고 최고의 관람환경을 보장하는 현대식 시설에 국가대표 축구팀 사령탑을 맡고 있는 그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세계의 언론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각국의 방송사들은 2002년 월드컵 개막전이 열릴 경기장의 개장을 주요 국제뉴스로 다루며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월드컵 개막을 200일 앞둔 시점이었다. 난지도와 월드컵, 생태복원의 드라마 방패연을 본 뜬 아름다운 디자인과 6만 4천여명의 인원이 쾌적하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축구전용경기장은 전 세계 축구팬들을 매료시킬만 했다. 그러나 왜 그곳에 경기장이 들어섰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행정구역상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1568번지. 그곳은 지난 20년간 쓰레기를 매립해 왔던 '난지도' 일대다. "환경적으로나 접근의 편의성에서 상암동보다 유리한 지역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그곳은 쓰레기와 뱀과 개구리만 있는 땅이었단 말이죠. 어떻게 이곳에 월드컵 경기장을 지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작심을 하고 난지도를 결정했습니다. 그곳은 지난 78년부터 서울시의 쓰레기를 모아 처리하고 냄새나는 버려진 땅입니다. 그런데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 곳을 다시는 소생시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겁니다." 당시 '월드컵주경기장건설단'을 총괄하고 있던 김학재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상암동 경기장의 부지 선정과 관련하여 환경에 대한 각별한 의지가 있었음을 피력한다. 월드컵을 관람하러 온 전 세계의 축구팬들에게 우수한 현대식 시설 뿐만 아니라 환경재생의 드라마를 한 번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내년에는 이 곳에 나비를 방사하고 100만평 규모의 밀레니엄 공원 조성을 완성할 계획에 있다고 말하는 그는 다소 들뜬 모습이다. 수도 서울 개발에 청춘을 바친 엔지니어 서울시 행정2부시장이란 도시계획국, 교통관리실, 건설국, 주택국을 산하에 두고 수도 서울의 교통과 건축문제와 관련한 제반의 사항을 총괄하는 차관급 직위다. 흔히들 '도시공학'에서 말하는 하드웨어적 성장이 모두 이곳에 집약되어 있다. 1972년 기술고시에 합격하고 서울시 도시계획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김학재 동문은 지난 1996년 서울시 행정2부시장에 임명되기까지 오직 서울의 도시계획과 도시정비, 지하철건설에 관한 부서에만 근무해 왔다. 지금의 부시장 직위도 일종의 '외도'라 말하는 김 동문이 스스로를 '엔지니어'라 소개하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70년대 초에 당시 노면전차를 걷어 내고 1호선 지하철을 만드는 일을 시작으로 주로 지하철 건설 부문의 일들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아, 저 사람은 전문적으로 땅 파는 사람이구나' 했으니까요. 서울에 지하철 공사가 진행중일 때는 항상 땅 속에 있었고 그 외의 기간에는 오직 도시계획일만 했습니다. 지금껏 건설한 서울의 지하철 노선이 3백 킬로미터가 넘습니다. 사실 서울의 지하 교통망은 이제 건설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교통의 주요 환승지점만을 연결하며 서울을 엑스자로 관통하는 급행전철(지상전철)만 구축되면 철도에 의한 교통은 완비되는 셈이지요." 김 동문은 수도 개발 30년사를 직접 주도한 영원한 '서울인'이다. 이 도시의 구석구석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는 오늘날 서울의 모습을 갖추는데 평생을 보냈다. 최근까지도 서울의 수요는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였기에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살아왔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오늘보다 '쾌적한 내일'과 지금보다 '편안한 미래'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에 어찌 다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시민은 '꿈'을 먹고살고 그는 '민원'을 먹고산다. 이것은 공무원의 숙명이다.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청사진을 그리다 "30년 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시청이 아주머니들에게 점거를 당했습니다. 소위 '물'을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도봉산 꼭대기 등 한 두 지역만을 빼놓고 상수도 보급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600만톤의 공급 시설을 가지고 있는데 실수요량은 400만톤이니 충분한 수량을 가지고 있지요. 서울시의 주택보급률도 90%에 육박합니다. 이제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이지요." 서울시는 인구가 1천 2백 만 명까지 확장될 것으로 예상하고 수요 인프라를 구축해 왔다. 그러나 김 동문은 인구가 최근 수년 간 1천만명의 수준에서 머물고 있어 다소 여유가 있지만 미래의 도시계획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민원의 쟁점도 보다 다양해졌고, 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점들을 잘 고려하여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욕구와 수요는 과거와는 다른 형태와 쟁점으로 늘어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에 대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일단 양적으로 인프라가 미비할 때에는 무엇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버스를 타도 사람이 많아 유리창이 깨지고 지하철에서 임산부가 질식을 하기도 했지요. 지금은 지하철이 서울의 모든 주요 지점을 관통하고 버스회사는 승객이 없어 도산을 합니다. 이제 시 행정의 초점은 무엇을 넓히고 확장하는데 있지 않고 시민의 삶의 질을 보다 높이는데 있습니다." 시민들의 마음 속에 건설하는 '지하철 9호선' 김 동문은 지난달 '자랑스런 한양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평소에 상운이 좋지도 않았고 상을 받아 본 적도 드물었기에 받는 손이 몹시도 부끄러웠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앞으로 더욱 성실하게 정진하라는 채근처럼 느껴졌다며 얼굴을 붉힌다. 모교의 후배들에게도 똑똑하고 명민한 사람보다 궂은일, 힘든 일도 마다 않는 성실한 사람이 되라 조언하던 그가 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정색을 하고 앉는다. "재작년에 모교에서 다시 박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워낙 오랫만에 공부를 하니까 무척 어려웠지요. 공업수학은 또 재수강을 했어요. 학교 어디서도 도대체 대충대충 넘어가는 게 없더란 말입니다. 교수님께서 '부시장님, 이 점수로는 학점 못 드립니다' 하시는 겁니다. 이처럼 요즘은 사회의 모든 곳에서 옛날의 구태의연한 사고와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시민의식에 관한 얘기를 하려던 참입니다." 김 동문은 살기 좋은 도시 건설을 위해 남은 일은 시민과 행정이 함께 협력하며 개선해야 할 정신적인 부분에 관한 것이라 말한다. 시정은 보다 투명해지고, 시민들은 보다 성숙한 의식을 갖춤으로써 앞선 문화와 환경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소프트한' 과제들이 앞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김 동문이 새로 건설중인 지하철 '9호선'은 땅 속이 아니라 서울시민 모두의 마음을 지나서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