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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대에서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18일 오후 현장에서 설명회를 갖고 ▲광화문과 동십자각을 연결하는 궁장(宮牆·궁궐을 둘러싼 담장) ▲광화문과 흥례문(興禮門·광화문에서 근정전 쪽으로 난 문) 사이 궁궐 안 담장에 있던 용성문(用成門), 협생문(協生門) 등의 흔적 ▲임진왜란 때 불탄 조선 초기 건물의 유적 등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광화문 동쪽으로 동십자각까지 연결된 경복궁 담장은 기초부의 지대석(址臺石·건축물을 세우기 위해 잡은 터에 쌓은 돌) 등이 거의 완벽한 형태로 보존돼 있었다. 확인된 총길이는 168m, 폭은 2.9~3.2m이며, 현존하는 3층의 지대석은 14세기 태조 때 쌓은 2층 위에 1860년대 고종 때 한 층을 더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 위에 있던 담장은 일제시대 총독부 건물을 만들면서 헐린 뒤 전혀 다른 울타리가 세워졌다.
- ▲ 18일 광화문 일대 발굴 현장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발굴된 광화문 동쪽 옛 경 복궁 담장(궁장)의 기초 부분을 둘러보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내부 담장 서쪽의 용성문과 동쪽 협생문의 흔적도 나왔는데, 이 문이 있던 담장의 흔적 아래에선 초석·기단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임진왜란 이전 조선 초기의 건물터가 발굴됐다. 동서 11.2m, 남북 최소 50m 길이의 동·서 대칭 대형 건물터로 경복궁 창건 당시 의정부·육조 관리들의 대기실로 쓰이던 회랑(回廊)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굴된 유적의 보존문제를 둘러싸고 당초의 경복궁 복원 계획에도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조선 초기의 모습까지 되살리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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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자 전용 출입문, 경복궁 협생문 찾았다
조선 전·후기의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가 4월부터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 일부 구간을 발굴 조사중이다. 양호한 상태로 보존돼 있는 광화문 동쪽 궁장(宮牆), 흥례문 동·서 회랑에서 경복궁 남편 궁장으로 이어지는 내부 담장 등을 확인했다.
동쪽 궁장은 광화문에서 동십자각으로 연결되는 기초부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 궁장은 2007년 ‘광화문지 및 월대지역 발굴조사’에서 밝혀졌듯 태조대 궁장 기초 위에 고종대 궁장 면석을 덧댄 것으로 나타났다.
담장에 나있는 용성문과 협생문도 발견했다. 용성문은 서쪽 내부 담장에 난 문이다. 왕이 신무문(북문)이나 영추문(서문)을 통해 궁 밖으로 이동할 때 이용됐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구조에서 고종 이후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변화됐다. 협생문은 동쪽 내부 담장에 난 문이다. 이극문, 즉 세자가 동궁으로 드는 오른편 측문에서 출발해 광화문 밖으로 나갈때 세자가 이용했다. 정면 1칸, 측면 2칸의 구조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고종대에 화재로 손실된 담장 아래 건물지 1동을 확인됐다. 정면 12칸, 측면 3칸의 동·서 대칭 구조 대형 건물지로 동서 길이 11.2m, 남북 길이 최소 50m에 이른다. 초석과 기단 등 건물의 기초가 완벽하게 남아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광화문 일대의 용성문, 협생문, 광화문 동편 궁장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궁장은 그 기초부가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어 조선시대 궁장의 웅장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며 “임진왜란 이전의 선대 건물지가 확인돼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은 조선 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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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광화문권역에서 임진왜란 이전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대형 건물터가 발견됐다.
이 건물터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전하는 조선 전기 동.서 회랑(지붕이 있는 긴 복도)으로 추정됨에 따라 조선 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경복궁 광화문 및 기타권역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광화문과 흥례문(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문) 사이 일부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이를 확인했다.
가로 11.2m 세로 50m의 이 건물터는 정면 12칸, 측면 3칸의 동서 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초석과 기단 등 건물의 기초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상태로 확인됐다.
이 건물터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전하는 조선 전기 동.서 회랑(지붕이 있는 긴 복도)으로 추정됨에 따라 조선 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경복궁 광화문 및 기타권역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광화문과 흥례문(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문) 사이 일부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이를 확인했다.
가로 11.2m 세로 50m의 이 건물터는 정면 12칸, 측면 3칸의 동서 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초석과 기단 등 건물의 기초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상태로 확인됐다.
또한 정면 주칸(기둥 사이)거리가 4m로 동일하며 흥례문 동.서 회랑에서 경복궁 남편 궁장(궁궐을 둘러싼 성벽)과 맞닿는 형태로 길게 연결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건물터의 토층에서는 조선 전기에 사용된 분청사기나 대나무마디굽의 백자편이 출토된 점에 비춰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졌다가 임진왜란 전후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소 측은 설명했다.
또 조선왕조실록에 “홍례문(흥례문의 옛 이름) 동.서랑을 의정부.육조와 명사(名司)가 분합(分合)하여 팔직방(八直方)과 대조(待朝)하는 처소로 정한다”는 건물터의 용도를 규명하는 내용이 기록된 점도 이 같은 사실을 방증한다고 연구소 측은 덧붙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고종 때 만들어진 용성문과 협생문이 있던 자리에 동.서 회랑으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있었다는 점은 경복궁이 좀 더 화려하고 방대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편 광화문 동쪽 궁장, 흥례문 동.서 회랑에서 경복궁 남편 궁장으로 이어지는 내부 담장(남북방향) 시설과 담장에 나 있는 용성문과 협생문의 상태도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다.
용성문은 내부 담장의 서쪽에 있는 문으로 고종대 이후 정면 2칸, 측면 2칸의 구조에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변화했다고 연구소 측은 밝혔다.
또 내부 담장 동쪽에 있는 협생문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구조이며, 이 문 앞으로 박석이 정연하게 깔려있는 사다리꼴 형태의 기단부(가로 14.5m, 세로 16m)도 확인했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광화문 일대의 용성문, 협생문, 광화문 동편 궁장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특히 임진왜란 이전의 선대 건물지가 확인돼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은 조선 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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