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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조은영 기자]
조선시대로 복귀하는 올 하반기 사극의 키워드는 ‘정조 대왕’이다.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만 무려 세 편에 이른다.
이들 작품들이 일정부분 절대 권력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왕실 중심의 이야기로 선회했다는 점에서 대선 정국을 앞둔 시기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무엇보다 대중에게 내제된 기호를 읽어내고 그들이 원하는 시대정신을 작품 속에 구현해 내는 것은 드라마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때문에 왜란과 호란 이후 대내외적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 한 채 기운이 쇠락해 가던 조선 왕조의 마지막 개혁군주 정조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은 지금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과 접점을 이루는 동시대성이 정조에게 존재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 시대는 왜 200여년 전 조선의 마지막 개혁군주 정조의 부활을 원하는 것일까?
정조는 강력한 군주제를 기반으로 개혁을 주도하며 조선 후기 중흥시대를 이끈 임금이다. 국왕이면서 스승인 군사(君師)를 자처할 정도로 당대의 석학이었으며 수 십 차례 잠행과 거리 능행을 즐길 만큼 백성과 한 몸이 되기를 원했던 왕이다. 그 만큼 이상적 지도자로서 정조가 가진 매력이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다.
또한 정조는 당론만이 모든 것의 우선이 되는 상황에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고 세손 시절부터 자신을 지지하는 시파와 자신을 반대하는 벽파 사이에서 목숨을 위협 받았을 만큼 정치적 혼란기 속에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즉위 초 자파의 국왕이 아니라는 이유로 왕을 시해하려는 암살단이 궁내에 난입하는 등 성공하지 못 한 모반만 수차례다.
이 때문에 정조는 정치체제를 혁명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조선의 미래는 없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정치의 전면에 나선 특별한 군주가 되었다. 공론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의 정치체계 속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개방된 사회로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개혁 세력을 창출해 내려 했던 정조의 정치가적 면모는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각 당파의 정치적 주장을 따져 더 나은 쪽을 택하는 의리의 탕평을 취하고 인사에서도 국왕을 중심으로 지지파, 반대파를 동시 기용하는 한편 서얼의 파격적인 등용을 통해 경직된 신분제를 완화했던 정조가 공존의 미학을 갖춘 정치지도자로 평가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것은 현 정부의 출범을 주도했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과 전반적인 리더십 부재에 빠진 종국의 현실에 대한 대중의 결핍 혹은 판타지가 반영된 최적의 소재일 수밖에 없다. 문화적 측면 뿐 아니라 정치, 사회 각계각층이 다양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신문물과 실학사상이 활발히 유입되며 사회 내부적으로도 새로운 욕망과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던 조선 후기의 시대상과 암살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드라마틱한 정조의 삶이 다양한 대중 장르로 변환 가능하다는 강점도 존재했다. 현재 제작 중이거나 방영을 시작한 정조 관련 드라마들이 각기 다른 시각 다른 장르의 재미를 추구하는 다채로움을 지닌 것도 그 때문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조진원 씨는 “정조 시대에 전개된 역동적인 사회 변화와 정치, 사상적 모색이 미완의 개혁으로 남게 된 시대적 비극은 오늘날까지 기나긴 역사적 파장을 미쳤다”며 “드라마적 요소가 탁월하다는 강점도 있지만 과거를 통해 다양한 현시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소재”라고 평했다.
한 시대를 격랑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게 되는 변화의 기점, 200여년 전 정조의 시대가 다채로운 드라마로 부활되고 있는 지금 어떠한 동시대적 반응들을 끌어낼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KBS 2TV '한성별곡-正'에서 정조 역을 맡은 배우 안내상)
조은영 helloey@news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