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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통일신라 ‘초대형 기와’ 무더기로 발굴

기와 한 장이 19kg ‘세계 최대’…남한산성서 건물터 발견



한 점당 무게가 19kg에 달해 기와를 사용한 한국 중국 일본에서 발견된 기와 중 가장 크고 무거운 초대형 기와를 비롯해 통일신라시대 기와가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고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이 16일 밝혔다.

토지박물관은 광주시 남한산성 안 행궁의 하궐 앞마당을 발굴한 결과 정면 14칸(53.5m), 측면 4칸(17.5m)의 통일신라시대 대형 건물 터를 확인했으며 이곳에서 길이 64cm, 두께 4∼5cm의 초대형 기와 6점을 포함해 대형 기와 수천 점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 건물 터는 통일신라시대 산성에서 발견된 터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손꼽힌다.

이번에 발견된 기와 중 350여 점은 건물 터의 서남쪽에 온전하게 쌓인 모습으로 발견됐다. 이곳은 기와를 교체하기 위한 임시 저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토지박물관은 기와 제작 기법으로 볼 때 건축물 건립 연대가 7세기 후반으로 보여 672년(문무왕 12년)에 쌓은 주장성()과 연관이 있는 유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통일신라 ‘초대형 기와’ 무더기로 발굴
남한산성 일대에 대형 건물터도
신형준 기자 hjshin@chosun.com

최대 무게가 약 20㎏에 이르는 통일신라시대 초대형 기와 350여장이 발굴됐다.

토지박물관(관장 조유전)은 16일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 발굴에서 통일신라시대 초대형 기와 저장소와 대형 건물터 등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발굴단은 “땅을 파서 만든 기와 저장소에는 기와들을 암키와와 수키와로 따로 분류해 차곡차곡 인위적으로 쌓은 상태였다”며 “암키와는 평균 15kg 내외, 수키와는 10kg 내외였다”고 밝혔다.

발굴단은 그러나 “기와 중 길이 64㎝ 내외, 두께 4~5㎝의 초대형 기와들도 10여점 있었다”며 “암키와 중 무거운 것은 19kg, 수키와 중 무거운 것은 14kg이었다”고 밝혔다. 발굴단은 “같은 시기, 국내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최대 규모의 기와로 추정된다”고 했다.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통일신라시대 초대형 기와 저장소가 발굴됐다. /토지박물관 제공

기와 저장공간 바로 옆으로 통일신라시대 대형 건물터가 있어서 이 건물의 기와를 교체하기 위해 준비해 두었다가 사용하지 않게 된 것으로 발굴단은 추정했다. 이 건물터는 정면 14칸 53.5m, 측면 4칸 17.5m 규모로 산성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 건물터로는 최대였다. 불에 타 붕괴됐으며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사용 시기는 7세기 후반~10세기 전반으로 보였다.

발굴단은 “유례를 찾기 힘든 대형 기와를 사용했다는 점이나 건물터 벽체의 규모, 그리고 연대측정 결과 등을 종합할 때 고구려를 멸망시킨 직후 신라가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던 신라 문무왕 12년(서기 672년)에 쌓은 주장성(晝長城)과 관련한 유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입력 : 2007.11.17 00:25
20㎏짜리 초대형 기와의 미스터리 [연합]
저울에 올려 놓으니 19㎏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1천년 이상을 땅 속에 묻혔다가 막 꺼냈을 때는 무게가 20㎏을 넘었다고 한다.

최대 수분 함량이 1㎏ 안팎이나 되는 통일신라시대 초대형 암키와가 무더기로 출토된 남한산성 발굴현장 사무실에 조사를 맡은 토지박물관 측은 저울 2개를 마련해 놓았다. 같은 지점에서 출토가 되었으나 제작 시기가 완전히 다른 기와 두 종류의 무게를 비교하기 위함이다.

비교대상은 통일신라시대 기와와 조선시대 행궁지 기와. 조선시대 기와라면 대체로 병자호란에 직면한 조선왕조가 임시수도로 지은 이른바 남한산성 행궁을 만들 때 사용한 것이다.

바짝 말린 평기와(암키와)를 나란히 놓았더니 결과는 18.94㎏ 대 3.98㎏.

통일신라시대 평기와는 20㎏짜리 외에도 15㎏짜리도 많았다. 작은 것이라 해도 그 무게는 종래 한국 고건축사의 통념을 훨씬 넘어선다. 평기와와 세트를 이루는 수키와 또한 중량이 만만치 않아 20㎏짜리와 짝을 이루었을 길이 65㎝짜리는 무게가 14㎏에 이르렀다.

기와 1장이 20㎏이건 15㎏이건 무슨 대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토록 중량이 많이 나가는 기와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보고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초대형 기와는 2년전 같은 남한산성 행궁지 발굴조사에서 몇 점이 확인됐는데,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함께 당시 발굴현장을 둘러본 소재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간단히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세계 챔피언이네요."

이런 기와를 실제 건물에 썼을까? 더욱 큰 미스터리는 발굴조사 결과 명백히 "그렇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에 자연스럽게 의문은 "저런 기와를 무더기로 지붕에 올려놓았을 때 건물이 그것을 버텨낼 재간이 있었겠는가"로 모아진다.

조유전 토지박물관장은 "사실 그 점이 나로서는 가장 궁금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기와가 사용된 건물지는 규모가 장대하다. 길이 53m에 폭 17.5m에 이르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건물지 중에서 길이 기준으로 이보다 더 긴 사례가 경주에서 두어 군데 보고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폭은 훨씬 좁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규모로 보아 이번 남한산성 건물지가 현재까지는 최대임은 분명하다.

한데 막상 발굴조사 결과 기단을 드러낸 건물지는 거대한 크기나 초대형 기와지붕이라는 구조물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토대는 허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현장조사원 이형호 씨가 전했다.

뿐만 아니라 저런 기와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구웠는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런 의문 표시에 이씨는 "안 그래도 다음주(20일) 지도위원회에서 선생님들이 가마터 찾아내라고 주문하실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면서 "나름대로 주변 일대를 뒤져봤으나 이렇다 할 만한 가마터는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