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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특별전에는 밀레의 '만종',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을 포함 오르세미술관에서 엄선된 걸작 44점과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화가들 작업하는 모습을 주제로 한 오리지널 빈티지사진작품 30점을 선보인다. '만종', 당분간 한국독점 단원의 그림이 수없이 복제가 되듯 밀레의 만종도 그렇게 수없이 복제되면서 우리생활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전후세대는 단원보다 밀레를 더 많이 보고 자랐는지 모른다. 그 가치여부를 떠나 어디서나 그냥 무심코 생각 없이 좋아서 본 것 같다. 이 한 작품 때문에 1천억 원의 보험금을 지불하긴 했지만 9월초까지는 당분간 지상에서 '만종'을 보려면 한국에 와야 한다. 우리가 본의 아니게 밀레의 만종, 그 원본을 독차지해 보게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 셈이다.
밀레는 사회 변혁기, 계급의 심화 속에 부와 권력을 누리는 상류층보다는 빈곤한 농부를 그렸다. 당시로선 파격적 사건이었다. 계급 이전에 농민의 소박함과 진실함이 주는 감동을 화폭에 담아 지구촌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서민화가 박수근 화백도 그런 면에서는 밀레와 통한다. 그가 밀레를 그리도 흠모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인상주의, 격변기 속 태동
이번 전에서는 볼 수 없으나 르누아르의 '무랭 드 라 가레트에서의 무도회', 드가의 '압생트', 모네의 '1878년 6월30일의 축제'는 화려한 도시축제와 술 취한 여인 그리고 만국박람회 등 산업화과정이 빚은 시대풍속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당대풍의 화려한 공연예술을 그린 드가의 '오페라 좌의 오케스트라(아래)'를 이번에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인상주의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랑받는 미술사조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이유는 아마도 빛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리는 화법과 당시 사진술 영향 등으로 순간적인 움직임을 포착하는 화풍이 현대인의 정서와 맞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상주의 대부 마네
이번 전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작가는 역시 마네다. 그는 "허식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건 뭔가?"를 고민했다. 국립미술학교 출신이었으나 고전적 규범을 멀리하고 이론보다는 여행을 통해 거장들 작품을 접했다. 명암의 극단적 대조와 사회적으로 금기된 주제를 도입, 살롱전과는 다른 '풀밭 위의 점심식사' '올랭피아' 등 도발적 화풍을 선보였다. 그는 당대 최고지성인이었던 졸라, 말라르메, 보들레르 등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전시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며 당시 관전에서 소외된 젊은 작가들을 위해 자신의 아틀리에서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레, 세잔, 모리조, 드가의 작품전을 열기도 했다. 이렇게 그는 회화의 자율성을 주장하여 인상주의의 대부가 되었다. 모네, 르누아르, 드가
모네는 보불전쟁 중 런던에 피해갔다가 터너의 풍경을 보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 전후엔 아르장퇴유에 정착하여, 물빛의 진동과 반사된 광선의 변화되는 순간을 밝고 투명한 색채와 유려한 필치로 물들였다. 이런 화풍은 수련연작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르누아르는 모네와 유사한 점도 많으나 전원보단 활기 넘치는 도심을 그렸고, 풍경화보다 인물화에 더 치중했다. 빛의 반사를 섬세하고 부드러운 터치와 눈부시도록 세련되고 우아한 색채로 구현했다. 특히 관능미 넘치는 풍성한 누드화에서는 남다른 천재성을 보였다.
드가는 위 '오페라 좌의 오케스트라'에서 보듯 정적인 것보다는 순간적 움직임의 번뜩이는 율동과 리듬을 중시했다. 그래서 아주 극적이고 동적이고 사실적인 그림처럼 보인다. 음악과 무용을 미술과 연결시킨 건 바로 그런 점 때문일 것이다. 당시 사진술의 순간포착을 그림에도 적용했다. 드가는 이를 통해 '찰나를 그린 화가'라는 이름도 얻었다. 고흐, 고갱 그리고 세잔
그리고 전직 증권거래소 직원이었던 고갱은 문명세계에 염증을 느끼고 원시적 색채로 미의 순수성을 찾으려 했다. 고흐와 결별한 후, 1891년 타히티로 떠나면서 예술의 근원과 원형을 찾아나셨다. 떠나기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문명영향에서 벗어나 평온해지기 위해서 떠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오로지 순수한 예술뿐이다"
세잔은 마치 장인처럼 그림을 공들여 작업했다. 사물을 문명화된 눈에서 벗어나 어린이처럼 순수한 서정으로 보려했다. 작고 운동감 있는 필치로 작품에 생동감과 중량감을 살렸고 사물을 하나의 원구, 원기둥, 원뿔로 단순화시켰다. 결국 면과 선을 구조화하여 입체주의의 길을 열었고 그래서 20세기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끝으로 '예술의 전당' 가는 길은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갈 경우 그렇게 편치만은 않았다. 볼만한 전시회를 가는 길, 그 접근에 있어 불편함이 없었으면 한다. 우선 지하철과 전시장을 연계하는 셔틀버스라도 늘렸으면 좋겠고, 전시회 가는 길 내내 관객이 더 즐겁고 편안하고 행복하도록 유도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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