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피맛골` 옛 멋 살리며 재개발
동봉
2009. 10. 19. 07:08
'피맛골' 옛 멋 살리며 재개발
입력 : 2009.10.19 05:14
서울시 '피맛골 보전 대책'
'뒷골목' 원래 모습 복원… 전문가 '늦었지만 다행'
서울 광화문 일대의 오래된 건물을 헐고 고층건물을 짓는 재개발 사업에 밀려 절멸 직전에 놓였던 서울 종로 1~6가 '피맛골'이 가까스로 살아날 전망이다.아직 옛 건물이 헐리지 않은 곳은 최대한 원래 모습대로 보존되고, 이미 옛 건물이 헐리고 신축건물이 들어서게 된 곳도 뒷골목만은 가능한 한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된다. 서울시는 이러한 내용의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피맛길 보전 대책'을 마련했다고 18일 밝혔다.
- ▲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서울 종로 뒷골목‘피맛골’이 고층건물을 올리는 재개발로 자취를 잃어가고 있다. 건물들이 헐려 나가 휑한 모습의 피맛골 어귀.
피맛길은 서울 종로 1~6가 대로 뒤에 숨어있는 명물 뒷골목이다. '피마(避馬)'는 말(馬)을 피해다닌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활보하는 고관들을 피해서 돌아 다니던 뒷골목이 피맛길이고, 피맛길을 따라 형성된 맛집 촌이 피맛골이다. 좁은 골목을 따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선술집·국밥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잦았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종로구 청진동 일대 피맛골을 재개발하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서울의 개성을 말살하는 막무가내식 재개발"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남은 구간이라도 최대한 옛 멋을 살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현재 이 구간에는 해장국집·보석가게·술집 등이 영업 중이다. 서울시는 오래된 전신주를 없애고 전선을 땅에 묻는 한편, 건물주가 지저분한 간판들을 정비하고 낡은 페인트를 새로 칠할 때 시(市) 예산으로 비용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또 건물 정비 사업이 통일감 있고 세련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전통 디자인 가이드 라인'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지난 5월 한 민간 건축회사에 1억7000만원을 들여 피맛골 남은 구간을 멋스럽게 꾸미는 마스터플랜을 발주했다. 최종안은 내년 3월쯤 나올 전망이다. 서울시는 연말까지 서울시 관리들과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관 협의체도 만들 계획이다.
◆재개발 진행된 곳도 뒷골목 만들어진다
- ▲ 중국집‘신승관’모습. 서울시가 뒤늦게나마 피맛골의 옛 멋을 살리겠다고 나섰다.
서울시는 이 구간에 대해서도 디자인 가이드라인과 유지관리지침을 정해서 재개발 사업 시행자와 상가 입점자들이 따르게 할 방침이다. 건물 바깥뿐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도 포괄하는 지침이다. '사라지는 맛집'에 대해서는 서울시가 이름난 맛집들이 그 자리에서 다시 영업할 수 있도록 재개발 사업 시행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임차료를 낮춰주는 등 혜택을 줄 계획이다.
이에 따라 '열차집' 등 아직 영업 중인 몇 안 되는 맛집들이 예정된 철거 작업 뒤에도 제자리로 돌아와 전통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이미 설계가 완성된 건물이라도, 실력있는 민간 건축가들이 기존 설계자들과 협동해서 설계를 어느 정도 변경하도록 장려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민간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실시해 입상자를 확정한 상태다.
◆전문가들 "늦었지만 다행"
서울시가 '피맛골 살리기'에 나선 것은, 국내외 관광객들로부터 "문화·관광적 가치가 뛰어난 서울 도심의 명소를 생각없이 무너뜨렸다"는 비판이 빗발친 데 따른 것이다. 피맛골의 터줏대감들이었던 오래된 맛집들은 대개 재개발 사업으로 들어선 고층건물 상가에 입주했지만, 비싼 임차료 때문에 음식 값이 오른 경우가 많다. "푸근한 옛 맛이 없어졌다"는 손님들 불평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건축가 승효상씨는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반가운 결정"이라고 했다. 승씨는 "전 세계 이름난 도시들 중 올드 시티(old city)를 보존하지 않고 파괴하는 곳은 서울이 유일했다"며 "공공기관뿐 아니라 시민과 민간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해 피맛골을 살려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피맛길을 시작으로 '순라길'·'돈화문로'·'태화관길' 등도 차근차근 정비해 '도심속 문화공간'으로 살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