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졸업 후 美 이민, 고생 끝 사업가로 성공
"뉴욕 코리아타운 입구에 세종대왕 상 세우겠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생후 두 달 된 아들이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돈도 없었고 의료보험도 되지 않았다. 어렵게 버스 한 대를 구입해 관광 사업을 하게 됐지만 경쟁자들의 갖은 방해로 버스 창문이 성할 날이 없었다. 심지어 중국 갱단이 돈을 내놓으라며 가족까지 협박했다. 어떻게 하루하루 살아갔는지 아니, 버텼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숱한 고생 끝에 그는 현재 미국 뉴욕에서 명망 있는 사업가로 성공했다. 버스 54대, 직원 120명을 둔 관광버스 회사 '스카이 라이너'의 피터 김(한국명 김현석ㆍ43)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의 극적인 삶이 10월3일 첫 방송 예정인 SBS TV 24부작 드라마 '로비스트'(극본 최완규ㆍ주찬옥, 연출 이현직)를 통해 펼쳐진다.
제작사 초록뱀미디어는 "피터 김의 실제 삶이 드라마 전반 12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처음에 죽어있던 이야기가 피터 김의 인생을 만나면서 비로소 생동감을 얻게 됐다"고 전했다.
'로비스트'의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피터 김을 27일 서울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갖은 고생 끝에 성공한 사업가라 다부진 인상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는 수줍음이 많았고 조용하고 젠틀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는 내내 마치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을 감상하는 듯했다.
"80년 용산고등학교 1학년 때 과외금지령이 내렸어요. 그런데 몰래 과외를 받다가 적발됐습니다. 당시에는 신문에 크게 났을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어요. 정학 30일 처분을 받았고 학교에서는 매일 맞으며 반성문을 썼어요. 간신히 졸업일수를 채운 후 곧바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왔어요. 도저히 한국에서는 살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대학을 마치고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버스 사업이 비전이 있어 보였어요. 부모님께 5천 달러를 빌려 버스 한 대를 구입한 뒤 직접 몰면서 관광객을 태우고 다녔어요. 당시 그런 관광버스 사업은 중국인과 이탈리아인들이 꽉 잡고 있었는데 텃세와 견제가 엄청났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유리창이 깨져 있었고 어떤 날은 총으로 유리창을 난사한 경우도 있었어요. 관광객을 태우기 위해 관광지에서 자리 싸움도 대단했죠. 자리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냐 하면 2003년에는 운전사끼리 싸우다 두 명이 죽기도 했어요. 그만큼 험하죠."
'로비스트'는 가난한 미국 이민자 마리아(장진영 분)가 고생 끝에 로비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로 전반부는 마리아의 고단한 미국 생활을 담는다. 애초 제작진은 마리아 가족이 작은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것으로 설정했으나 미국 헌팅 과정에서 피터 김을 만난 뒤 관광버스 운전을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덕분에(?) 슈퍼마켓에서 잡일을 하는 설정이었던 장진영이 졸지에 터프한 버스 운전사로 둔갑하게 됐다.
피터 김이 버스를 몰던 시절의 고생담은 고스란히 마리아의 이야기로 옮겨졌고 그 과정에서 좀더 극적인 장치가 추가되기도 했다. 단적으로 버스 유리창이 깨졌던 '실화'는 드라마에서 아예 방화로 버스가 전소되는 것으로 바뀐다.
"하루는 중국 갱단이 찾아왔어요. '보호비' 명목으로 5만 달러를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계속 협박을 하더니 나중에는 가족까지 위협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마련해 갱단을 직접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놀라더군요. 자기들이 돈을 받으러 온다고 했는데 직접 돈을 들고 갱단이 있는 곳으로 찾아온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대요. 저는 그 자리에서 '돈을 내놓기는 하지만 너희들한테 보호를 받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가족들을 협박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제가 미국에 건너와 고생한 이야기를 했어요. '나도 근근이 살아가는데 같은 이민자들끼리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돌아왔는데 이틀 뒤에 갱단이 찾아와 돈을 주고 가대요. 알고 봤더니 삼합회 쪽이었는데 그 일로 그들과 친구가 됐어요. 1년에 한 번씩 여는 파티에도 초대받아요(웃음)."
94년 그가 버스 6대를 굴릴 때의 이야기다. 이 '삼합회 에피소드'는 극중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이민자인 해리(송일국)가 빚 때문에 중국 갱단 소굴로 찾아가는 것으로 각색된다.
"갱단한테 제 얘기를 할 때 첫 아이가 아파 고생했던 얘기도 했어요. 생후 두 달 된 아들이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돈도 없었고 의료보험도 되지 않아 병원에서 받아주지를 않는 거예요. 오직 애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보스턴에 있는 어린이 병원으로 애를 들쳐 업고 가서 버텼어요. 계속 기다렸어요. 그랬더니 수술을 해주더군요. 그 애가 지금은 17살의 건강한 소년으로 자랐어요. 이런 이야기에 갱단이 움직인 것 같아요(웃음)."
마리아의 언니 에바(유선)가 어린 시절 아팠지만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바로 이 에피소드에서 착안한 것. 여기에 버스를 몰던 마리아의 아빠가 할렘가에서 총에 맞아 죽는 이야기 역시 피터 김의 간접 경험을 토대로 구성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세세하게 주인공들의 역할 모델을 한 것 외에도 '로비스트'의 미국 촬영에 많은 도움을 줬다. 대표적으로 카지노 촬영 허가를 받아낸 것도 그였다.
초록뱀미디어는 "애틀랜틱시티 카지노 촬영이 갑자기 펑크가 났다. 촬영 허가를 다시 받으려면 4~5주가 걸리는 상황이었는데 피터 김 사장이 1시간 만에 해결해줬다. 카지노 촬영에 필요한 카지노 14개 파트의 직원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물론이고 애틀랜틱시티 갬블위원회 대표도 김 사장이 부르니까 바로 오더라. 덕분에 곧바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극중에서 전소되는 버스 역시 스카이 라이너 소유 버스. 45만 달러(한화 약 4억 원)짜리다.
"버스를 아예 불태워야겠다는 제작진의 말에 처음에는 정말 황당했어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이왕 도와주기로 했는 걸. 결국 제일 낡은 버스를 '상납'했습니다(웃음). 미국 드라마 '섹스 & 시티'나 '사인필드' 등의 촬영에도 우리 버스를 빌려주는데 그때는 정확하게 돈을 받죠. 그러나 한국 드라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냥 협조하는 거죠(웃음)."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뉴욕 관광객이 줄어든 와중에도 오히려 사업이 30~40% 커졌을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김 사장은 뉴욕 맨해튼 32번가 코리아타운 입구에 세종대왕 상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뉴욕 차이나타운 입구에는 공자 상이 세워져 있어요. 참 보기 좋더라구요. 저도 언젠가는 꼭 코리아타운 입구에 세종대왕 상을 세우려고 합니다. 거기가 굉장히 비싼 땅이라 돈을 많이 모아야 하는데 열심히 일해서 꼭 세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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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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