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월 30일 남산국악당에서 선보인 동기(어린이)정재인 무산향을 추는 11살의 배주희 어린이. 어린이가 올라 추는 누대같은 것을 대모반이라 부르는데, 실제 이 크기에서 어른이 춤을 추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해서 현재 무산향 대모반의 크기는 악학궤범이 이르는 것보다 훨씬 크게 제작하고 있는 실정이다. | ⓒ 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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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사극의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방송사들 간 경쟁도 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극의 배경이 주로 왕실인 것도 따로 이유를 캐어볼 일이지만 어쨌거나 요즘 사극은 주인공 얼굴만 비치는 것에서 벗어나 실감나는 영상을 확보하려고 노력중이다. 궁중행사에 꽤 신경쓰는 것도 그런 모습 중 하나다. 궁중의 잔치를 실감나게 볼 수 있었던 최초는 아마도 2002년 국립국악원이 무대에 올린 '태평서곡 왕조의 꿈'일 것이다. 이 공연은 지난 4월 세종문화회관에 다시 올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쩔 도리 없는 일이기는 하나 그 잔치를 복원이나 재현으로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춤추는 사람들의 나이이다. 사극 열풍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사극 <대장금>이나 내시들을 통해 궁 안 형편을 바라본 최근 사극 <왕과 나>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왕을 모시는 일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악학궤범 등 왕실문화를 기록한 책들을 보면 실제로 궁중무용에 소용되는 소도구들이 실제 사용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독무로써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춘앵전>이나 <무산향>에는 각각 돗자리와 대모반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그것들을 악학궤범 크기로 할 경우 어른은 춤을 추기가 매우 어렵다. | ▲ 8살부터 11살까지 어린 동기 8명이 선보인 향발무 | ⓒ 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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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0일 저녁 8시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태후마마 칠순잔치날'은 과거 조선시대 궁중잔치의 실제를 상상케 해주었다. '여령동기 춤잔치'라는 부제를 붙인 이날 공연은 말처럼 어린 여자어린이들이 어려운 궁중무용인 정재를 선보였다. 정재독무의 대표격인 <춘앵전>과 <무산향>을 비롯하여 <향발> <포구락> 그리고 <학연화대처용무합설>까지 8살에서 11살의 앳된 무용수들이 춤을 선보였다. 공연은 팔음의 악기소리에 맞추어 팔풍(八風)을 순조롭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 팔일무로 열었다. 객석을 통해 고종황제 역과 명헌태후가 입장하고, 황제가 태후께 술을 올린 후 <선유락>으로 궁중연희의 첫문을 열었다. 남혜은 어린이의 <춘앵전>과 어른들의 무고, 검무가 이어졌다. 어린이 8명이 보여준 동기행발과 가인전목단, 박접무가 뒤를 이었으며, 배주희 어린이의 동기 <무산향>과 동기 <포구락>이 선보였다. 동기 <포구락>을 보니 비로소 <포구락>의 상과 벌이 그럴 듯해보였다. <포구락>은 포구문(입판) 구멍에 공을 던져 넣는 일인데, 어린이라면 몰라도 어른은 넣지 못할 일이 없을 듯했다. 그것을 떠나서 어린이들이 하자니 그것이 분명 놀이였음을 실감케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 둘과 어른들이 함께 어우러진 <학연화대처용무합설>로 잔치의 악을 마치고 황제와 태후가 퇴장하는 것으로 공연의 막을 내렸다. 이 공연은 정조가 모친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베푼 잔치를 재연한 '태평서곡 왕조의 꿈'과는 달리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 명현태후의 칠순잔치를 배경으로 삼았다. 좁은 무대와 한정된 인원으로는 복원이나 재현이란 말을 쓰기 곤란하지만 적어도 지금껏 당연시 여겼던 무용수들의 실제나이를 과거에 근접하게 했다는 점은 우리 무용사에 굵은 한 줄을 남길 일이 틀림없다. | ▲ 정재 독무의 대표격인 춘앵전을 추는 남주희 어린이. | ⓒ 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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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예악사상을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기에 궁중의 모든 행사는 매우 엄격하게 준비되고 치러진다. 궁중의 잔치는 술잔을 바치는 예와 악기연주와 노래, 춤이 어우러지는 악이 펼쳐진다. 그 준비를 위해서 많은 어린이들이 겨우 걸을 정도의 나이에 궁에 들어가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왕 앞에 서게 된다. 실제로 과거 조선에서는 여령(여자무용수)의 나이가 16세만 되어도 노기(老妓)라 하여 더 이상 춤을 추지 못하고 다른 업무로 전환했다고 한다. 지금껏 어른들의 춤만 보아온 인식으로는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록이 그러하고, 이날 공연을 보면서 사실보다는 정서적으로 그것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무용수들의앙증스런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짐을 느꼈으니 그럴 법도 하다는 것이다. 실제 정재의 대명사인 심소 김천흥 선생이 14세에 마지막 무동으로서 순종 앞에서 <춘앵전>을 추었던 기록이 있다. 이번 공연이야 작년부터 겨우 어린이들을 모아 지도했지만 조선 궁중에서야 눈 뜨면 잠들기까지 연습만 했을 것이니 분명 그 솜씨 또한 지금의 어른들보다 훌륭했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과거와 같은 교육을 수행할 수 없는 현대에 들어서는 어쩔 수 없이 어른들이 그것을 대신할 뿐이다. | ▲ 어린이들이 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서 포구락이 놀이가 될 수 있음을 실감케 하였다. 뒷편에 선 포구문 상단의 작은 구멍에 공을 넣으면 꽃을 주고 실패하면 얼굴에 먹을 칠하는 벌을 주는 내용을 담은 정재 중 하나인 포구락. | ⓒ 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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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도 춤 자체의 완성도를 보다는 어린이들의 순음지기를 느꼈는지 얼굴에 흐뭇한 미소들이 저마다 달렸다. 그러나 흔히 있는 어린이 재롱잔치가 아니라 엄격한 공식 공연이기에 아쉬움도 없지 않다. 작년부터 춤을 가르쳐 이날 무대에 올랐으니조금 이른 감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이 공연은 예의 춤들처럼 한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단체 집중육성지원을 받아 향후 3년간 동기(童妓)를 육성한다고 하니 분명 앞으로는 더 나은 춤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가깝게는 오는 7월 스페인 사라고사 엑스포 한국의 날에 출연하고, 12월에는 송년공연으로 국립국악원에 다시 오른다. 이번 공연 안내에 어디에도 음악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주최측 말로는 한 발 그러나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열 걸음도 넘는 변화가 있었다. 국악 작곡가이기도 한 박일훈 아트컴 판 이사장의 의지가 반영된 이번 음악의 변화는 국악 최초의 퓨전그룹 슬기둥의 전 멤버였던 홍동기가 맡았다. 새로이 변화된 음악은 춤의 역동성을 살리는 데는 도움이 된 듯하나 정악에 귀 익은 사람에게는 낯선 감도 있었다. 이번 정재연구회의 공연은 악사를 비롯해 65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민간단체로서는 대단한 규모이다. 국립국악원이 국가기관으로서 궁중무용의 중심에 섰다면 민간에서는 정재연구회(예술감독 김영숙)가 그 줄기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동기정재를 선보인 것은 국립국악원도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기에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동기문제는 비단 3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더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할 프로젝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들을 위한 예비학교가 있고, 최근 많은 청소년들이 국제예술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내고 있듯이 동기정재 또한 좀 더 확대된 육성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궁중무묭이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긴 해도 현대에 들어 그것을 가장 올바르게 전승하고 있는 것은 우리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우리를 따라잡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있기에 문화정책 당국이 전과 다른 관심을 가져야 그 정통성과 우월함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 ▲ 어린이(배주희.남예은) 둘과 어른들이 함께 어우러진 학연화대처용무합설. | ⓒ 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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