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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푸어(Working Poor)` 300만

[심층리포트] [워킹푸어 300만명 시대] [1]

'워킹푸어(Working Poor)' 300만… 출구없는 이웃

입력 : 2009.07.20 02:32 / 수정 : 2009.07.20 05:18

하루도 제대로 쉰 날 없는데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어… '워킹푸어 예비군'도 급증
"투잡·스리잡 뛰어도 저축 불가능"… 무너지는 '근면 신화' '통장잔고 0원' 근로자들
물가가 늘 임금상승률 앞질러 노력해도 삶의 질은 계속 떨어져
IMF서 비롯… 금융위기로 악화 서민들 '하면 된다' 희망 사라져

이광일(46)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류회사에 근무하다 1995년 서울 동대문구에 섬유공장을 차렸다. 원단을 의류공장에 납품해 월 매출 2억원을 올리고, 그 돈으로 당시로선 앞서가는 아이템이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했다. IMF 외환위기로 그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주 거래은행이던 동화은행이 문을 닫고, 그 여파로 이씨의 공장도 부도가 났다.

"어떻게든 재기하려고 2000년 봄부터 오후 4시에 나가 이튿날 새벽 4시까지 택시를 몰았어요. 밤새 한 번도 차에서 안 내리고 페트병에 용변을 해결하며 독하게 일했지요. 매달 180만원을 벌었지만 반년 만에 몸이 상해 그만뒀어요."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부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이광일씨가 막 튀긴 닭꼬치를 쌓고 있다. 이씨는 IMF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한 뒤 지난 10년 동안 택시 운전과 야시장 옷장사를 하다 작년 7월부터 이동식 닭장사를 시작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그는 아파트 야시장을 돌며 의류와 액세서리 좌판을 폈다. 지난해부터 부인과 함께 트럭을 몰고 수도권 아파트 단지를 돌며 닭튀김을 팔고 있다. 부부는 매일 오전 10시에 나가 이튿날 오전 2시에 귀가한다. 집은 월세 20만원짜리 한옥이다.

"지난 10년간 하루 6시간 이상 잠을 자 본 적이 없어요. 하루도 제대로 쉰 날이 없고요. 그래도 삶은 제자리걸음이에요. 부모님과 우리 부부, 아이 셋이 밥 먹고 학교 다니면 남는 게 없어요. 간신히 생활유지만 될 뿐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어요."

남의 건물에서 조그만 가게를 꾸리는 자영업자, 박봉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밤마다 내일의 일자리를 걱정하며 잠드는 임시직….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도 기본적인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워킹푸어(Working Poor·근로빈곤층)'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외식과 휴일을 포기하고 악착같이 일해도 아이들 학원비와 공과금, 식비를 내고 나면 통장 잔고가 '0원'인 '제로 인생'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기자 데이비드 쉬플러(Shipler)는 "워킹푸어는 빈곤과 안락한 삶의 경계선에 놓인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이들은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일자리가 있어 얼핏 보기엔 건실한 중산층 같지만, 고용도 불안하고 저축도 없어 실직하거나 병이 나면 곧바로 빈곤층으로 추락한다.

워킹푸어의 확산은 한국에서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열심히 일하고도 한달 소득이 최저생계비(4인 가족기준·월 132만6609원)에 못 미치는 사람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에 따라 연말까지 최소 211만명에서 최대 227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2007년 156만명에서 불과 2년 만에 55만~71만명 늘어난 숫자다.

이 연구원 노대명 연구위원은 지난 2007년 발표한 논문에서 "국내에는 아직 워킹푸어에 대한 기준과 통계가 없으나 널리 쓰이는 유럽 기준을 적용하면 271만~301만명"이라고 분석했다. 워킹푸어가 해마다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국내 워킹푸어는 적게 잡아도 3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당장은 중산층 범위에 들어 있지만 사정이 조금만 악화돼도 워킹푸어로 떨어질 위험에 처한 '워킹푸어 예비군'도 적지 않다. 남편의 월급으로는 최저생계비를 못 맞춰 부부가 맞벌이하거나 투잡, 쓰리잡을 해서 간신히 200만~250만원가량을 버는 가정의 경우, 부부 중 한 사람이 일자리를 잃거나 몸이 아프면 언제든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

워킹푸어와 '워킹푸어 예비군'들은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의지가 있고, 실제로 녹초가 되도록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독거노인·조손(祖孫) 가정 같은 전통적인 빈곤층과 다르다. 이들은 한 발만 삐끗하면 곧장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칠 때까지 투잡(two jobs), 스리잡(three jobs)을 뛴다. 벌고 또 벌어도 저축이 불가능한 '제로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IMF 외환위기 전까지 김옥채(49)씨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서 월급 250만원을 받는 지배인이었다. 그는 13~16㎡(4~5평)짜리 월셋집에 살면서 5000만원을 저축했다. 고향에 사는 노모에게도 한달에 20만원씩 용돈을 드렸다. 조금만 더 모아 번듯한 전셋집을 얻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식당이 망하면서 김씨의 몰락이 시작됐다. 2~3년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며 저축해둔 돈을 모두 썼다. 그는 전셋집으로 옮기는 대신 2004년 지금 살고 있는 남산 쪽방촌으로 이사했다.

현재 김씨는 한달에 90만~100만원을 번다. 오전 6시30분부터 3시간 동안 회현동 주민센터를 청소해 월 40만원을 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남대문 시장 근처 빌딩의 계단과 화장실을 청소해 월 40만원을 번다. 오후에는 일주일에 1~2번씩 이삿짐센터 연락을 받고 달려가서 막일을 하고 그때마다 3만원씩 받는다. 그 돈으로 방값 20만원, 식비 30만원, 휴대폰 요금, 담뱃값, 전기요금, 교통비 등을 낸다.

그는 "세 가지 일을 하며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다녀도 내 손에 남는 돈은 20만원 안팎"이라며 "빚을 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긴 하지만 1년에 모을 수 있는 돈이 최대 240만원에 불과하다니 장래가 암담하다"고 했다.

가난의 굴레는 단단했다. 건물청소 두 곳과 이삿짐 운반 등 ‘스리잡’을 뛰어도 김옥채씨가 손에 쥐는 돈은 한달 110만원 남짓. 김씨가 지난 9일 오전 서울 회현동주민센터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택시회사 사무직 직원 임모(51)씨는 하루에 두 번 출근한다. 그는 오전 6시까지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 나가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저녁을 때운 뒤 오후 7시까지 집 근처 주유소에 나가 밤 12시까지 5시간 동안 시급(時給) 35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하루 1만7500원을 번다.

"승용차 같은 경우는 받는 돈의 액수가 크니까 카드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아서 돈을 꼬박꼬박 받아요. 그런데 오토바이같이 몇천원 단위로 주유를 하면 실수로 돈을 덜 받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럼 제 하루 일당이 날아갑니다. 내가 대신 돈을 채워 넣어야 하니까. 외제 스쿠터 중에는 경유를 넣는 기종이 있는데 피곤해서 깜박하고 휘발유를 넣었다가 어린 운전자한테 야단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 나이에…."

그는 "200만원 좀 못 되는 월급으로는 군대 간 아들이 돌아왔을 때 대학 등록금을 댈 방법이 없다"며 "단돈 1만원이라도 더 벌어놔야 하는 처지인데 그나마 집 근처에 이런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씨의 아들은 내년 이맘때 제대한다. 그때를 위해 1년간 300만원쯤 저축해두는 것이 임씨의 당면 목표다.

전문가들은 워킹푸어 문제가 시작된 지점으로 IMF 외환위기를 꼽는다. 사무직, 생산직 가릴 것 없이 대량으로 실업자가 생겼다. 이들이 간신히 재기를 꿈꿀 무렵인 2004년, 카드 대란으로 나라 경제가 다시 한번 휘청했다. 직장에서 나와 영세자영업에 도전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고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어났다. 여기에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것이 지난해 말 전 세계를 덮친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은 "비정규직은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영세 자영업자는 불황으로 소비가 얼어붙을 때마다 맨 먼저 타격을 받는다"며 "이들이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경제가 출렁거릴 때마다 '첫 번째 희생자'로 다시 주저앉고 있다"고 말했다. 임금상승률이 주거비·교육비·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워킹푸어의 확산을 부추긴다.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기본적인 생활비가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보니, 노력해도 삶의 질이 계속 떨어지기만 한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구인회 교수는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억척스레 일하고 알뜰살뜰 살림하면 부자는 못 되어도 웬만큼은 먹고 산다는 건강한 근로 윤리와 희망이 우리나라 서민들에게 있었다"며 "지난 10년간 열심히 살아도 생활이 나아진다는 희망이 빛바래면서 '하면 된다'는 투지 대신 좌절과 불안이 사회의 저변에 스멀거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워킹푸어(Working Poor· 근로빈곤층)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미국에서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용어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일반적인 정의는 취업을 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저축할 여력이 없어, 일시적 질병이나 실직이 곧바로 절대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층을 일컫는다. 국내 워킹푸어는 300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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