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왼쪽부터 조수환·임정재·장만수· 양은숙· 김양수 씨.
“요즘은 사위 결정하기 전에 장인들이 꼭 같이 사우나 가잖다네요. 건강진단서 교환하듯… 잘 따라오면 ‘오케이’이고, 같이 사우나 안 하려고 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고.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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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60대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그들이 모이면 무슨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낼까? 서초노인종합복지관의 은퇴자 사회활동 프로그램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60대 5인을 만났다. 장장 3시간. 예전과는 다른 삶과 황혼계획 등….
하하 호호! 노인들이 수다에 푹 빠졌다. 아니, 대한민국에서 60대에게 ‘노인’이라면 큰 실례인 줄 안다. 하지만 용서하시라. 달리 부를 명칭이 없어서 그럼을…. 아파트단지 그늘 한 편에서도, 전철 안에서도, 심지어 젊은이들의 아지트인 스타벅스 커피숍에서도 이들의 왁자지껄한 이야기 소리는 멈출 줄 모른다.
 | ▶ 참석자 김양수(65·서초3동 거주) 양은숙(69·서초4동 거주) 장만수(66·서초3동 거주) 조수환(65·반포동 거주) 임정재(60·반포동 거주) 장소 서초노인종합복지관 1층 일시 2007년 8월14일 |
| 인생의 노년기를 맞이한 60대들에게 삶은 곧 ‘즐거움’이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춤을 배운다. 뜻 깊은 일에 참여하고 싶어 봉사활동에 팔을 걷어붙인 사람도 있다. 자식만을 위해 헌신하느냐고? 천만의 말씀. 그 동안 힘들게 일하며 살아온 자신을 위해 노년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이들에게 수다는 건강한 삶을 위한 비타민이며 활력소다.
60대가 변했다. 늙은이로 조용히 살아가는 대신 팔팔한 삶을 꿈꾼다. 어느 세대보다 적극적으로 ‘삶의 낙’을 찾는 것이 오늘날 60대의 모습이다. 이들은 댄스스포츠를 배우고 사진 기술을 익히는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며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예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와 달리 배운 사람도 많고 문화예술도 조금은 즐길 줄 아니 멋진 노인 행세도 가능하다. 굳이 자식들과 붙어 살 이유도 없다.
간혹 왕성하게 일하던 젊은 날을 떠올리면서 상실감에 젖기는 한다. 그러나 그런 대로 잘 자라 이제는 가정을 가진 자녀들이 있고, 거기 다시 아들 딸이 달려 있으니 외로움은 덜하다. 경제력이 달리는 사람은 모르겠으나 웬만하면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게다가 예전 아파트 노인정이 아니라 지역 단위로 만들어진 복지시설을 통해 새로운 문명과도 접하고 또래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좋다. 나이 들어 대화만큼 좋은 약이 없다잖은가?
김양수 이렇게 비가 내려 축축한 날 억지로 이야기하자고 모여 앉으니 이상하네. 여름휴가 이야기를 하면 이 딱딱한 분위기가 좀 풀릴까 몰라. 나는 아들네 회사에서 제주도 콘도를 빌려 줘서 거기 따라갔다 왔어요. 사실 손자들이 같이 가면 자유롭게 놀지 못하니 안 가려고 했는데 결국 끼어서 갔다 왔네요. 장마가 지는 바람에 비를 안고 다녔죠. 실내 풀장에서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양은숙 지금 (김양수 씨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멋진 사진을 많이 올리셨더라고요.
김양수 비가 와서 무지개가 근사하게 떴더라고. 그런데 아직 블로그에 사진을 많이 못 올렸어요.
조수환 휴가가 젊었을 때하고 나이 들었을 때하고 달라요. 전에는 내가 알아서 계획 짜서 여행도 다니고 그랬는데 손자·손녀 생기고 나니 여가활동이 애들한테 초점이 맞춰지더라고요. 나는 이번 휴가도 3대가 속초로 다 같이 갔어요. 비가 와서 더 좋던데요? 흩어지지 않고 화목하게 모여 앉아 삼겹살도 구워 먹고 소주도 마시고…. 이번에는 우리 며느리한테 억지로 술을 먹였어요. “60대인 나도 마시는데 너도 한 잔 해라!” 하면서….(웃음)
양은숙 그럼, 당연히 마셔야지. 누구 명령인데….(웃음)
조수환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해요.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밥값 내게 하고…. 꼭 비싼 밥이어야 하나, 뭐. 그럴 때는 애들 즐겁게 해주려고 유머 같은 것도 쫙 늘어놓고, 술 마시고 흐트러지는 모습도 좀 보여주고 그래요. 그래야 애들이 나를 덜 어려워하지. 휴가 가서 그렇게 재미있게 해주고 나니 아들이 돌아와서 “그런 유머는 어떻게 아셨어요” 하고 물어보더라고.
임정재 여름휴가는 따로 안 갔는데, 제가 이번에 환갑이라 22일에 남편과 유럽여행을 갈 거예요. 아이고. 언제 내가 환갑이 됐나 싶네요.
장만수 요새는 다들 그렇게 여행 보내주더라고.
양은숙 나는 환갑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 호호호~
장만수 우리 가족들은 다들 개성이 강해서 그런지 뿔뿔이 흩어져 살아. 딸들은 다 시집갔고 아들은 하나 있는데 서른이 훌쩍 넘도록 장가도 안 가고…. 집사람은 딸이 미국에 있어서 그곳에 잠시 가 있어. 나 혼자 사니 자유롭고 너무 좋아!
조수환 이산가족이 편하기는 하지.
 | ▶ “애들 즐겁게 해주려고 유머 같은 것도 쫙 늘어놓고, 술 마시고 흐트러지는 모습도 좀 보여주고 그래요. 그래야 애들이 나를 덜 어려워하지.” - 조수환(65) 씨 |
| 장만수 휴가를 가려고 해도 날씨가 좋아야 물에 발이라도 담그는데, 요새 날씨가 안 좋아서 날짜를 못 잡겠어.
양은숙 우리 중에 애들과 사는 사람이 있던가? 요새는 다들 같이 안 살 걸?
김양수 나는 아들이 둘인데, 큰아들과 같이 살고 있어요. 며느리를 딸같이 생각하며 사는데 지금까지는 아주 잘 지내요. 처음에 따로 살다가 애 봐달라고….(웃음) 그래서 집사람과 둘이서 애를 봐주고 있는데 사실 혼자 보기는 힘들더라고. 둘이 같이 봐야지.
장만수 몇 살인데?
김양수 19개월이야. 눈을 뗄 수가 없어. ‘오늘은 마누라가 애 보는 거 꼭 도와 줘야지’ 하고 있었는데, 여기 나오느라 못 도와줬네.
장만수 며느리는 직장에 다녀요?
김양수 대기업에서 일하느라….
조수환 우리도 아들이랑 며느리가 다 직장에 다녀서 아침에 출근할 때 손자를 우리 집에 내려 놓고 퇴근할 때 데려가요. 그래서 밖에 약속이 있는 날이면 우리 둘이 일정 조율을 해야 돼. 집사람이 ‘몇 월 몇 일 볼 일 있음’ 하고 달력에 표시를 해 놔. 그럼 그 날은 나도 스케줄을 맞추는 거지.
부부끼리 사는 60대가 대부분… 육아문제 걸려
장만수 그런데 보수는 안 받나?
조수환 보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맨 처음 두 달은 애들이 준다는 것을 안 받았어요. 그런데 애들은 부모님들이 수입이 있든 없든 일단 드려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는 거예요. 나중에 들어 보니 우리 집사람 친구가 ‘애들한테 받은 돈을 모아 돌려주는 한이 있어도 일단 받으라’고 그러데요. 안 받으면 애를 못 봐준다는 의미로 알아듣는다면서…. 지금은 애들이 매월 50만 원씩 봉투에 탁 넣어서 줘요.
임정재 우리 아들은 처음 두 달은 50만 원씩 가져오더니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아예 안 줘.
장만수 달라고 그래요!
임정재 달라는 소리가 안 나오잖아.
김양수 아… 그럼 나는 너무 과잉 징수하나 봐. 나는 100만 원 받거든.
장만수 많이 받을수록 좋아. 술 한 잔 사야겠네.
김양수 아이구! 술이야 얼마든지 사 드려야지.
임정재 용돈도 참 말하기 민감하거든. 요구하는 것 같아 미안하잖아.
장만수 미안할 게 뭐야. 애도 봐 주는데.
 | ▶ “아들은 하나 있는데 서른이 훌쩍 넘도록 장가도 안 가고…. 집사람은 딸이 미국에 있어서 잠시 그곳에 가 있어. 나 혼자 사니 자유롭고 너무 좋아!” - 장만수(66) 씨 |
| 김양수 용돈도 좀 박하게 받는다 싶은 사람들 보면 안 됐어요. 잘나가던 사장님·사모님들이 돈 몇 푼 자식한테 받아쓰게 되다니 원….
조수환 그건 그렇지. 노인들 사는 데 돈이 뭐 그리 많이 드느냐고 물으면 할 말 없지만 경제력 없어지고 어깨 축 처진 사람들 보면 측은해요. 남의 일 같지 않고….
김양수 용돈 액수는 천차만별인 것 같아. 적게 받으면 적게 받는 대로 살고, 많이 받으면 좀 더 풍족하게 쓰는 거고.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수입이 없으니 받는 용돈에 따라 주눅이 들기도 하고 기가 살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조수환 얼마 전에 신문 기사를 봤는데 육아에 돈이 많이 들어 부부들이 고생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 맡겨도 용돈을 수고비 명목으로 더 얹어 드려야 하니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다’라고 적혀 있더라고. 그 용돈이라는 것이 참 모호해. 받기도 미안하고 안 받기도 뭐하고…. 괜히 서로 오해 생기겠어.
양은숙 부부가 직장에 다니면 부모들이 사회봉사 하는 셈치고 애들 봐 주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나는 애들이 외국에 나가 있어 손자 봐줄 일은 잘 없네.
임정재 손자 손녀 잘 봐 줘야지. 요즘 젊은 부부들이 달리 애 안 낳나? 맞벌이하며 키울 방법이 없으니 미루고 미루다 결국 나이 들어 포기하는 거지. 기껏해야 하나!
장만수 우리 아들은 나이가 서른다섯인데 장가를 안 가.
조수환 감도 물러져야 떨어지듯 때가 돼야 가는 거지.
장만수 하도 이상해서 5년 전에 같이 온천을 간 적도 있어. 혹시 이상이 있나 살펴보려고…. 하하하!
조수환 요즘은 사위를 결정하기 전에 장인들이 꼭 사우나에 데리고 갔다 온다네요. 건강진단서 교환하듯…. 잘 따라오면 ‘오케이’이고, 같이 사우나 안 하려고 하면 문제가 있는 거고….
김양수 우리 애들도 작은애가 먼저 결혼했어.
조수환 우리 아들도 서른여섯인데 아직 장가를 못 갔어요. 모 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는데…. 선은 여러 번 봤지. 인연이 안 되니 장가를 못 가데요.
양은숙 요즘은 남자나 여자나 결혼을 아주 심사숙고해서 하니까….
장만수 나도 사실 결혼을 늦게 했어요. 학교를 늦게 나와 서른하나에 했어.
조수환 나는 스물아홉에 했어요.
장만수 늦은 것도 아니네요. 그때는 군대도 3년이었으니 대학 마치고 결혼하면 그 나이였지.
김양수 나도 스물아홉에 했어요. 늦었지.
지나친 교육열은 훈계해도 소용없어
양은숙 나는 직장에 오래 다녀서 결혼을 좀 늦게 했어요. 스물여덟에 턱걸이로 갔죠. 그때는 서른 넘기면 큰일 나는 줄 알았지. 남편도 그때 서른하나였는데 서른둘 되기 전에 하자고 하도 그래서 결국 12월에 결혼했어요.
임정재 나도 스물여덟에 갔어요. 많이 늦었죠. 그래도 얼굴이 동안이라…. 호호! 그렇게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더라고요.
양은숙 그러고 보니 다들 결혼이 늦었네. 요새야 얼마든지 늦게 해도 괜찮죠. 나이 들어서 애 낳는 게 걱정돼 문제지….
조수환 이왕 결혼한다면 빨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결혼 후에 부인과 함께 즐기는 인생이 있으니까.
양은숙 에이…. 그건 모르는 말씀이에요. 일찍 결혼한 사람은 ‘더 있다 갈 걸. 더 골라보다 갈 걸’ 이런 생각이 들거든. 그런데 나이 다 차서 간 사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간 것이니 후회가 없어요.
김양수 자녀들 교육문제를 생각하면 일찍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20대에 낳고, 30대에 기르고, 40대 한창 일할 때 대학 졸업시키고. 요즘처럼 늦게 가면 나이 마흔에 애가 두 살이에요. 그 아이가 대학 졸업할 때면 아버지가 60대잖아요. 요즘 같은 세상에 60세까지 일할 수도 없고.
양은숙 에이…. 앞으로는 고등학교만 딱 나오면 애들이 독립해야 할 거에요. 지금처럼 집 얻어주고 그러지 않을 걸요? 늦게 가도 상관없어요.
김양수 요즘은 유치원 가는 데도 80만 원씩 든다고 하네요. 영어도 원어민 있는 유치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그러고…. 좋은 유치원은 줄 서도 못 들어간다네요.
임정재 요즘은 세 살만 지나도 영어학원 간다고 하던데요.
장만수 우리 큰딸은 시댁이 부자야. 지금 네 살짜리 애 영어 가르친다고 미국에 가 있잖아요. 사위는 사업한다고 한국에 남고. 그래서 집사람이 미국에 가 있는 거예요.
임정재 기러기 아빠로 만들었네.
장만수 내가 성질이 좀 있어서 사위 불러다 한소리 했어요. “야! 어릴 때부터 미국 데리고 가면 양놈도 안 되고 한국 놈도 안 된다. 어릴 때 소꿉장난도 하고 놀고 그래야지 영어 배운답시고 거기 데려다 놓으면 뭐가 되겠느냐?” 그런데 내 말은 안 먹히지.
임정재 당연히 안 먹히지!
인터넷은 필수! 블로그와 카페는 선택!
조수환 노인의 생활에 관한 책을 최근에 읽었는데 “나이 먹어 2세들의 교육문제에 너무 간섭하지 말라”고 하데요. 우리가 자라던 시절 생각하면 지금 세대와 안 맞지. 그러니까 세대차이가 나는 거예요. 그저 애들을 지켜보고 도와주는 것에 그쳐야 할아버지·아들·손자가 더 친밀해지는 것 같아요.
양은숙 요즘 청년들이 취직을 못하는 것은 자기만의 기술을 갖지 못하고 너도나도 배우는 그런 것만 죄다 하고 있어서 그래요. 앞으로는 자기만 할 수 있는 일을 개발해야 살아남아요. 대학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요. 일할 수 있는 직종이 수천, 수만 가지잖아요.
장만수 우리나라 교육부 제도가 바뀌어야 해.
양은숙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극성을 부려서 그래!
임정재 요즘 TV 봐요. <강남엄마 따라잡기> 드라마만 봐도 그래. 엄마들이 아주 극성이야.
김양수 우리나라 제도가 잘못돼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라고 봐요.
 | ▶“이사 가려고 해도 세금 다 떼이고 나면 이만한 집을 또 구할 수 없어요. 집도 놓치고 돈도 놓칠까 봐 못 파는 거지.” - 김양수(65) 씨 |
| 양은숙 옛날에는 기술 배우다 기름때가 묻어도 그걸 자랑하고 다녔는데. 지금은 기술자는 사람 취급 안 해줘 싫다고 하잖아요.
임정재 나는 며느리한테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시켜 줘라’라고 항상 말해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 쪽으로 발전하게 해 줘야지 공부만 하라고 말하면 안 돼요.
양은숙 아무리 그래도 친구들 이야기 듣다 보면 귀가 솔깃해진다고. 이러다 우리 애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해서….
장만수 애들 교육에 간섭은 안 해도 일종의 신념은 있어야 해.
양은숙 아이들 교육 이야기하자면 오늘 날 새도 다 못해. 대신 우리 인터넷 이야기 해요.
김양수 인터넷? 알고 싶은 게 있으면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하고, 메일도 보내고, 카페 운영도 하고, 블로그도 좀 하고….
장만수 사실 회사 다닐 적에는 컴퓨터는 부하 직원들만 하면 되는 것인 줄 알았어요. 완전 컴맹이었지. 그런데 복지관에서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참여해 딱 1년을 배웠는데…. 이야! 내가 범접하지 못했던 다른 세계가 열리는 거예요. 이제는 거의 중독이 돼서 인터넷을 안 하고 있으면 막 궁금해져. 요즘에는 내 블로그에 비망록을 쓰고 있어요. 그런데 블로그에는 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수백 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잖아. 무식한 말 한마디라도 잘못 쓰면 안 되니까 말 한 마디도 검색해서 쓰고 그러다 보니 공부도 많이 되더라고요. 생활의 활력소도 되고.
임정재 나는 나 혼자 비공개로 해 놓고 쓰는 카페가 하나 있어요. 쓰고 싶은 글이나 사진이나 전부 거기에 올려놔요. 우리 돼지띠들이 모이는 카페도 있는데 거기 회원들이랑 모여서 등산 번개도 자주 해요. 너무 재미있어요.
조수환 컴퓨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각자 다들 친목모임 많이 하시잖아요? 예전에는 그런 곳에 가면 전화번호 적어내라고 했는데 이제는 이메일도 적더라고요. 그 이메일 칸에 적느냐, 안 적느냐에 따라 신문명을 누리는지, 아닌지가 판가름나는 것 같아요.
양은숙 요즘에는 시청이나 구청이나 무료로 인터넷 쓸 수 있는 곳도 많으니까요.
양은숙 인터넷도 좋지만 새벽 운동도 너무 신나! 나이 들면 현상유지를 위해서라도 운동은 필수죠. 집 근처 스포츠센터에 매일 수영하러 가요. 오후에 복지관에서 듣고 싶은 수업이 있으면 와서 듣고요. 나이 들고서는 이것저것 정말 많이 했어요. 하모니카도 배우고 미술도 하고. 사실 못할 이유가 없죠. 시간도 있지, 이런 복지 시설 이용할 수 있지. 오히려 지금이 젊었을 때보다 더 황금시대라고 말하고 다녀요. 돈 들어갈 일도 별로 없어요. 옷 사 입을 것도 아니고, 하다 못해 타고 다니는 전철도 공짜고, 이 복지관 프로그램도 공짜니까요.
조수환 부지런하게 사느냐 마느냐에 따라 노후 인생이 달라지는 거지.
양은숙 골골 90이냐, 팔팔 100이냐! ‘골골’거리면서 90세까지 살 것인가, ‘팔팔’하게 100세까지 살 것인가! 구구팔팔이 요즘 우리 사이 유행어지.
장만수 지금은 ‘뉴 실버’시대야. 여유롭게 살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면서 모아 둔 돈을 좀 쓰고 살아야 한다니까.
양은숙 돈 가진 사람은 상위 1~5%밖에 안 돼요. 우리 나이 사람들은 수입이 없잖아요. 마냥 쓸 수는 없죠.
장만수 퇴직금 안 나오나?
양은숙 퇴직금 그거 고려 적에 다 써버렸지. 우리처럼 이렇게 활동하는 사람들은 형편이 낫지만 대부분 노인들은 수입이 전혀 없잖아요. 자식이 용돈 안 주어서 쫄쫄 굶는 신세 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장만수 연금은 안 나와?
양은숙 연금 그거 얼마나 나온다고…. 그거 가지고는 생활이 안 돼요. 너무 모르시네요. 점심값 다 내세요.
장만수 하기는 나는 지금도 내 사업을 해서 고정수입이 있기는 해요.
양은숙 우리는 수입이 없어 못 쓴다고. 나는 집 한 채 갖고 있는 것뿐이야. 이걸 유사시에 파느냐, 그냥 가지고 있느냐, 그게 관건이에요.
김양수 유사시에 쓰려고 평생 벌어 집 한 채 장만해 놨는데, 지금은 또 세금을 엄청나게 많이 떼잖아요. 팔아서 싼 곳으로 이사 가려고 해도 세금 다 떼이고 나면 이만한 집을 또 구할 수 없어요. 집도 놓치고 돈도 놓칠까 봐 못 파는 거지. 꼼짝없이 여기에 묶여 있는 거야. 정말 우리나라 세법이 바뀌던가 해야지….
양은숙 세법이 바뀔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있는 사람한테 돈 받는 것이니 그것으로 생활이 안 되면 줄여서 살아야지, 왜 큰 집을 짊어지고 살아요?
김양수 큰 집도 아니야. 내가 수입이 있으면 세금 내고 다 하겠는데 지금은 수입이 없으니까….
양은숙 자식한테 받는 100만 원 있잖아요?
김양수 그건 수입이 아니지. 내가 버는 게 아니잖아요. 그걸 넙죽넙죽 다 써버리면 큰일이게? 지금 우리 사는 집이라도 있으니 그 수입이 생기는 거지.
양은숙 하기는 지금 우리 나이에 재산이라고는 집 한 채지.
전 재산이 집 한 채, “물려줄 생각은 없어”
장만수 남편 분이 연금 많이 나올 것 같은데? 공무원을 꽤 오래해서….
양은숙 어휴! 정부가 뭐 그렇게 펑펑 연금을 줄 것 같아요? 최소한 생활할 만큼만 주는 거지.
조수환 연금이라는 것은 정부가 돈이 많아서 주는 게 아니라 연금제도가 있어서 그 제도에 따라 주는 거예요. 학교 교장 30년 정도 했으면 연금을 한 달에 200만 원 넘게 받아요.
장만수 남편 분께서 공무원 꽤 오래 했다고 들었는데….
양은숙 250만 원씩 받는다고 해도 요즘 워낙 큰 돈을 써대는 세상인데요, 뭘. 유치원 학생한테 한 달에 100만 원씩 들어간다는데….
조수환 어쨌든 노후에 200만 원씩 고정수입이 있고 다른 빚이 없다면 살기에는 참 괜찮죠.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 없죠.
양은숙 집도 정리하고 작은 집에서 살아야 한다니까!
장만수 아이고! 그 죽는다는 소리 좀 하지 마!(웃음)
양은숙 다들 그렇지. 재산이라고 해야 다들 집 한 채! 여기 근처 아파트 한 채 있으면 그게 몇억 원씩 하니 그것을 늘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어요. 이것을 쪼개 더 작은 데로 갈 것인가, 그냥 있을 것인가 고민을 하지. 그런데 일단 머릿속에서는 이 집을 현금 몇억 원이나 마찬가지로 셈을 해요. 요즘에 발표된 정부 정책은 아파트를 팔지 못하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 주택연금을 준다는 거잖아요. 집을 담보로 생활비를 준다는 거죠.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생각이 없으니 주택연금도 해볼 만하지. 집 한 채, 그게 오로지 내 재산이니까. 80~90세까지 살면서 그거 하나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물려줄 수 없지. 재벌 아니면 사실 물려줄 게 없어.
김양수 엄청 오래 사시려고 하시네요. 90세까지.(웃음)
장만수 젊었을 때 쓰던 씀씀이와는 달라요. 꼭 써야 할 데만 쓰거든. 젊을 때야 기분대로 막 써대기도 했지만 지금 노인들끼리 어디 가면 제일 많이 낼 때 한 10만 원씩 내. 어디 1박2일로 놀러 가도 5만 원이면 좋은 곳에 가서 좋은 음식 먹고 잘 놀다 오는 거야. 매일 그러는 것도 아니야. 한 달에 한두 번 하는 것인데 그것을 왜 못해? 노인이 사는 데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김양수 그래도 돈은 많으면 좋지 뭐.
장만수 그거야 나도 알지. 나도 젊은 시절 한창 벌 때는 멋 모르고 막 쓴 적도 있어. 그런데 그런 것 하나도 안 남아. 결국 남는 것은 가족이야. 보통 남자들은 젊을 때 밖에서 일하고, 밖에서 놀고…. 가족과는 시간을 많이 못 보내지. 이제 와서 가족과 살가워지려고 하는데, 요새는 마누라들이 더 바빠.
왕년에는 산업역군… 후회와 회한도
조수환 저는 기업체에서 정년까지 다 마치고 퇴사했어요. 퇴사할 때 참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회사에서 고생하며 일한 날들이 스쳐 지나가는데, 허무한 기분도 들고….
김양수 다들 그렇죠. 청춘을 바쳐 일한 곳인데. 그래도 정년까지 마치셨으면 잘 되셨네요. 정년 못 채운 사람이 수두룩해요.
조수환 은퇴 후 무기력해지는 증상이 심해지면 노후 설계에 지장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럴수록 몸을 더 움직여야지. 퇴직금을 어떻게 굴릴지도 좀 구상하고요.
 | ▶ “나이 먹어서는 싸울 일이 없더라고. 싸울 필요도 없고. 우리 부부는 둘이 살기 때문에 스포츠댄스 같은 취미생활을 전부 같이 해요.” - 양은숙(69) 씨 |
| 양은숙 젊으면 몰라도 지금은 깜빡깜빡 하고…. 재테크를 하기가 힘들어. 지금은 정리하는 시기이지, 뭘 다시 벌어들이는 시기는 아니거든.
조수환 투기보다 안정성을 고려해서 현상유지를 할 수 있는 상품으로 해야죠. 절대 손해나지 않는 걸로.
양은숙 그런 게 뭐가 있어요? 알려주세요.
조수환 예금을 한다고 해도 시중 일반 은행보다 상호저축은행이 금리가 더 높고, 상호저축은행보다 마을금고의 금리가 더 높죠. 5,000만 원까지는 금융감독원에서 보장해 주니 그런 곳에 예금해도 불안하지 않게 분산해서 예금하면 되죠. 가족별 명의로 분산해 넣어도 되고요.
양은숙 시중은행에서도 우리는 예금 금리에 대해 비과세되잖아요.
조수환 비과세도 일정 금액까지만 돼요. 우리가 이 나이에 위험하게시리 어디 강원도에 땅을 살 수는 없잖아요. 안정적이면서 금리가 높은 데다….
양은숙 요즘 상호금융은 금리가 얼마나 돼요? 영 불안해서….
조수환 금리는 다 다르죠. 불안해 하실 것 없이 5,000만 원만 넣으면 된다니까요.
양은숙 재테크도 그렇지만, 옛날이랑 달라진 점이 또 있어요. 요즘에는 남편이랑 잘 안 싸워서 좋더군요. 나이 먹어서는 싸울 일이 없더라고. 싸울 필요도 없고. 우리 부부는 둘이 살기 때문에 스포츠댄스 같은 취미생활을 전부 같이 해요.
장만수 부부가 복지관에서도 만날 찰싹 붙어 다니더구먼. 전형적인 잉꼬부부예요.
조수환 부부들끼리 취미가 안 맞는 것도 젊었을 적에 한창 취미 생기고 신나게 놀 때 남편과 부인이 따로 놀아서 그런 것 같아요. 친구들 보면 이제는 부인과 덜렁 단 둘이 남아서 뭘 해야 할지 막막해 하던데요. ‘진작 같이 좀 놀러 다닐 것을’ 하며 후회하는 친구놈도 있었어요.
임정재 우리도 취미가 너무 달라서….
양은숙 취미가 다른 사람들은 같이 못 다니시지. 그런데 보통 손주를 봐주는 부인들은 영감님이 집에 있으면 귀찮으니까 나가라고 막 내쫓는 것 같아요.
김양수 나가라고 하는 것은 좋은데 이제는 잠도 다른 방에서 자래요. 코 고는 소리 듣기 싫다고….
양은숙 그것도 일리가 있어요. 나이가 들면 밤에 100번도 넘게 깨요. 아주 많이 잤다고 생각하고 일어나 보면 겨우 두 시간 잤더라고요. 남자들은 전립선에 문제가 있으면 밤에 자주 깨서 화장실을 간다고도 하고…. 한 이불에서 자다 보니 한 사람이 계속 일어나 들썩거리면 옆에 있는 사람이 잠을 못 자요. 그래서 따로 자는 사람도 있는 거죠.
조수환 부부관계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사람이 나이 50이 넘으면 여성의 몸에 남성호르몬이 많아지고, 남성의 몸에 여성호르몬이 많아져요. 신혼 때 얌전하던 부인이 갑자기 거칠어져 소리를 지르고 한다고요. 생리적으로 남자가 위축될 수밖에요.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 경제적 능력이 없어져 자신감이 줄어드는 반면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친구들 만나 놀러 다니면서 활동적으로 변해요. 남자들에게 “너 젊어 바람도 피우고 술 먹고 별 짓 다했으니 이제부터 집 지켜라. 이제 내 마음대로 산다” 이런 식으로 여자들이 활개를 치게 되죠.
양은숙 에이…. 그런 건 아니고, 여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친구를 많이 만나는 것은 맞아요. 그런데 영감님들이 집에 있으면 점심도 챙겨 줘야 하니까 자꾸 나가라고 하는 거지. 남자가 수입이 줄어 그런다기보다 예전에 하던 가닥들이 있어서 여자 말을 고분고분 안 듣고 고집을 부리려고 해서 그래요. 부부가 취미가 맞으면 좋은데…. 여기 오시는 분들만 해도 남자분이 오면 부인이 안 오고, 여자 분이 오면 남편이 안 와요. 부부가 노년에 같이 어울리는 문화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장만수 그래도 경제적 능력이 없어지면서 남자들이 초라해지는 것은 사실이지 뭘. 나는 그래도 적게나마 고정수입이 있는데, 친구들은 회사에서 잘리거나 정년퇴직하고는 어찌할 바를 모르더라고. 노는 것도 놀아 본 사람이 알거든. 만날 회사에만 처박혀 일밖에 모르던 친구는 지금도 집에서 멍하니 있거나 가끔 친구와 어울려 술이나 마시는 정도야. 우울해 보이더라고.
김양수 그래서 젊을 때 마누라한테 잘하라고 하는 건가?
양은숙 아,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하는 거 아니야? 나이 들어 회사에서는 자리가 없어도 사회에는 자리가 많잖아. 회사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전문 분야도 있을 테니 그것을 살려 사회봉사에 참여해 보라고 좀 권해 주세요.
임정재 우리 부부는 원래 많이 싸워요. 취미가 달라서 그런 건지 원…. 싸우는 원인도 참 별 것 아닌데.
장만수 젊으니까 그렇죠(임정재 씨는 이 자리에서 제일 나이가 적었다).
김양수 더 늙으면 기력이 없어서 싸우지도 못해요. 소리치고 싶어도 기운이 없어요.(웃음)
조수환 한 마디 하면 두 마디, 세 마디 더 나오니 이제는 아예 안 건드려.
양은숙 그래 봤자 반찬만 더 나빠질 텐데….(웃음)
김양수 그런데 사골국 끓이면 제일 겁난다고 합디다.
양은숙 아, 여행 간다고…. 여행 간다는 뜻이지.
김양수 그게 한 1주일에서 보름치 되거든. 그렇게 오래 여행을 갔다 오겠다는 뜻이지.
친목회에, 여행에… 외출 잦은 60대 여성들
장만수 라면 끓여 먹으라는 것보다는 낫네.
양은숙 내가 다니는 스포츠센터에 비슷한 연령대의 여자분들끼리 서로 정말 친해요. 집에 밥숟가락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로요. 한 달에 한 번은 꼭 그들 멤버끼리 승합차 타고 여행을 가더라고요. 그럴 때 남자들은 다 집에 혼자 있는 거지.
장만수 같이 가지, 왜?
양은숙 여자들끼리 가는데 남자가 어떻게 따라가? 여자 7~8명이 모여서 가는데….
 | ▶ “나도 논현성당에 다녔는데, 요즘에는 고해성사 하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 가기 싫어져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거라 안 할 수도 없고….” - 임정재(60) 씨 |
| 김양수 손자 보기 전에는 자주 모이던 고등학교 동창 멤버가 있어요. 그 멤버의 부인들끼리도 모여서 온천이고 어디고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손자 돌보느라 못하지. 마누라가 많이 답답한가 봐.
조수환 나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다들 잘나가던 사람들이 요즘에는 다 애 보느라 집 밖에 못 나오네요. 한때는 산업의 역군이었는데 말이죠.
김양수 왕년에 안 그랬던 사람 여기 어디 있나?(웃음) 황혼 녘에는 다 이렇게 사는 거지. 부인을 도와 주시고 한 30만 원 달라고 하세요.
김양수 한 15만 원 줍디다.(웃음)
조수환 15%밖에 도움이 안 돼서 그런가 보다. 더 열심히 하면 올라갈 수도 있어요.
김양수 그래도 내 용돈은 충분히 됩니다.
양은숙 그럼. 전철 공짜고, 밥도 여기 복지관에서 2,000원이면 먹는데.
김양수 국민연금도 통장으로 들어오니까요.
임정재 나도 이번에 국민연금 타 가라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제 통장으로 입금되게 해 놓고 왔어요.(웃음)
장만수 나는 국민연금이 얼마 안 돼서 한 번에 타서 다 써 버렸어.
김양수 부은 만큼 주니까, 뭐….
임정재 그래도 타니까 좋던데요?
장만수 나도 뭐 좀 물어봅시다. 남자들도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 있는 것이 더 편하지 않아요?
김양수 네. 나는 밖에 나오는 것이 좋아요. 일부러 여기 복지관을 통해 독거노인 도우미를 해서 1주일에 3일, 하루 4시간씩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85세 노인이 장암·위암 다 걸려 고생한 사람인데 나보다 더 팔팔해요. 아침에 가 보면 항상 옷 입고 등산 가시더라고요.
양은숙 등록돼 있는 독거노인은 복지관에서 반찬도 해 드리고, 전화도 드리고, 도우미가 직접 방문하기도 하죠.
장만수 나도 독거노인인데….
양은숙 수입이 있어서 안 될 텐데?
김양수 가서 신고를 잘 해야지 뭐.(웃음) 돈 내고 신청해야겠구먼.
노인들의 사회 진출 돕는 교육 프로그램 절실
장만수 나는 월·수·목요일에는 탁구 하고, 나머지 시간은 우리 ‘서초 Leader’s Corps’ 기자단 활동에 ‘올인’을 해요. 양재천을 쭉 걸어 다니며 느끼는 감상과 사진을 시리즈로 기자단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하고. 집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어. 여기 복지관에서 수업받는 것도 있으니까요. 내가 기계치여서 사진 찍는 기술도 요즘 배우고 있어요.
양은숙 얼마 전에 노인들이 참가하는 탁구대회가 복지관에서 있었는데, 예선에서 떨어졌어요. 9월에 스포츠댄스대회도 하는데 또 예선에서 떨어질 것 같아.
임정재 나도 집에는 거의 붙어 있지 않아요.
조수환 나는 30년 가까이 테니스를 치고 있습니다. 늘 국립 현충원 앞에 있는 테니스장에서 치는데, 거기 가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많아요. 올해 73세라는 분도 봤어요. 젊었을 때부터 하던 운동은 나이 들어서도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골프도 치고요.
양은숙 나는 아침에 수영을 하고 1주일에 몇 번 복지관에서 스포츠댄스를 배워요. 요가와 에어로빅 같은 것은 집에서 몸 풀기용으로 가끔 하고요.
김양수 나는 기계를 가지고 하는 운동은 반쪽이라고 생각해서 잘 안 하고 등산을 가끔 합니다. 에어로빅을 하고 싶은데 남자를 받아주는 곳이 잘 없어서요.
양은숙 에어로빅은 시작하지 마세요. 저도 옛날부터 했는데 이제는 안 해요. 체중이 무거운 사람들은 몸에 무리가 가는 것 같아요.
김양수 그래도 에어로빅 할 때는 지금보다 날씬했어요. 허리도 3인치나 줄고….
임정재 나는 3~4정거장을 걸어서 다녀요. 논현동 집에서 여기까지 걸어와요.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요.
마사이족이 걷는 법대로 따라 해 보세요. 마사이족이 그 특유의 보법 때문에 무병장수한대요.
임정재 나는 마술도 배우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봉사활동에 활용할 수도 있고요.
양은숙 우리 복지관 내에 ‘Old People For Active Life’라고 ‘OPAL’이라는 모임도 있어요. 말씀하신 대로 마술 공연을 하기도 하고 어린이집에서 동화책을 읽어 주기도 하는 노인 봉사 모임이에요. 사실 봉사활동도 교육을 잘 받고 나가서 해야 성과가 있는데…. TV에서도 노인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 별로 없어요.
임정재 일요일 아침에 뽀빠이 이상용 씨가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양은숙 전체적으로 노인들의 교양 수준을 높이려면 그런 프로그램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아.
조수환 전철에서 노인들이 자리를 비키라고 너무 지나치게 굴기도 하는데, 사실 노약자석에는 임산부와 장애인도 앉게 돼 있거든요. 이런 일이 있었대요. 상체는 멀쩡한데 다리 한 쪽이 의족인 장애인이 노약자석에 앉아 있었는데, 한 노인이 그것을 보고 막 욕을 해댄 거예요. 결국 그 사람이 다른 칸으로 옮겨 갔는데, 그 사람이 안 보일 때까지 욕을 했대요. 사람들이 다 노인을 욕하는 거야.
양은숙 그게 가부장적 행태예요. 집에서 밤낮 큰소리치고 살다 밖에서도 똑같이 행동하거든요. 상대방 입장도 생각 안 하고 ‘괘씸하다’고 화부터 내니, 이게 안 되는 거죠.
임정재 어느 아가씨가 노약자석에 눈을 감고 앉아 있어서 어떤 노인이 일어나라고 막 다그쳤대요. 아가씨가 ‘나도 돈 내고 이 전철을 탔다’ 그러자 그 노인이 하는 말이 “여기는 돈 안 낸 사람만 앉는 곳”이라고 했대요.
공짜 지하철, 어떨 때는 더 부담스러워…
장만수 그것은 다 옛날 노인네들이고, 요즘 60대들은 그런 사람 없어. 나는 사실 지금도 누가 자리를 양보해 주면 기분이 나쁜데?
조수환 나는 노약자석 근방에는 얼씬도 안 해.
김양수 전철을 탈 때도 상황을 잘 보고 서야 해요. 노약자석에 서기도 좀 그렇고. 일반 좌석에 가면 젊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좀 그렇고…. 결국 항상 엉거주춤하게 출입문 쪽에 서 있어요.
조수환 누구 앞에 가서 서면 일어나라고 하는 것 같잖아.
장만수 젊은 애들 앞에 서면 내가 더 신경 쓰인다니까. 애들이 나를 신경 쓸까봐…. 나도 아직까지는 서서 견딜 만하니까.
김양수 공짜 전철 타면서 혹시 돈 내고 타는 사람들에게 폐 끼칠까 눈치를 보면서 타요.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여기 있는 분들은 다 종교생활 하세요? 나는 원불교를 다니고 있는데, 나이 들어 하는 종교생활도 좋아요. 사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종교를 갖는 것이지, 그 종교에 푹 빠져 아집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 생활의 여유와 인격 수양을 위해 종교가 필요한 것이지, 종교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적성에 맞는 종교를 찾다 원불교를 믿게 됐죠.
양은숙 나는 학교도 기독교 학교를 다녔어요. 시댁 어른들도 장로님이셨죠. 예전에는 교회에 안 가면 막 불안하고 그랬어요. 벌을 받을 것 같고, 일이 잘 안 풀릴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어느새 아주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 같아요. 이제는 아예 무신론자 비슷하게 돼 버려서 마음이 편해요. 그래도 더 나이 들면 교회에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조수환 나는 천주교예요. 사람이 마지막에 죽음 단계에 가면 종교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고 해요. 죽음을 맞이할 때 인간이 다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종교가 그런 두려움을 완화해 주거든요. 나이 들어서는 뭐든 종교를 하나 갖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임정재 나도 논현성당에 다녔는데, 요즘에는 고해성사 하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 가기 싫어져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거라 안 할 수도 없고….
장만수 나는 원래 무신론 쪽인데 무늬만 불교입니다. 문득 생각날 때마다 깊은 절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기도 합니다. 가끔 대구 능인사나 수유리 화계사에 가서 등을 켜 놓고 ‘저 왔습니다’ 하는 정도죠.
양은숙 교회도, 성당도 봉사활동을 참 많이 하잖아요. 거기 한 번 빠지면 엄청 바빠져요. 그런데 남편들은 부인이 교회나 성당에서 살아도 속으로는 싫으면서 아무 말 안 해요. ‘그래. 딴 데 가서 엉뚱한 짓 하는 것보다 낫지’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자들이 교회 봉사에 빠지는 걸지도 몰라.
장만수 슬슬 오늘 자리 정리하고 나머지 수다는 저녁 먹으면서 마저 해봅시다.(웃음) 저부터 말할 게요. 이제는 노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져야 해요. 무조건 고지식한 사람들이라고 여기지 말고요. 노인들도 분발하고 있습니다. 저희처럼 열심히 봉사활동 하며 사회에 참여하는 노인들이 생각보다 아주 많습니다.
조수환 노인들 중에는 재력이 있고 건강이 나쁘거나, 건강이 좋고 재력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불행한 경우는 건강과 재력이 모두 없는 노인이죠. 복지제도가 아직 미흡해서 많은 취약 한 계층의 사람들이 복지 혜택을 못 받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의 손길이 많이 필요해요.
양은숙 머지않은 미래에 일하는 사람 3명이 노인 한 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조사 결과를 봤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해야 젊은 사람들의 짐을 덜어 준다고 생각해요. 또 우리 노인들도 젊은이들로부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임정재 수다가 왜 이리 거창하고 엄숙하게 끝나나? 그래도 한 말씀. 우리 노인들 삶 하루하루를 나름대로 보람 있게 보내요. 사실 60대 노인, 그 말이 안 맞지. 이렇게 젊게 사는데, 노인이라고 해야 해? 노령화사회가 반드시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월간중앙 9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