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10년 후를 내다봐야” 매달 20-30회씩 강의하는 인기강사 유머감각이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지 36년 공직생활 동안 구청 시청을 두루 거쳐 신문배달 출신 동사무소 직원에서 대학교수로 젊은이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살아 색다른 미래촌 강의 서울에서 시골 마을의 사랑방 처럼 운영하는 “미래의 도시사랑방”을 다녀왔다. 도시 지식인(?)들이 퇴근길 일주일에 두 번 아니면 세 번씩 정기적으로 저녁에 미래촌이라는 이름의 공간에 모여서 일부는 참선도 하고 삼상오오 차와 정담을 나눈다 그러다가 저녁 7시 조그만 종을 치니 모두화이트보드가 걸린 강의실로 모인다. 긴 탁자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의자에 앉고 나니 미래촌 동장은 “제145번째 강의”를 알리고 강사를 간략하게 소개 하였다. 나는 마이크 없는 강의실에서 “지혜로운 세상” 이라는 제목의 70분 강의를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격식도 주제도 없는 이야기로 강의 이끌어 갔다. 처음 강의를 청탁 할 때부터 강의 진행요령을 알려 주었다. 강사료는 없고 봉사 해 달라는 미래촌동장 김국장의 귀 뜸을 들은 터라 낯설지 않았다. 회원 중에는 대기업연구원, 방송국프로듀서, 대학교수, 전직공무원.국악의 명창, 회사원등 남녀 25-6명이 함께 웃어주고 강의 중간 중간에 한마디 거들어 또 모두 웃게 만들고..... 강의가 끝나자 쇼핑백을 기념품이라고 주는데 그백 속에는 넥타이 하나. 차 재료 한 봉지, 명함지갑 하나, 엿 한 상자, 그리고 긴 풀잎과 열매로 남든 낯선 꽃다발 하나.... 당초부터 봉사하기로 했다고 선물 주는 것을 사양해도 막무가내로 박수를 치고 이것이 강사에게 사례하는전통이라고 받아 줄 것을 강요 했다. 방배 본동 2층에 한의원이 있는 빌딩의 3층의 꽤 넓은 공간을 어느 독지가가 제공해서 이곳에서 서로 사교도 하고 참선도 하고 강의를듣기도 하는데 기획하고 회원들에게 통보 하는 일 들을 봉사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8시 10분에 강의를 끝내고 잠시 미팅의 시간에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이어서 회원들은중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탁에 둘러 앉아 여행하고 돌아온 이야기 금강산 다녀온 에피소드등을 주고 받는데 화제는 끝이 없다. 복음밥, 우동 수준의 메뉴를 각각 주문하여 먹고 5000원씩 범위내의식대는 그때마다 각자에게 각출 한다고 한다 매번 식사는 그렇게 하는데 오늘의 강사 식대와 조금 초과되는 식대는 중국을 다녀오신 분이 부담 하겠다고 계산대 앞으로 먼저 나선다. 조금 배가 고플 때 먹는 저녁 식사라서 그런지 너무 맛이 있었다. 도시에도 좋은 사랑방 미래촌을 보고 이곳이 삶의 질을 높이는 현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동네도 이와 같은 사랑방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미 영월, 금산, 진천 등에 개설되어 운영 되고 있다고 했다. 정말 좋은 추억의 밤이었다. 참여 할 수 있게 소개한 김국장에게 감사한다. 끝 (2007.8.6 미래촌의 강의하고 나서)
사실 이보규(62) 전 한강관리사업소 소장을 만나러 가는 자리는 무척 어려웠다. 36년간 공직생활을 하셨던 분이라 시청 살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훤할 테고, 퇴직 후에는 대학을 비롯한 이곳저곳 강의를 나가시는 분이라 어설픈 인터뷰는 화를 자초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이보규 소장의 거침없는 유머로 단숨에 사라졌다. 그는 사전에 미리 주워들은 바대로 ‘역시’라고 할 만큼 탁월한 언변과 유머감각을 시종 뽐냈지만, 그의 유머에는 오랜 기간 삶을 살아온 이의 내공이 묻어났다.
지난해 6월 30일 한강관리사업소장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오늘로 퇴직한지 꼭 1년째가 된다. 36년간 매일 출퇴근 했던 일터를 놓는다는 것이 어찌 아쉽고 허탈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보규씨는 그런 허탈감을 재직할 때보다 더 열정적인 활동으로 메우고 있다. 퇴직 직후 평소 하고 싶은 분야를 연구하려고 <21세기 사회발전연구소>를 열었고, 매주 3시간씩 강의를 나가는 용인대 경영학과의 교수도 겸임하고 있다.
“퇴직 후 기업체의 요구를 받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제가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죠. 공직 생활을 하면서 쌓은 경력과 정보, 지식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전달할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뜻에서 연구소를 낸 거에요.”
그의 수첩은 거의 매일 강의 일정으로 꽉 차 있다. 매달 20~30회씩 기업체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동안 그는 어느새 인기 강사가 되어 있었다. 서울시공무원교육원, 서울지하철과 대한항공, LG, KBS, 서울 중구, 강남구, 여러 시의회 등 그를 찾는 곳도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그의 강의는 같은 업체에서 두 번 세 번 거푸 초빙할 정도로 인기다. 특히 강남구에서 진행한 ‘공직자의 각오와 자세’를 주제로 한 강의는 참석자들에게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그의 강의가 이렇게 인기를 끄는 것은 오랜 공직 생활을 바탕으로 한 알찬 강의 내용에도 있지만, 따분한 강의를 유머로 풀어나가는 그의 특유의 말솜씨 덕분이다. 결혼식 주례를 서도 하객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 정도라고 자랑하는 그의 타고난 유머감각은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란다.
그는 예순을 넘긴 나이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끊임없이 세상 사람들의 감각을 익히며 소재를 찾는다. 생활을 하면서 작은 부분도 소재가 있으면 빼먹지 않고 메모해 놓는 습관은 오래 되었다.
수첩 사이에서 슬그머니 꺼내놓은 이보규씨의 유머카드는, 그의 인기 강의가 거저 얻어진 요행이 아니란 걸 증명했다. 그만이 알아 볼 수 있는 내용으로 암호처럼 적힌 10여 가지의 유머 목록을 그는 항상 지니고 다닌다. 이것말고도 이씨의 수첩에는 각종 유머가 빼곡히 적혀있어 이것은 강의 때마다 강의 대상자들에 따라 적절히 골라 사용하곤 한다. 지난 1966년 11월 1일을 이보규씨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26살의 나이에 처음 마포구 아현5동 동사무소에서 처음 시작한 공직생활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옛날식으로 치면 5급, 현재로 따지면 9급의 말단 공무원부터 시작한 그는, 영등포구 새마을 과장과 관악구를 거쳐, 시청에서 행정과, 새마을지도과, 예산과, 민원과, 회계과를 두루 거쳐 송파구청 총무국장을 지냈다.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후에는 서울시 민방위 과장과 한강관리사업소장을 거쳤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그는 재직시절에 일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을 들을 만큼 열심이었다. 공직이 천직이라 생각했기에 제일 먼저 출근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 즐거움을 36년간 거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야간대학을 마쳤고, 시청으로 발령받아 사무관으로 진급한 후에는 서울시립대 도시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한강관리소장을 하면서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공부를 마저 한 것은 지금도 생각하면 뿌듯한 자랑으로 남는다. 이런 끊임없는 노력은 퇴직 후에 그가 더 활발한 활동을 하게 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되었다.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이보규 소장도 넉넉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충북 괴산의 농촌 출신의 그는 중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했다. 1년여 동안 농사일을 거들던 그는, 며칠간 부모님을 설득해 쌀 한 말을 갖고 나와 청주 친구 집에 얹혀살면서 신문배달을 했다.
그렇게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제대 후에 치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 전 소장이 처음 발령받은 곳이 바로 마포구 아현5동 동사무소. 마땅히 거처할 곳도 돈도 없던 그는 다른 동료의 숙직을 대신 서주면서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기거하게 시작했다. “동사무소에 취직해서도 살 곳이 없었어요. 월급은 대부분 고향 집으로 보냈으니까. 오죽하면 아현동 시장에서 백반 하나를 시켜 먹어요, 그럼 밥 한 공기가 나오잖아요. 그걸 거기서는 반만 먹어요. 나머지 반은 가져와서 저녁에 숙직실에서 먹는 거죠.”
어려운 시절에 대한 기억은 그에게 끊임없는 노력을 하게 했다. 그러나 스스로 채찍질을 하듯 살아왔다는 자신의 평가보다도 그와 같이 근무했던 많은 직원들을 그를 유머감각이 넘치는 멋진 상사로 기억한다. 처음 그를 대했던 이들은 밖으로 보이는 그의 밝은 태도만을 확인하지만, 오랜 기간 스스로 단련된 강인함은 그의 유머러스한 태도의 근간이 되고 있다.
아직도 공직생활을 시작한 20대의 열정을 갖고 사는 이보규씨는 대학교와 기업의 강의 말고도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 퇴직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이제는 조금 쉬고 싶으련만, 쉬는 것은 곧 정체라 생각하는 그는 한시도 몸을 가만두지 않는다.
작년 5월, 교회에서 기획한 연극으로 요양원 원장 역할로 무대까지 밟아봤고, 올해는 또 다른 연극의 기획을 맡았다. 주말마다 건강을 위한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단전호흡은 이제는 사범으로 활동할 만한 수준이 되었다. 다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또다시 공직을 선택할 것이라 거침없이 말하는 이보규씨는 이번엔 더 멋지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현직에 있을 때 너무 일만 한거 같아서 좀더 아래 직원들을 챙기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하지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온 이만이 감히 아쉬워 할 수 있는 대목이라 여겨졌다.
“항상 10년 후를 내다봐야 해요, 그리고 거기에 투자해야죠. 그게 10년 후의 가족관계이건 직장 관계이건 간에.. 주사시절엔 사무관 연습을 하고, 사무관 시절엔 과장 연습을 해야 합니다. 막상 그 직책이 되어서는 연습할 기회는 없어요. 바로 실전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현직에 있을 때 퇴직 후를 생각하라고 주문하는 그에게선 나이를 먹는다는 두려움 따위는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을만한 열정이 배어있었다.
[수도권 사람들]세미나강사로 ‘제2인생’ | ||||||||||||||||||||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3-07-21 23:00 | ||||||||||||||||||||
그의 현 직함은 ‘21세기사회발전연구소’ 소장 겸 용인대 정보과학대학 외래교수. 그의 수첩은 각종 관공서, 기업체 등의 강연 스케줄로 항상 빼곡하다. 퇴직 직후인 지난해 7월 구로구의회 세미나에 강사로 나선 것이 기폭제가 돼 최근 몇달 동안은 한달에 20차례 이상씩 강연하는 강행군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교육원, 서울시 지하철공사, 서울시 각 자치구 및 구의회부터 LG, 대한항공, 금융감독원에 이르기까지 각종 세미나 및 직원교육 명목으로 그를 찾는 곳은 무척 다양하다. 대한항공에서는 무려 12차례나 강연을 했으며 동작구 구의원들은 그에게 매료된 나머지 부부동반으로 또다시 강연을 듣기도 했다. 청주에서 야간고교를 졸업한 이씨는 군 제대 후 1966년 11월 마포구 아현5동 동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9급 공무원부터 시작, 3급까지 오른 셈이다. 이씨는 말단 공무원 시절 끼니를 거르면서 모은 등록금으로 야간대학을 마쳤고, 서울시립대 도시행정대학원 석사과정도 거쳤다. 2001년 부이사관 시절에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6개월 과정을 수료할 정도로 학구파였다. 그의 강연이 공직자의 자세부터 시작해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 기업의 흥망사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것도 평소 왕성한 그의 지식욕 덕분이다. <오관철기자 okc@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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