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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촌 美來村

미래촌생활강좌 제158강 070920(목) : 징기스칸, 몽고이야기/박현렬 중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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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서 힐빙시대로 -

Toward Healbeing Culture!




박 헌 렬 중앙대학교 교수/ 힐텍 포럼 대표

hyunryul@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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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왜 힐빙Healbeing시대를 요청하는가?
1. 현대사회의 현상과 특징은 어떠한가?
2. 20C 고도산업사회 문명발달의 부작용은 ?
3. 힐텍(치유과학기술)이란 무엇인가?
4. 힐텍을 적용한 1, 2, 3차 산업의 힐텍 산업화 전개방향은?
5. 현대사회의 질병치유방안 제시를 위해 왜 힐텍은 필요한가?

Ⅱ. 청소년 정신질병 치유를 위한 ‘힐텍 테마파크’ 조성

Ⅲ. 힐텍을 바탕으로 한 힐빙Healbeing시대의 비젼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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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왜 힐빙Healbeing시대를 요청하는가?

1. 현대사회의 현상과 특징은 어떠한가?

20C 지구촌은 고도산업화사회를 이룩해 왔다. 이러한 고도산업사회에서
우리는 산업문명에 종속된 사고방식의 만연으로 인간 본연의 생명중심사상을
망각한 채 비인간화된 21C에 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방식만을 추구하는 그릇된 풍조 속에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갈수록 증가일로에 있는 자동차의
보급ㆍ에어컨의 일반화ㆍ범람하는 일회용품들ㆍ소비생활에 따른 폐기물의
대량방출 등... 이와 같이 각종 제품의 대량소비와 인공화학물질의 남용으로
자연환경의 피폐화가 가속화되고 있음에도 우리는 오염된 자연환경에서
얻는 농ㆍ수ㆍ축ㆍ임산물 등을 섭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환경 속에
놓여진 우리의 衣食住생활은 우리의 건강을 망가뜨려 각종 질병은 물론
암, 등 만성 난치병환자를 비롯한 중병환자의 수는
날로 늘어만 가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우리는 IT정보통신기술 telecommunication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상품들을
이용, 소비하며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오늘도 DMB(지상파 방송)를
이용한 휴대용 IT제품(휴대폰ㆍ노트북ㆍ네비게이션 등), 휴대용 멀티기능
PMP제품(동영상ㆍ게임 등)등 새로운 IT제품들이 속속 출하되고 있다.
이렇게 IT정보통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편리하게 살게 된 반면에
새집 증후군에 의한 아토피성 피부질환ㆍ두통, 천식 등
화학물질 과민증질환ㆍ청소년 정신질환ㆍ노인자살이 급증하는 등,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는 가속화되고 있다.

2. 20C 고도산업사회 문명발달의 부작용은?

18C 중엽 영국에서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인류는 고도산업사회로 가기 위해
에너지와 물자를 대량으로 소비하며 폐기물의 대량방출을 일방적으로
자행해 왔다. 20C 후반에 들어서자 드디어 여러 가지 지구환경문제가 돌출되기
시작했는데, 프레온가스 소비에 의한 오존층 파괴와 유해 자외선의 증가,
산성비에 의한 자연환경 산성화, 지구 온난화에 의한 이상기후 현상과
자연재앙급증, 생물 다양성의 감소, 유해 화학물질인 환경호르몬 확산에 의한
생물기형체 증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구현상들의 발생으로 점점 병들어 가고 있는 인간과
자연생태계의 만성질병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치유해야 할 것인가?
그간 눈부신 첨단의학과 고도정보화사회의 뒤안길에서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된 현대인들은, 우리가 자연인으로 날 때부터 타고난 자연치유력을
높여주는 통합적 치유방안이 하루바삐 제시되어, 건강과 지속가능한 사회
Healthier and Sustainable Society가 실현될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3. 힐텍(치유과학기술)이란 무엇인가?

20C 후반 이후,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환경오염으로 인해 인간과 생태계에
나타난 많은 질병을 근본적이고 체계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수단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절실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병든 인간과 오염된 자연환경을
근원적으로 치유하고 복원하여 현재의 IT시대에 이어 더 나은 다음 시대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곧 통합과학기술인 힐텍(치유과학기술, Integrated Healing Science and Technology)을 활용하는 힐텍산업의 창출이 요청되기 시작한 것이다.

힐텍이란 인류와 자연을 치유하고 복원하여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통합과학기술로서 인간존중의 문화와 이념을
과학기술 연구와 운영의 기본태도로 삼고, 여러 새로운 과학기술 및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지식과 정보를 융합하여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운영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21C 현시대의 요청에 부응한
자연과학공학ㆍ인문학ㆍ사회과학 등 제 영역을 융합, 새로이 창출하려는
통합적인 치유과학기술로서 前시대에 인문학, 사회학, 혹은 문화를 도외시했던
기존의 과학기술이나, 자연과 인간의 상호조화를 파괴하거나 무시해온
산업경제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결국 힐텍이란, 인간과 문화와 자연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통합과학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 인간건강의 원천을 제공하는 1차 산업생산물인 농ㆍ수ㆍ축ㆍ임산물,
갯벌산물 및 기타 천연산물들을 건강하게 재배ㆍ사육ㆍ양식하는 과학기술.
둘째 ; 산업화의 과정에서 심신이 병든 인간과 파괴되고 손상된 자연환경을
치유하기 위해 화학ㆍ전자기파학ㆍ생명과학ㆍITㆍBTㆍNTEㆍTCT
(영상매체기술) 등을 통합하며 활용하는 과학기술.
셋째 ; 지역과 국가 간의 반목과 질시, 갈등과 투쟁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서로 상생 상호조화하려는 정신과 철학을 고양시킴으로서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산업경제 시스템을 지향하는 과학기술.

힐텍이 활용되는 제 측면




4. 힐텍을 적용한 1, 2, 3차 산업의 힐텍 산업화 전개방향은?

4-1.
1차 산업 ; 사양, 피폐화된 1차 산업분야에 힐텍을 접목하여 도농 간 소득격차를
해소한다. 힐텍을 활용한 치유 및 건강 기능성을 지닌
농 ㆍ 어 ㆍ 축 ㆍ 임ㆍ갯벌산물을 생산하여 국민건강증진은 물론,
농어민의 소득증대를 꾀할 수 있다.

1) 농업분야 ;
힐텍기술을 이용한 힐텍농법으로, 치유ㆍ건강기능을 갖는 약용농작물 생산지역특성에 따른 단지조성 및 최첨단 산업화 조성함.
[예: 흑미(신장치료제)와 황귀리(대장, 당뇨치료제)]

2) 임업분야
치유ㆍ건강기능성을 갖는 생약 임업단지조성 및 최첨단 산업화 추진함.
예: 소나무와 버드나무 육림(버드나무즙: 골다공증 치유)

3) 축산업분야
축산방법을 개혁하여 독성이 없고 치유ㆍ건강기능까지 갖춘 신개념 축산물과 제품산업으로 전환하여 국민건강을 치유함.
예: 기존 우유생산방식(성장촉진제 및 항생제 과다투여) 탈피ㆍ개선

4) 수산업분야
힐텍기술을 이용하여 양식법을 혁신시키고 양식환경을 개조시켜 무공해ㆍ치유ㆍ건강기능성을 살리는 힐텍적 개념의 수산물 생산단지 조성함.

5) 갯벌산물업분야
힐텍(BT, NT와 함께)을 이용해 병든 갯벌을 건강한 갯벌로 치유하여 질병치료용 약제 생물 양식, 갯벌약용화 기술과 갯벌생물 생약화 기술로 고부가 가치 산물 생산을 추진함.
예: 암 치료제 등 최첨단 질병치료제 합성원료

4-2.
2차 산업 ; 우리의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2차 산업분야에서는
토양ㆍ공기ㆍ물ㆍ빛ㆍ갯벌을 치유하는 힐텍 기술을 개발, 사람은 물론,
동식물을 치유하는 힐텍 기술산업으로 발전시켜 향후 IT산업을 훨씬 능가하는
새로운 경제주체산업으로 육성시킴으로서 새 직종과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경제발전과 국토균형발전에 크게 기여케 한다.

1) 의(衣)분야
치유, 건강기능성 의복(비타민 내의, 항균양말), 신발, 액세서리, 등
衣산업을 육성함.

2) 식(食)분야
치유기능성 곡물 수산물ㆍ축산물ㆍ식물(은행나무의 잎과 알갱이, 버드나무 뿌리와 싹) 재배ㆍ양식ㆍ사육의 권장과 갯벌산물 생산을 유도함.

3) 주(住)분야
치유기능성 건축자재·가구, 치유기능성 가옥을 연구개발하여 건설함.
[예: 버드나무(골다공증 치유), 소나무집(당뇨병 치유)]

4) 락(樂)분야
갯벌, 해안지역 특성에 적합한 fun sports 사업으로 치유ㆍ관광단지를 조성함.
[예: Healing Capsules Town on...]

5) 토양분야
오염ㆍ황폐화된 토양을 치유해 건강한 양질의 토양으로 바꾸어 무공해 치유성 농ㆍ축ㆍ임산물 생산을 위한 토양치료학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음.

4-3.
3차 산업 ; 치유력과 건강증진력을 가지도록 자연환경을 치유ㆍ복원ㆍ조성하여
현대인들의 질병치유에 활용케 한다. 그 지역의 특성
(자연환경, 특산물, 역사ㆍ문화유적 등)을 고려한 치유관광 공원(Healall Park),
행복 체험시설(fun 스포츠, 각종 체험장 등)을 조성하여 국민건강회복은 물론,
새 일자리 창출과 관광소득증대에 기여한다.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면 산지ㆍ갯벌ㆍ해안에서는 각 지역의
자연환경특성을 고려하여 fun 스포츠 공원, 휴양ㆍ치유공원을 조성하여
치유관광 소득증진에 기여한다.

1) 산지ㆍ갯벌ㆍ해안지역
각 지역의 자연특성을 살려서 fun스포츠 공원ㆍ머드 스포츠공원ㆍ치유관광 공원ㆍHealall ParkㆍHealing Capsules Town on Sea를 조성함.

2) 행복ㆍ희락산업분야
치유건강, 행복 체험센터와 공원을 조성함.
[예: 목욕 지도사 양성(관절염, 당뇨병치유 등)]

5. 현대사회의 질병치유 방안 제시를 위해 왜 힐텍이 필요한가?

21세기 첨단과학 분야의 개별적인 발전은 눈부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질병과 정신건강은 도외시한 채 과학기술 발전에만 눈이 먼
물질만능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여태껏 이러한 현상에 관해 보다
통합적인 접근이 시도된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어쩌면 도시민들은 주말이면 야외로 나가서
자연을 즐기는 것으로 이러한 문제들이 해소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가선용이나 레저생활은 극히 일시적인 해소책일 뿐이다.

건강한 삶의 질(Quality of Life)이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힐텍개념을 이해하고 힐텍정신을 깨닫는
순간이야말로 현대질병의 치유가 시작되는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힐텍을 활용한 다양한
치유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하여 보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Ⅱ. 청소년 정신질병 치유를 위한
‘힐텍 테마파크’ 조성

컴퓨터 병, 인터넷 중독, 휴대폰 중독에 걸려있는 많은 청소년들을 어떻게
하면 그것들로부터 헤어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을 우리의
미래사회, 나아가서 이 지구촌 사회의 건강한 지도자로 양성할 수 있을까...?
청소년을 건강하게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힐텍 치유프로그램을 어떻게
연구개발하여 그들의 급박하고 절실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현재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를 치유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힐텍 테마파크를 조성해 대처할 필요가 있다. 지역풍토에 적합한 건강기능성
식물의 식재와 IT통신시설을 갖춘 다양한 체험장으로 꾸며진 테마파크에서는
힐텍 프로그램 (영상치유ㆍ음악ㆍ미술치유 프로그램 등)을 활용하여
청소년 질환자들의 치유하여 건강을 회복케 할 것이다.
(힐텍 테마파크 활용 ; 아래 그림)




힐텍 치유프로그램에는
역사ㆍ문화ㆍ예술ㆍ자연환경ㆍ영상ㆍ의료ㆍ교육ㆍ건강ㆍ복지 등의
여러 분야를 통합연계하여 연구개발한 다양한 컨텐츠가 포함되어
청소년들의 질병을 사전에 예방ㆍ치유함으로써 국민건강증진은 물론,
국가보건재정지출을 감소시켜 건강한 복지사회를 구현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한 힐텍파크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나보다는 가족,
그리고 사회, 나아가 국가와 민족, 더 나아가서는 세계인류를 위한 사고를
길러주는 힐텍문화, 힐텍철학을 가르치고 이해시킬 것이다.
이런 힐텍 체험들을 통해서 건강해진 우리 청소년들은 21세기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됨으로서 지구촌의 인류복지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Ⅲ. 힐텍을 바탕으로 한
힐빙Healbeing시대의 비전제시

힐텍을 활용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21세기 인류사회의 전망은 다음과 같다.

첫째 ; 치유를 통한 자연환경의 원상회복과 건전한 이용
둘째 ; 인간건강의 원천회복
셋째 ; 농ㆍ임ㆍ축ㆍ수산ㆍ서비스업 등의 힐텍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구조의 혁신
넷째 ; 개인이 생산자이며 소비자가 되어 각자가 경제주체로서
조화롭고 균형있는 활동

이렇게 함으로써 각 지역별 국가별로 건강하고 공평한 복지사회구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힐텍의 비전제시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세계가
IT정보통신 제품에 의한IT문화를 구가하고 있듯이, 미래에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마땅히 미래지향적인 힐빙문화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힐텍은 국가간, 지역간의
경제ㆍ정보ㆍ문화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전인류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지속가능한 인류사회구축을 위한 힐빙시대(Healbeing Century)를
열어갈 것이다.


성명 : 박헌렬
학교 : 중앙대학교
학과 : 화학신소재공학부
성별 : 남자
e-mail : hyunryul@cau.ac.kr
URL : http://ms.cau.ac.kr/~earthenv

이력사항
1981~현재 중앙대학교 공과대학 화학신소재공학부 교수
2001~현재 (사)생명의숲 국민운동 지도위원
2002.3~2005.2 중앙대학교 기술과학연구소 힐텍연구센터 소장
2004~현재 힐텍 포럼 대표
2004~현재 환경관리공단 환경기술평가 심의위원
2006~현재 한국건강연대 자문위원
2006~현재 전국문화원연합회부설 문화동력연구소 연구위원
2007~현재 아이건강국민연대 공동대표

전공분야
지구환경론,힐텍(치유과학기술)과 힐빙문화

주요 저서 및 논문
지구온난화,그 영향과 예방,저자:박헌렬,우용출판사,2003.11.1.
지구촌의 환경과 인간,저자:박헌렬 ,영풍문고,2000.2.28.
몽골의 자연과 문화자산에 연계한 힐텍적 체험문화관광 산업화 방안,제23회 한-몽국제학술대회,장소: 국립몽골대학교(울란바타르), 20007.7.23.
당성의 자연과 문화자산에 연계한 힐텍적 체험문화관광트렌드의 조성방안,주최: 화성시,화성문화원,중앙대학교 해외민족연구소,장소: 수원대학교 벨칸토 아트센터, 2007.6.8.
피폐된 어린이 건강 살리는 힐빙(의식주)문화시대를 활짝 열자,아이들을 위한국민연대 출범식, 장소: 프레스센터19층기자회견장, 2007.3.30.
웰빙에서 힐빙시대로,박헌렬,2006건강축제심포지움,국가인권위원회배움터.2006.5.4.
힐텍을 활용한 몽골과의 상생발전방안,박헌렬,몽골 울란바타르대학교,국제동북아시아학회 국제학술대회,2006.8.5.
"Grobal Warming in 20C and its Preventive",Hyun-Ryul Park, 7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O2 Utilization, Oct., 12~16, 2003, Hoam Convention Center, Seoul, Korea
"Current Fossil Energy Use Trend and Enforcement of Greenhouse Effect",Hyun-Ryul Park, China-Korea Symposium on Green Technology, Feb., 11, 2004, Foreign Expert Building, Tianjin Univ., China

칭기즈칸과 몽골 세계제국의 등장

동·서양 쥐고흔든 첫 세계제국 출현
칭기즈칸, 1206년 몽골 유목민 통일하고 초원 밖으로
교역 위한 원정전쟁이 세계 정복전쟁으로 확대
후계자 우구데이- 뭉케- 쿠빌라이로 이어지며
유라시아 대륙과 해상까지 휩쓸고 세계역사 바꿔
▲ 칭기즈칸 청동상(像) (photo 조선일보 DB)

몽골제국의 출현은 세계 역사상 대단히 경이로운 현상이다. 유럽의 한 역사가는 “사냥과 목축으로 살아가던 미개하고 가난하며 수적으로도 얼마 되지 않던 민족이 어떻게 해서 무한한 인적 자원을 갖고 있던 아시아의 강력한 문명국가들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물론 당시 몽골인이 그렇게 ‘미개’했는가 하는 문제는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적으로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1206년 칭기즈칸이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대집회(쿠릴타이)를 열어 ‘몽골국(Mongol Ulus)’의 탄생을 선포했을 때, 휘하에 들어온 유목민을 모두 천호(千戶)로 편성하였는데 그 총수는 95개였다. 만약 1호를 평균 5명으로 계산한다면 당시 칭기즈칸이 지휘한 몽골인은 남녀노소 다 합해봐야 50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같은 시기 중국의 인구는 북쪽의 금나라와 남쪽의 송나라를 모두 합해서 이미 1억명을 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단순한 산술적 계산으로도 1 대 200이라는 비율이 나오는데, 1당 100이 아니라 1당 200의 기적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먼저 그들의 출현을 목격하고 그들과 싸우면서 그 힘을 실감한 당대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의문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우선 갑작스럽게 출현한 이들이 지닌 여러 가지 특징, 과거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미지의 집단이라는 신비성, 전쟁 시 적에게 가하는 엄청난 파괴력, 그와 함께 수반되는 잔인함…. 몽골의 또 다른 명칭이었던 ‘타타르(達·Tatar)’가 라틴어에서 ‘지옥’을 뜻하는 ‘타르타르(Tartar)’와 비슷한 발음이었기 때문에 유럽인에게는 그 이름 자체가 이미 지옥의 사자, 악의 화신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혹은 신이 인간의 타락을 징벌하기 위해서 보낸 도구, 즉 일찍이 훈족의 아틸라를 가리켜 부르던 ‘신의 채찍(Flagellum Dei)’이 다시 나타난 것처럼 여기기도 했다.


물론 오늘날의 학자들이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몽골 세계제국의 출현을 설명함에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여러 가지 가설이 제시되었다. 우선 ‘기마전술의 탁월함’이 꼽힌다. 총과 화약이 널리 사용되기 전에는 기마전이 가장 신속하고 위력 있는 공격방법이었고, 다른 누구보다 유목민이 그것을 잘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즉 ‘어찌해서 그 전에는 그러한 대대적인 정복이 일어나지 않았는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몽골 지도층의 탁월한 능력, 특히 칭기즈칸의 리더십에 대한 강조이다. 그는 부하들을 포용하고 그들로부터 헌신적인 봉사를 이끌어내는 탁월한 인간적 친화력, 군대를 조직하고 규율을 부여하며 실전에서 치밀한 작전을 통해 전쟁을 승리로 끌고 가는 전략적 능력까지 갖춘 인물로 평가되었다. 말하자면 ‘야만의 어둠’을 뚫고 빛나는 탁월한 ‘천재성’인 셈이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역할을 과도하게 평가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한 책의 저자는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다. “칭기즈칸의 업적을 미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자무식의 노예가 오로지 자신의 탁월한 개성과 카리스마와 결단력을 바탕으로 북미 대륙을 외국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고 미합중국을 창건했으며, 알파벳 문자를 창제하고 헌법을 기초했고, 보편적인 종교의 자유를 실현하고 새로운 방식의 전쟁술을 도입했으며, 군대를 이끌고 캐나다에서 브라질까지 진군했고,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포괄하는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 교역을 활성화시켰다.” 이 같은 단정은 전형적인 영웅사관의 발로가 아닐 수 없으며 많은 사람의 동의를 쉽게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칭기즈칸에 대해 우리가 갖는 대표적 오해의 하나는 그가 ‘세계정복자’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세계를 정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초원의 유목민으로 태어났으며 유목민으로 죽었다. 그의 세계관 속에서 초원이 아닌 다른 지역은 부차적인 의미밖에 없었고 그런 곳을 지배하고 호령할 생각도 별로 없었다. 아직 그의 정확한 출생연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1227년에 사망한 것은 확실하며 대략 65세 전후가 아니었나 추측된다.

▲ 몽골제국 건국 800주년을 맞아 지난해 7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나담축제의 한 장면. (photo 조선일보 DB)

그의 인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어려서 아버지가 독살된 뒤 부르칸 칼둔 산으로 들어가 숨어 살면서 온갖 고난을 경험한 유소년기, 부르테라는 여자와 혼인한 뒤 케레이트 부족의 수령 옹칸의 휘하에 들어가 자신의 세력을 키우다가 다른 부족을 하나씩 굴복시키고 마침내 초원의 맹주로 우뚝 서게 되는 청장년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1206년 건국 이후 남쪽의 서하(西夏)와 금나라, 서쪽의 호레즘을 원정하며 제국의 기틀을 닦은 노년기.


그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대부분 초원에서 벌어졌고 거기서 우러나온 체험이 그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형성하고 결정했다. 타타르 부족에 독살 당한 부친의 최후는 그에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혈수(血讐)의 원칙을 골수에 사무치게 했고, 부친이 사망한 뒤 의지할 곳 없는 그의 일족을 야멸차게 버리고 가버린 타이치우트 씨족의 배신행위는 동족에 대한 불신을 그에게 심어주었다. 반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변함없는 의리와 충성으로 그의 ‘황금의 목숨’을 지켜주던 부하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주군과 종사(從士) 사이에 존재하는 절대적 신뢰감을 알게 되었고, 초원의 패권을 두고 최후까지 자신과 경쟁한 죽마고우 자무카의 죽음에서 권력 투쟁의 비정함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메르키트나 타타르와 같이 집요하게 저항하던 부족을 굴복시킨 뒤 수레바퀴의 축보다 키가 더 큰 사람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 잔혹함, 몽골 통일 후 만호·천호·백호·십호를 조직하여 무질서하고 자립적인 유목민을 명령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전쟁기계’로 전환시킨 조직력, 제국의 군대를 지휘하는 최고의 사령관에 동족을 배제한 채 자신에게 충성한 막우들을 기용한 포용력 등은 모두 그 같은 초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1206년 그는 드디어 눈길을 초원 밖으로 돌렸다. 남쪽으로는 조상 대대로 주군 노릇을 해온 여진족의 금나라가 있었고, 서쪽에는 이슬람권의 신흥 강국 호레즘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들과 전쟁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초원의 맹주로 만족할 수 있었다. 다만 이제 막 건설된 몽골국의 원활한 경영을 위해서는 이들 나라와 교역관계를 유지하고 초원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물자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필요가 있었다. 후일 칭기즈칸이 금나라를 치고 호레즘을 원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런 나라들을 정복하여 멸망시키고 지배하려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상호체결한 조약을 무시하거나 교역을 위해 파견한 상인단을 살해했기 때문에 그것을 응징하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가 처음부터 정복하고 통치할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적국들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저항을 계속하자 응징과 보복의 강도는 더욱 높아갈 수밖에 없었다.


응징전에서 정복전으로 본격적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상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우구데이(재위 1229~1241)의 시대부터다. 금나라가 조약 이행을 거부하고 수도를 옮겨서 황하라는 물의 장벽을 이용해 항전을 결정하자 우구데이도 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구데이는 1230년 군대를 삼분하여 북중국으로 밀고 내려갔고, 섬서·하남 등지를 공략한 뒤 1233년에는 개봉을 함락하였다. 금의 마지막 황제는 다음 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러나 몽골과 연합한 남송이 대가를 요구하며 개봉과 낙양을 점령하자 몽골은 다시 남송과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또한 우구데이는 1234년 큰형 주치의 아들 바투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몽골군 15만명을 편성하여 서방원정을 단행, 러시아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몽골의 세계 정복은 제4대 칸인 뭉케(1251~1259)의 즉위와 함께 본격적으로 재개되었다. 그는 먼저 이슬람권의 압바스조를 치고 나아가 시아파에 속하는 소위 ‘암살자단’을 제거하기 위해 자기 동생인 훌레구를 파견하였다. 그는 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마침내 1258년에는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서아시아에 몽골 정권을 수립하였다. 그런데 당시 가장 난적은 남송이었다. 왜냐하면 강과 운하와 호수가 많은 회하(淮河) 이남에서 강력한 수군을 보유한 남송을 굴복시키려면 몽골의 기마병력만으로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고려 왕실이 강화도로 피신했을 때 몽골군이 그것을 어쩌지 못하고 30년을 허비한 것을 생각한다면 ‘바다 같이’ 넓은 양자강의 저지효과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1257년 뭉케는 군대를 나누어 자신이 직접 중앙군을 지휘하고 사천 방면으로 들어갔고, 동생 쿠빌라이에게 좌익군을 맡겨 회하를 건너서 양자강 연안의 악주(鄂州)에 가도록 했다. 그러나 여름에도 쉬지 않고 공격을 강행하던 뭉케는 1259년 여름 사천의 조어산(釣魚山)에서 전염병으로 급사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남송 경략의 대업은 그의 계승자인 쿠빌라이(1260~1294)의 몫이 되었다. 그의 시대에 몽골군은 일대 변신을 보였다. 초원의 기마군대가 견고한 성채를 함락하는 공성술을 결합하게 된 것이다. 양자강의 지류인 한수(漢水) 유역의 쌍둥이 도시인 번성과 양양을 포위하던 몽골군은 1273년 새로운 병기를 도입했다. ‘회회포(回回砲)’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중동의 무슬림이 만든 거대한 투석기였다. 바위덩어리가 700~800m 날아 한수를 건너 성벽을 내리치면서 부수어 나갔고 결국 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그러나 몽골군의 변신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양양의 함락과 함께 투항한 남송의 수군을 흡수하면서 점차 양자강을 제압하게 되었고, 남송이 무너진 뒤에는 거기에 있던 해군을 받아들였다. 비록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일본과 남중국해 지역에 대한 원정은 해군으로서 몽골군대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대몽골 울루스’, 즉 몽골제국은 초원의 유목국가에서 출발하여 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대부분과 해상까지 장악하는 세계제국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 칭기즈칸의 돌. 칭기즈칸의 조카 이숭게가 서방원정에서 귀환하는 도중에 열린 활쏘기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제 다시 원래의 의문으로 되돌아가자. 어떻게 해서 초원 한구석의 ‘미개한’ 몽골인이 이런 일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단순히 기마군대의 힘 혹은 칭기즈칸의 천재성에 의한 것이 아님은 분명해졌을 것이다.


물론 출발은 거기부터였다. 그러나 그들은 놀라운 학습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주변지역과의 전쟁 과정에서 빠른 속도로 하나씩 배워갔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가진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새로운 것에 대해 개방적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라고 고집하며 다른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 새로운 집단, 새로운 이념을 어려움 없이 받아들여 소화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나갔다.


‘대몽골 울루스’의 군대가 기마전은 물론이지만 공성전, 나아가 수상전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또 몽골 군대의 일부를 구성하며 정복전에 동참한 수많은 다양한 집단의 존재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몽골의 정복전이 결코 몽골인만의 성취가 아니라, 몽골을 핵심으로 하는 대통합력의 추동이었음을 입증한다. 몽골제국의 지배층을 구성하던 ‘색목인(色目人)’이라는 집단이 그 점을 단적으로 말해주는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뜻을 지닌 그 말이 바로 몽골제국의 핵심적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몽골제국은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제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치즘이 표방하던 게르만 민족우월주의나 유대인이 내세우는 배타적 선민의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몽골의 군주들은 자신들이 ‘영원한 텡그리’로부터 힘(k?ch?n)을 부여 받았다고 믿었지만, 그것이 곧 몽골지상주의나 텡그리지상주의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몽골제국은 칭기즈칸 일족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인정하는 가운데 다양한 집단과 문화가 공존하는 다원주의적 질서였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질서를 바탕으로 팍스 몽골리카가 실현된 것이다. ▒



바투의 서방원정군


각 집안의 큰아들만 징발해서 편성했다고 하여 ‘장자원정군’으로 알려진 이 군대의 총사령관은 칭기즈칸의 큰아들인 주치의 장자 바투였다. 원정군은 유라시아 초원을 가로질러 볼가강에 이르렀고, 그 부근에서 유목하던 불가르와 킵차크인을 격파하고, 1237년에는 ‘루씨(Rus’)’의 땅, 즉 러시아로 들어갔다. 당시 러시아는 여러 공국으로 나뉘어져 서로 유기적인 협력체제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몽골군의 침공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다. 콜롬나, 모스크바, 블라디미르 등의 도시가 차례로 유린되었고, 1240년 겨울에는 수도 키에프가 함락되었다. 도시 전체가 잿더미로 바뀌는 참상과 함께 죽은 사람들을 위해 “울어줄 눈도 남지 않았다”고 할 정도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


몽골군은 다음 해에 카르파티아산맥을 넘어 헝가리를 공격했고, 폴란드로 들어간 선봉대는 리그니츠 벌판에서 2만명의 폴란드와 독일 기사단을 괴멸시켰다. 이렇게 해서 몽골군은 전군을 집결하여 서유럽으로 진입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이를 저지할 세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유럽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았다.


그러나 1242년 여름 몽골군은 모든 작전을 중지하고 철군을 시작했다. 그것은 동쪽 멀리 몽골고원에서 그들의 대칸인 우구데이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는 초미의 관심사를 두고 한가롭게 전쟁을 계속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hdkim@snu.ac.kr
기획 = 박영철 차장대우 ycpark@chosun.com

새로운 인류문명사회의 꽃, 힐텍산업

중앙대학교화학공학과교수박헌렬


산업문명사회가 18세기 중반이래 개화하여 발전해 오다가, 20세기 들어 기술문명의 꽃이 만발하였다. 그러나 20세기 고도 산업사회는 생산성 향상과 이윤추구에만 몰두한 나머지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고도 산업사회의 산물인 화려한 꽃의 이면에, 즉 풍요로운 삶의 이면에는 한편으로 짙은 어두운 그림자가 인류에게 드리워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자연의 훼손과 다종다양한 생산용품의 개발과 범람에 의한 환경파괴, 물질 우선주의에 의한 인간성의 메마름, 온갖 IT제품소비에 의한 극도의 편리성 추구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이렇게 야기된 부작용과 역현상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극복해야 할 것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치유, 복원해야 할 것인지가 오늘날 인류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조류의 사회적 문제에 우리가 자성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생명 중심, 자연중심의 사상과 과학기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IT, BT, CT, ET, NT 등을 아우르는 어떤 통합기술(Integrated Science and Technology)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힐텍연구회'는 "힐텍(Healing Science and Technology)"이라는 인간의 건강을 치유하고 자연환경을 치유, 복원시키고자 하는 통합기술을 제창하면서 체계적으로 연구·개발에 앞장서고자 한다.

힐텍이란 환경오염으로 오늘날 인간병의 원인이 되고 있는 농업, 임업, 축산업, 수산업, 갯벌 등에서 얻는 천연 산물들을 건강하게 재배·사육·양식하는 과학기술이다. 또한 인간과 생물의 질병치유를 위해서 1차,2차,3차 산업에 힐텍 개념과 기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패러다임의 산업경제를 구축하여 지속가능발전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과학기술이다.

구체적으로 농업분야에서는 힐텍기술을 이용한 힐텍농법으로 치유·건강 기능성을 살리는 약용농작물 생산(예컨대, 신장치료에는 흑미, 대장, 당료치료에는 황귀리재배)과, 임업분야에서는 치유·건강 기능성을 갖는 생약성 수종의 유전자 개발과 육림 그리고 그 임산물로 건축자재·가구, 치유기능성 가옥개발(예컨대, 골다공증치료에는 버드나무집) 등이 있다. 축산업에서는 축산방식을 힐텍적으로 개혁하여 독성이 없고 치유, 건강 기능성까지 갖춘 신 개념 축산물과 유제품 산업으로 전환하여 국민건강을 치유하는데 이바지하도록 한다.

수산업에서는 힐텍기술을 이용한 양식법 혁신과 양식 환경을 개조시켜 무공해, 치유 ,건강 기능성을 살리는 힐텍적 개념 수산물 생산단지를 조성한다. 힐텍기술 도입에 의한 2차 산업분야의 혁신으로는 현재 성장촉진제 및 항생제의 과다투여에 의한 소사육 방식으로부터의 개선(예컨대, 무약품으로 건강한 동물사육), 오염 황폐화된 토양을 힐텍적 치유에 의한 양질 토양으로의 개량 등이 있다.

3차 산업분야에서의 힐텍도입에 의한 혁신에는 산지와 갯벌, 해안 지역에 훤(fun)스포츠 공원, 치유관광공원(Healall Park)의 조성 등과 치유기능으로 전환한 행복·희락산업육성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2010년대에는 IT산업을 세계초유의 힐텍산업으로 대체하여 IT경제 몇 배 이상의 국부를 창출하도록 철저한 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많은 직종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것이며 이를 위해 힐텍적 사회운동을 함께 펼쳐가 보자.

종국적으로 힐텍도입으로 우리 사회의 병들어 곪아진 부분을 치유, 복원하고자하는 더 나아가서는 세계인류와 자연을 치유, 복원하여 세계인류복지 향상과 평화 정착에 기여할 수 있는 앞선 민족으로 깨어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