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 - 마라톤
미래촌 동장 김만수
40여년전(1960년대)만 해도 걷는 것은 운동이 아니었다. 탈것이 만만치 않았던 시절이어서 2-30리 길은 걸어 다니는 것은 일상생활이었다. 육상(달리기)은 지금도 별로 인기가 없지만 당시에는 비쩍 마른 친구들의 은신처였다. 합기도 당수 같은 호신술을 익혀 싸움 걸어오는 놈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친구가 인기가 높았다. 달리기는 나약한 친구들의 36계 줄행랑으로 여겨져서 아주 싫어했다.
나의 중학 시절에는 집에서 20리가 훨씬 넘는 학교까지(서울이었는데도) 도시락과 책이 잔뜩 든 가방을 들고 뛰어 다녔다. 골목길 곳곳에는 조무래기 깡패들이 지키고 있었다. 언제나 돈 한푼 없이 다니는 나에게 ‘짜식 돈도 없어’하며 따귀를 맞고 얻어터지기도 했다. 당하기가 싫어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로 빙- 둘러 다니느라고 늘 뛰어다녔다. 참으로 나약하고 비열했던 청소년 시절이었다. 사람과 몸을 부대끼며 옆 친구와 경쟁하는 것이 싫어서 피해 다녔다. 배구도 곧잘 했었는데도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아예 마라톤부에 들어갔다. 고2때 발을 부르트며 허벅지에 피를 철철 흘리며(나일론 유니폼 팬티에 쓸려서) 동아마라톤 대회에 나가 달린 적이 있었다. 중앙청에서 오류동 건빵공장까지 왕복 코스였다. 기권자 실어 나를 차가 없던 시절이니 포기 할 수도 없었다. 6시간을 넘어 중앙청 마당에 들어서니 대회 본부석은 다 철수하고 없었다. 담당 선생님께서(지금은 돌아가셨다) 혼자 기다리고 계셨다. 기억을 되새기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사진 한 장 없이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추억일 뿐이다.
사회에 나와서도 여전히 몸과 머리를 맞대고 씨름하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테니스도 골프도 안한다. 심지어는 바둑이며 고스톱도 영 서툴기만 하다. 40대 중반에 들어서서도 법 없이 살 사람이라며 추켜세우기도 했지만 규칙을 싫어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규칙도 느슨하고 별로 경쟁도 없는 ‘달리기’가 내 건강을 챙기기에는 제격이었다. 새벽 동네 골목길 달리기가 몸에 익어갈 무렵 세상 사람들이 달리기가 건강에 좋다고들 해댔다. 1990년대 초에 서울시청직원마라톤 동호회를 창설하는데 한 몫을 했다. 서초구청으로 자리를 옮겨와 구청직원마라톤동호회를 또 창설했다. 1998년에는 양재천마라톤클럽을 만들었다. 양재2동장 재직시 였는데 상사로부터 공개적인 꾸중도 많이 들었다. “하라는 일은 안하고 들고 뛰기만 하면 되겠느냐”고. 그때 좀 시건방진 소리로 변명을 해댔다. 말 없는 다수 중산층 주민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일도 동장의 할 일이라고. 지금은 마라톤 인구가 부쩍 늘어나고 있어 제법 자랑을 하고 다닌다.
나이가 들어 뛰는 것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며 말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달릴 수 있는 것이 마라톤이라고 강조한다. 마라톤은 운동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몸으로 부딪히고 머리로 겨루는 치열한 경쟁이 현대인들을 더 힘겹게 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고 있다. 마라톤은 경쟁이 아니라 수도하는 끈질김이 아닐까.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하면서도 그 나이에 마라톤을 하다니 참 대단하다고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위안이 된다. (200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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