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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SF 만화 ‘라이파이’를 아세요?

한국 최초의 SF 만화 ‘라이파이’를 아세요?

▲ 나중에 만화가로 이름을 떨친 이들도 어릴 때는 독자투고를 통해 자신의 그림을 자랑하고 싶어 했다. 왼쪽 아래부터 ‘태권브이’의 김형배, ‘둘리’의 김수정, ‘까치’의 이현세, 박재동 등이 아마추어시절 만화잡지나 단행본에 응모했던 습작들.

‘둘리’, ‘영심이’, ‘로보트 태권브이’ 등 이름만 들어도 너무나 친근한 한국만화. 과연 그 발달 과정은 어땠을까? 한국만화 10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만화 100년’ 전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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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만화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 호흡하며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고 어려움을 겪어 온 국민들의 벗으로 유일한 문화적 해방구 역할을 해왔다.

한국 만화의 효시는 1909년 6월2일 일간지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화로 보고 있다. 화가였던 그는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이었다. 근대 초기 만화가들은 대부분 화가들로 당시 상당한 고등교육을 받은 자들이었다. 즉 만화의 시작은 전통 미술이다.

▲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의 작품. 서양식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고개를 들어 말하는 듯 하다. 그내용을 오른쪽부터 세로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정세를 저울질하여 잘 살핀다.” “한민족의 정신을 하나로 모이게 한다.” “백성의 소리를 듣는 수단.” “소식을 알리는 남다른 신문사.”처음 선보인 만평인 만치 신문을 처음 펴내는 포부를 알리는 내용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 때 만화는 선전, 홍보를 위한 포스터 등에 자주 활용됐다. 또한 1950년 한국전쟁이 벌어졌을 때 남과 북, UN 측은 많은 삐라를 제작해 뿌렸는데 이 삐라에도 만화가 활용됐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만화는 대중들의 오락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시장이나 공원 몇몇 노점상들은 좌판을 펴고 만화를 빌려주기 시작했다. 만화 노점이 인기를 끌자 등장한 것이 만화방이다. 만화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만화방은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골목마다 만화방이 생겼고 그곳에는 손님들로 넘쳐났다.

▲ 시장이나 공원 몇몇 노점상들은 좌판을 펴고 만화를 빌려주기 시작했다.

▲박재동 만화가가 그린 만화방 풍경. 박재동 만화가의 어머님은 과거 만화방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당시 만화가라는 직업은 “3개월만 일하면 집을 한 채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소득 직종이었다. 만화책을 한 권 그려내면 지금의 베스트셀러 못지않은 만화책들이 전국의 수많은 만화방에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당시 만화는 아이들만 보는 책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대중문화였다. 하지만 이렇게 발전하던 만화는 5.19혁명을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만화에 검열이 실시된 것이다. 많은 만화가 검열에 걸리기 시작했다. 이에 만화가들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주인공을 사람이 아닌 동물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어른들을 위한 내용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내용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만화는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문화로 변화가기 시작한다. 또한 만화에 대한 사회적인 이미지도 변하기 시작한다. 당신 만화는 청소년 탈선의 중심이라고 표현했다.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면 만화를 보고 따라했다고 신문들은 보도했다. 1967년 만화는 ‘6대 사회악’의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으며 5월 어린이 달이 되면 만화를 쌓아 놓고 태우면서 만화를 보지 말고 만화방에 가지 말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만화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은 이후 오랫동안 만화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억압 속에서도 한국만화는 조금씩 발전했다. 예전에 출판되는 잡지에서 만화는 편집의 여백을 채우기 위한 역할이었다면 이 후에 잡지에서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만화문고의 등장으로 나타났고 1980년대에는 보물섬 아이큐점프와 같은 만화전문잡지가 출판되면서 한국 만화의 또 한번의 전성기에 들어선다.

▲ 1959년 시리즈를 시작해 전 4부 32권으로 완간한 ‘라이파이’ 시리즈는 한국 최초의 SF장르로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엄마찾아 3만리’는 6.25전쟁이 끝난 후 사회적 분위기와 어울려 큰 사랑을 받았다.

▲ 전시물들을 설명 해주는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문화 이승미 팀장.

▲전시장 한 벽면에 설치된이 그림에서는유명 만화작가와 만화 캐릭터들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한국만화는 1990년 대 후반에는 IT열풍으로 또다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종이가 아닌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만화를 보는 새로운 문화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는 웹툰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장르로 분리되며 수많은 인기 작가들을 탄생시켰고 지금도 큰 인기를 받고 있다.

지금 만화는 만화의 영역을 뛰어 넘고 있다. 단순히 독자들이나 네티즌들에게 보여 지는 데 그치지 않고 만화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 지거나 캐릭터 심지어는 미술 분야에까지 문화적, 예술적, 산업적 가치에 대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웹툰

▲만화의 영향을 받은 미술 작품들

▲ 배경에 만화의 말풍선 처럼 글씨를 새겨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 사랑에 슬퍼하는 태권 V

▲ 툰토이

‘한국만화 100년’은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모든 연령층의 관객을 위한 전시다. 어떤 이들은 이곳에서 지난 향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어떤 이는 앞으로의 미래를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만화 100년’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8월 23일 까지 전시된다.

도깨비뉴스 김영욱 기자 hiro@dk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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