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백남준의 창의력



낯설고 이상해 보이는 예술을 하는 사람은 왠지 사기꾼처럼 보인다. 그다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듯한 작품이 수십억 원, 수백억 원에 거래되는 것을 보면 꼭 사기를 당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서였을까, 백남준은 생전에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물론 그가 말한 사기는 우리가 이해하는 '나쁜 꾀로 사람을 속이는' 사기와는 다르다.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라고 한 것은, 예술은 기본적으로 고정관념과 상식에 도전하는 분야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고정관념과 상식의 울타리 안에 안주하는 사람들은 그 경계를 흔드는 이에게 부지불식간 적대감을 갖기 쉽다.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사람들은 "정에 맞아야 할 모난 돌"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누리는 많은 문명의 혜택은 바로 그런 '사기꾼들'에 의해 가능해진 것이다. 꼭 예술 분야가 아니더라도, 비행기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하늘을 날 꿈을 꾼 사람들, 전화기가 만들어지기 전 멀리 떨어진 이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기를 원했던 사람들,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하기 이전에 공룡과 킹콩, 이무기의 모습을 살아 있는 듯 생생한 모습으로 재현하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누리고 즐기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한 것은 어쩌면 예술에 대한 최고의 칭송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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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이 '아름다운 사기'를 위해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꼽은 것이 유연성 혹은 융통성이다. 자신이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가 된 것도 이 힘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TV 부처>를 보면, 면벽참선하고 있어야 할 부처님이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다. 이렇듯 참선과 TV 시청을 나란히 놓은 것도 흥미롭지만, 부처님이 화면에서 보는 게 결국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가만히 보면, 비디오카메라가 부처님을 촬영하고, 그것이 수상기로 송출되고, 부처님은 이를 시청하고 있다. 그렇게 촬영과 송출, 시청이 영겁회귀처럼 반복된다. 윤회의 이미지라고도 할 수 있다. 단순한 TV 시청에서 영겁회귀와 윤회의 이미지를 끌어낸 백남준은 진정으로 대단히 유연한 두뇌의 소유자가 분명하다.

융통성이 있는 사람은 하나의 사안을 두고도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결론을 끄집어내곤 한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는 파리의 상인 자노 드 쇼비니와 그의 유대인 친구 이야기가 나온다. 자노로부터 기독교도로 개종할 것을 요청받은 유대인 친구는 고심 끝에 로마에 가서 교황과 교황청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고 기독교가 진정으로 훌륭하다는 것이 인정이 되면 개종하겠다고 말한다. 이 유대인 친구가 로마 교황청에 가서 본 것은 온갖 부패와 타락, 음욕이었다. 교황청 사람들의 극악한 행동은 마치 "기독교를 파괴하고 그것을 이 땅에서 몰아내려는 것" 같았다. 그런 친구의 목격에 실망한 자노에게 친구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럼에도 기독교가 꾸준히 뻗어가고 찬란히 빛나는 것은 성령이 살아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기독교가 진정한 종교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그 친구는 기독교도가 되었다. 어떤 종교를 옹호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융통성이 있는 사람의 시야는 이처럼 넓고, 그만큼 창조적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획일적인 교육으로 인한 폐해와 지나치게 집단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긴 하지만, 백남준이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융통성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자신의 유연성의 뿌리가 바로 한민족의 타고난 융통성에 있다고 그는 보았다. 그 융통성의 예로 그는 제주도에서 목격한 칠성굿 사례를 들었다. 칠성굿을 하는 무당이 기물들을 설치하다가 가장 중요한 것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칠성신 위패였다. 신을 모시지 않고 굿을 할 수는 없는 법. 무당은 당황해 하지 않고 주위를 둘레둘레 살피더니 어느 한 구석에 가서 무엇인가를 들고 왔다. 그것은 칠성사이다 병이었다. 그것을 위패 모실 자리에 떡 하니 모셔놓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신나게 굿판을 벌인 무당. 그 모습을 보며 백남준 선생은 그 막힘없는 융통성에 감탄했다고 한다. 사기라고 하면 이 또한 사기일 것이다. 하지만 굿의 정신은 그런 한계를 초월한다. 예술도 그런 한계를 초월한다. 백남준은 한국인에게 그런 예술적인 능력이 다대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차린 사람이었다.


- 이주헌, 『리더를 위한 미술 창의력 발전소』, 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