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 자연 통합적 사고가 지식사회 무기”
![]() 동아일보 회의실에서 신년 대담을 나누고 있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오른쪽)와 정민 한양대 교수. 이들은 대담 내내 “학문의 경계, 경직된 사고의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면서 통합적인 학문 연구와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미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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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2005년 ‘지식의 대통합, 통섭’이라는 책을 번역 출판해 통합과 같은 뜻의 통섭(統攝) 개념을 전파한 데 이어 2006년 가을 이화여대에 통섭원을 개원하고 지식과 학문의 통합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정 교수는 한국 역사상 최고의 전방위적(全方位的) 사상가인 다산 정약용의 통합적 사고를 소개한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을 최근 출간한 바 있다.
∇최재천=최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란 책을 내셨는데, 다산 선생의 통합적인 지식경영법을 그대로 실천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계를 보면 인문학자들이 자연과학에 접근하는 것을 특히 어려워하더군요. 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날 수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생태학을 강의할 때, 처음엔 기본 방정식도 모르던 학생들이 혼자 공부해 따라오는 걸 보았습니다. 우리의 경우, 혼자 수학을 공부해서 따라올 대학생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사회학과 학생에게 물리학과 양자역학 강의를 들어보라고 하면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할 겁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의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정민=선생님께서 번역하신 ‘통섭’을 보니, 그동안 우리의 학제간(學際間) 연구가 다(多)학문적인 유희에 그치고 범(汎)학문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해 놓으셨더군요. 그동안 각자 얘기만 해놓고 그걸 학제간 연구라고 해 왔으니 진정한 통합적 연구가 아니었던 거죠. 전문가라는 미명 아래, 자기 영역만 고수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 다른 길을 갔습니다. 이젠 통합적 식견이 필요합니다.
∇최=옛날엔 한 사람이 커버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이 많지 않아서 전방위적이고 르네상스적인 지식인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 이렇게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여럿이 함께 해야 합니다. 제가 통섭원을 만들고 이화여대 이화학술원에서 이론적인 학문과 실용적인 학문을 융합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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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리 대학은 전문화라는 것에 집착해 과도하게 학과를 세분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좋은 대학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기초 학문을 중시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고령화를 감안해 보면 대단히 중요합니다. 수명은 90세까지 늘어나는데 ‘사오정’이다 ‘오륙도’다 해서 직장 생활은 점점 짧아집니다. 그 험악한 입시 지옥을 겪고 대학에 가서 공부했는데 그걸 써먹는 기간이 고작 20년이라니…. 제가 서울대에 있을 때 한 최고경영자(CEO)가 강연을 하면서 “기업이 원하는 대로 학생들을 교육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물었죠. “서울대가 당신 기업을 위해 맞춤형 직업훈련소가 되라는 말이냐. 당신 기업이 우리 학생들을 죽을 때까지 먹여 살려주겠다고 약속하면 내가 총장과 상의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 기업에 딱 맞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고작해야 10년 써먹고 차버릴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응용력이 있는 기초학문이 중요합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기초 학문을 잘 다져 놓으면 언제든지 활용 가능합니다. 고령화 사회에 새로운 직업으로 변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정=전문 분야의 연구 능력이 심화되는 것도 아니면서 학문 분야나 학과가 너무 심하게 쪼개지고 있습니다. 세포 분열만 하다 보니 통합적인 안목과 통합적인 사고가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최=앞으로 기업들이 엄청난 경쟁 속에서 생존하려면 기초 학문의 통합적 연구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야 합니다. 미국의 대학들처럼 인문계도 자연과학을 필수로 공부해야 합니다. 고등학교의 문과, 이과의 구분도 깨져야 합니다.
∇정=다산 선생의 다방면에 걸친 방대한 연구를 보고 놀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다산의 저작물을 잘 들여다보면 통합적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다산이 자연과학적인 정보와 인문학적인 정보를 한데 아우를 수 있었던 것도 통합적 사고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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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물학과 대학원에 간 국문학과 제자가 한 명 있는데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연암 박지원의 눈으로 생물학을 보니 잘 먹혀 들어가더라”고 말입니다. 다산의 글 가운데 ‘어망득홍(漁網得鴻)’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고기 잡으려고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렸다고 그걸 버릴 것이냐’는 뜻입니다. 당연히 버리지 말아야죠. 학자의 미덕은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업자의 글보다는 다른 분야 사람들의 글에서 연구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진리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학문의 경계, 사고의 경계를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진리는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데 우리는 경계를 정해 놓고 그 경계 안으로 진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경계를 허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미래의 경쟁력입니다.
정리=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뇌과학 메시지는 일체유심조”
![]() ‘석박사 과정을 마치면 전공서적 외에 책을 놓는 이공계 문화’에서 벗어나고 싶어 10년간 3000여 권의 책을 독파하며 뇌과학 전문가로 거듭난 박문호 박사. 그는 “뇌과학이야말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다리를 놓을 수 있는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박문호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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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부터 문과와 이과를 분리해 그 단절이 더욱 고착화한 한국사회에서 두 학문 간 심연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인물이 있다.
2002년 대전에서 창립된 ‘100권 클럽’(www.100booksclub.com)의 공동운영위원장인 박문호(48) 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이다.》
■ ‘뇌과학 강사’로 화제 집중 박문호 전자공학 박사
박문호 박사는 전공인 전자공학과는 별도로 지난 10년간 매년 300권 안팎의 독서를 통해 뇌과학, 천체물리학, 양자역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체계화했다. 여기에 학부시절부터 심취한 불교철학과 프랑스 탈구조주의 철학에 대한 심층적 독서를 결합해 그는 두 문화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강연을 펼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원, 서울대, ‘수유+너머’ 같은 곳에서 앞 다퉈 그를 초빙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말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근무하는 그를 찾아갔다. 그는 지난 10년간 국내에 번역된 뇌과학 서적 100여 권을 꿰뚫고 있었을 뿐 아니라 국내외 뇌과학 전문가들의 연구 성과와 그 인문학적 함의까지 술술 풀어냈다.
지난 한 해 70여 권의 뇌과학 책이 쏟아지는 등 뇌과학 붐이 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사회는 역사상 유례없는 과잉 열량을 해소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그 집단적 해결책으로 3가지가 등장했어요. 첫째는 마라톤 붐, 둘째는 웰빙과 결합된 요가 붐, 마지막으로 뇌과학입니다.”
앞의 둘은 납득이 가는데 마지막 뇌과학 붐이 잉여에너지의 소진과 관련됐다는 주장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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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본질적 기능은 환경적응적인 운동의 생성이며 그 운동을 통해 매순간 새로운 시간과 공간 감각이 생겨나고 그 시공간 감각에 의해 비로소 주체가 만들어진다는 그의 설명은 ‘주체는 곧 무(無)’라는 라캉의 이론과 만난다. 이는 또한 시공간의 곡률(曲律)로서 규정되는 우주라는 무대와 무대 위 배우로서 주체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하나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도 결합된다. 박 박사의 이런 지식은 철저한 전략적 독서의 산물이었다.
“인간의 뇌는 통념에 부합하는 인문학적 독서가 더 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연과학 관련 70%, 인문과학 30%로 구성된 7 대 3 독서를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는 이런 두 문화의 심연을 메워 줄 희망을 뇌과학에서 찾고 있다. “뇌과학이 던지는 메시지는 ‘이러면 이렇게 되고 저러면 저렇게 된다’입니다. 브레인 시스템이 어떻게 패턴 지어지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깨달음이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해 줍니다. 마치 불가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사상이 해탈의 경지를 열어 주듯이….”
박 박사는 13일∼2월 24일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수유+너머’에서 ‘뇌와 생각의 출현’을 주제로 6차례의 특강을 펼친다.
대전=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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