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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50만원이면 중국에서 살기 충분하지 않나요?

50만원이면 중국에서 살기 충분하지 않나요?


▲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중국 칭다오

한국인이라고 우대 받아야 할 이유?
최근 베이징에서 다니던 직장의 경영부진으로 정리해고를 당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는 30대 후반 유모씨. 그는 베이징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자그마한 유통회사와 면접을 보면서 희망 급여를 월 1만 5천위안(한화 약 190만원) 으로 적어냈다.

베이징 현지의 물가나 급여주순을 감안할 때 희망급여가 조금 많지 않냐는 주위의 걱정 섞인 질문에 유씨는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경력도 있을 뿐더러 영어 특기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최씨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년 넘게 그가 원하는 만큼의 연봉을 주겠다는 기업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30대 청년 L씨. 다니던 회사의 업무가 적성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새 직장을 찾는 과정에서 백수생활이 길어지자 생활비가 궁해졌다. 마침 아는 후배가 주로 중국인들을 고용, 워드 프로그램을 이용해 간단한 문서를 정리하면 하루 일당을 150위안(한화 약 1만9천원) 정도 주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L씨는 용돈이라도 벌 요량으로 자신도 그 회사에서 단기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후배에게 졸랐다. 그런데 L씨는 조선족 동포 위주로 구성된 이 회사에서 자신은 적어도 하루 수당을 300위안 (한화 약 3만8천원) 이상은 받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 이유를 묻는 회사 담당자의 질문에 L씨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한국인이잖아요?”

결국 L씨는 이 회사문전에서 차갑게 박대를 당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 회사 담당자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굳이 한국인이라고 더 대우를 해줘야 할 이유를 전혀 못 느낀다는 것이다.


▲ 베이징의 한국 유학생 중심지 우다커우 거리

中교민 韓기업 현채 급여 대개 60만~100만원 정도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많은 유학생 출신 구직자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한국에서 파견된 주재원에 비해 상대적 저임의 중국 현지 채용은 싫다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유학생 출신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이들도 마찬가지. 이들은 처음부터 중국에서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어학연수나 단기 인턴과정, 친지 방문 등 이런 저런 명목으로 중국을 찾은 후 아예 그대로 눌러 앉은 부류다. 그들은 한껏 희망과 자신감에 부풀어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중국을 택했고 일정 기간 중국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허니문’을 즐기지만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빵을 구하기 위한 생업이라는 심각한 현실의 벽에 부딪치기 마련.

한국에서 취직이 안돼 모 기관에서 실시하는 중국 인턴쉽 과정으로 건너왔다가 눌러앉은 신모씨도 (31)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6개월간의 어학연수 코스가 끝났지만 막상 추천이 들어온 직장은 자신이 꿈꾸던 깨끗한 와이셔츠와 넥타이 차림의 번듯한 집기가 있는 사무실이 아니라 직원이라고 해야 사장을 포함하여 10명 정도 되는 작고 초라한 회사. 값싼 임대료의 낡은 사무실 한쪽 켠은 창고를 겸했고 회사의 매출도 그야말로 구멍가게 수준. 그뿐만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제시한 월급이 4천 위안(한화 약 50만원) 이라는 말에 신씨는 경악했다.

신씨는 “내가 그래도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왜 여기서 한국 돈으로 1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해야 하냐?”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한국에서 PC방 아르바이트를 해도 이보다 적을 수는 없다”라고 흥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에 진출한 기업 중 자본력이 거대한 대기업이나 중견그룹의 회사를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의 회사들은 한국의 왠만한 중소기업에 조차도 못 미치는 작은 구멍가게 수준의 규모라는 점과 중국의 물가나 기업의 이익 등을 감안했을 때 급여가 5천 ~ 8천위안 정도는 현지수준에 비추어 적지 않은 급여라는 것이 현지 기업인들의 주장이다.

북경에서 작은 컴퓨터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전종해(35)씨는 “ 돈벌기는 커녕 먹고 살기 급급한 여기 베이징의 허울 뿐인 한국 회사들이 무슨 돈으로 그리 급여를 많이 줄수 있겠냐?"며 한탄한다.
"중국에 왔으면 중국식으로 사고하고 아닐 바에는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충고도 덧붙였다.

중국에서 일하는 교민들의 한국 기업 현채 급여는 대개 얼마나 될까. 리포터가 무작위로 20여명 정도 주로 30대의 주변 사람들을 탐문하여 조사했더니 급여로 인민폐 1만 위안 (한화 약 125만원) 이상 받는 현지 채용의 교민들은 그야말로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 베이징의 번화가 왕푸징의 음식점 거리

현지기업들, 유학생 출신보다 중국동포 등 중국인들 선호
신혼의 K씨(34)는 재작년 베이징으로 건너와 교민이 꾸리는 작은 여행사에 취직했는데 급여를 월 5천 위안 (한화 약 63만원) 받았다. 회사에서는 다른 인센티브를 약속했으나 제대로 지급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30여명 규모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북경의 한 IT 회사는 신입 여사원 초봉으로 8천 위안(한화 약 100만원)을 지급해 왔다. 그나마 실적부진으로 올해부터 신입사원 충원계획은 아예 없다고 한다.

또 다른 중소 IT 회사 D사의 경우 하반기에 유학생 출신 채용을 고려하고 있다. 이 회사 담당자는 “대략 급여를 7천 위안(한화 약 88만원) 선으로 잠정 결정하여 본사로 품의를 올렸다”고 말한다. 여러 가지 업종의 사업체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천진의 한 잡지사도 경력직으로 입사해도 절대 8천 위안 이상을 주지 않는다고 못을 박는다. 심지어 숙식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월급을 불과 3천 위안 (한화 약 38만원)을 주겠다는 개인 회사도 있었다.

간혹 보이는 월 급여 1만 위안 (한화 약 125만원) 이상의 직종은 주로 영업직, 그야말로 실적을 올려야만 급여가 보장되는 직종들. 혹은 다단계로 추정되는 일부 회사들은 그 이상 지급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한 중앙 일간지 특파원은 "베이징 현채직원의 급여수준이 4천 ~ 5천위안 정도 아닐까 한다"라며 더 낮은 추정치를 내놓았다.

설사 규모가 큰 대기업일이라도 중국 현지 채용 직원의 급여수준은 중국 현지인과 비교하여 그다지 높지 않다. 많은 기업 관계자들은 중국에 살면서 한국인의 중국어 특기가 별다른 경쟁력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동포 뿐 아니라 한국말에 능숙한 한족도 나날이 늘고 있어 유학생의 출신의 구직은 상대적으로 더욱 힘들다. 유학생 출신이 현지 중국동포보다 중국어를 더 능숙하게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은 대기업 인사 담당자의 판단. 비록 우리말은 서투르지만 중국인 직원을 뽑아서 훈련시키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50만원이면 중국에서 살기 충분하지 않나요?"
중국의 대학 입학은 국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편. 중국 학생들과 직접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주로 한국 유학생들끼리 일정한 자리를 놓고 다툰다. 졸업장을 받았다 해도 취직은 어렵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대부분 중국에 유학 온 대졸자를 뽑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도 중국에서 유학생 출신을 현지 채용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이는 회사가 추진하고 있는 현지화 전략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중국대학 출신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직장 구하기도 쉽지는 않은 듯 하다. 얼마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장 아고라에서는 어느 취업 준비생의 하소연 글이 올라와서 중국 유학생들 사이에 화제가 된 적 있었다. <학위조차 인정 못받는 중국 졸업장의 현실에 화나네요>라는 제목으로 한 중국대학 출신 유학생이 취업을 준비하면서 쓴 이 경험담에는 이런 씁쓸한 대목이 나온다.

"중국계 기업에서 일해 보겠다는 생각을 접고 한국계 기업에 지원했습니다. 면접을 보는데 월급을 50만원 부르더군요. 제가 황당해서 `50만원이요?` 하니까 `네 50만원이요!` 그러더군요. `중국에 사시는데 50만원이면 충분하지 않나요? 그나마 한국 분이니까 50만원 드리는 겁니다`"

해마다 중국 유학생은 급격히 늘어나고 대학을 졸업 후 중국에 남아 있고 싶어하는 유학생 출신들도 늘어나는 반면 일자리의 공급은 딸리다 보니 현지 교민들의 청년실업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런 이면에는 중국 출신 한국 기업들의 현지화 전략 추세도 한 몫 한다. 예컨데 중국 전체의 삼성 종업원 5만여명 중 파견직원은 스태프 중심으로 600여명에 불과하다. 인력 현지화 달성률은 이미 96%를 넘어선 것이다.

이에 반면 한국어가 능통한 중국인들의 취업률은 경이적이다. 연변대 졸업예정자 중 한국어에 능통한 학생의 취업률이 100%인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전 인터넷 매체인 `온바오`에 따르면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은 길림성 연변대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100%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이 박람회에는 한국어 능통자를 찾는 90여 개 업체와 졸업예정자 3천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 중국 최대의 한국인 집단 거주지역 왕징

차이나 드림의 환상을 버리고 눈높이를 낮춰라
많은 베이징의 교민들은 자신들의 급여가 적다고 불평할 때 "나는 중국인들 보다는 못 받는다”고 푸념하곤 한다. 그러나 이 넋두리는 앞으로는 더 이상 중국 교민사회에서 통용되기 힘들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인들의 급여가 여느 중국인의 급여와 비교하여 격차가 나날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중국인의 인건비와 경제성장 속도로 볼 때 어쩌면 미래에는 "중국인 만큼 받는 것도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게 될지도 모를 지경.

많은 유학생들의 현지채용 보다는 한국에서 파견되오는 주재원을 선망한다. 주재원들은 대개 한국 수준 그대로 급여를 받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윤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으로“반드시 주재원이 되어 돌아오겠다”는 각오로 떠난 이들 중 간혹 주재원 신분으로 중국에 돌아오지만 저임으로 칭다오나 텐진 등에서 외진 공장에 일하면서 그들이 생각했던 주재원상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며 낙담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직장에 대한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국에 오면 한국에서 어떤 생활을 했든, 중국의 현실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주재원은 되기 힘들고 현지채용은 싫으니 궁여지책으로 손을 대는 무분별한 창업에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높다. 별다른 사회 생활 경험 없이 부모나 남의 돈을 빌려 자신감만으로 창업했다가 실패한 후 오도가도 못 가는 신세가 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 유학생의 실업문제는 양극화 , 조기 유학생 문제, 빈민화 등과 더불어 중국 교민사회의 또 다른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베이징= 도깨비뉴스 리포터 팬더 panda@dk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