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
입력과정 展
동봉
2008. 7. 10. 06:30
당신을 향한 시선은 누구의 것인가
입력시간 : 2008.07.08 03:12
- 서울 창성동 갤러리팩토리에서 최병일씨의 개인전 《입력과정 전》이 열리고 있다. 최씨는 전시장을 암실로 바꿔놓았다. 유리로 된 갤러리의 입면에 검정색 시트지를 부착해 일광을 차단한 것이다. 그러나 작은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는데, 바로 그 앞에 작품 〈과정 A를 위한 장치〉를 설치했다. 이 장치는 갤러리 내부로 외부의 풍경을 끌어들이는 카메라 옵스쿠라의 일종으로, 바로 뒤에 정방형의 간유리 패널이 부착돼있어 그리로 아래위가 뒤집힌 영상이 맺힌다.
이 영상을 바라보고 있자면, "옛 서역의 상인들이 사막에 텐트를 쳤을 때, 구멍으로 들어온 빛이 텐트 안에 외부의 풍경을 뒤집힌 영상으로 맺게 했다"는 사진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그런데 최병일의 영상엔 뒤집히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길 건너편 남의 집 쪽문 위에 거꾸로 설치해놓은 전자시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게 무슨 복잡한 장난인가 싶지만, 다 이유가 있다. 작가는 광학적 기계 장치들을 통해 기억과 이미지 그리고 언어의 경계면을 탐구해왔다. 풀어 말해, 〈과정 A를 위한 장치〉는 관람객에게 전자시계 그 자체를 바로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카메라 옵스쿠라의 입장에서 갤러리의 외부와 내부를 하나로 매개하고, 그를 통해 탈(脫) 인간적인 시선의 존재를 드러내려 애쓴다. 이러한 기계의 광학적 시선은, 지하철 자동 사진기 부스에서 우리를 긴장시키는 미지의 그것과 같은 종류다. 인간이 기계를 통해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이상화된 시점에 제 눈을 맞추려 애쓰는 관람객을 쏘아보는 꼴이다.
- ▲ 최병일씨의 설치 작품〈과정 B를 위한 장치>. /갤러리팩토리 제공
- 한편 〈과정 B를 위한 장치〉는 좀 더 복잡하다. 관람자는 60개의 정육각형 거울로 구성된 벌집 모양의 반사경과 카메라 앞에 서도록 유도된다. 한쪽 눈을 감은 채 장치가 제공하는 특정 시점을 찾다 보면, 파편적인 영상을 보여주던 60개의 거울이 하나의 완결된 영상을 제공한다. 바로 거울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다. 원리는 이렇다.
카메라가 관람자의 얼굴을 잡으면, 그 영상 정보는 컴퓨터에 의해 60개의 정육각형 조각으로 나뉘고, 두 대의 프로젝터를 통해 벽면에 분산 투사된다. (거울을 보는 사람의 뒤쪽 벽면에 영상이 맺히므로 처음엔 원리를 깨닫기 어렵다.) 벌집 모양의 반사경은 그렇게 분산된 영상을 다시 하나로 모아, 관람객에게 아나모포시스(왜곡된 상이 특수 제작한 거울을 거쳐 똑바로 보이게 되는 것)의 작은 경이를 제공한다.
내가 나 자신을 보는데, 따지고 보면, '보는 나'를 보는 것은 기계 장치다. 광학적 시선의 존재를 경험하고 그 의미를 묻기에 적절한, 색다르고 흥미진진한 전시가 아닐 수 없다. 전시는 20일까지. (02)733-4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