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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혜 다섯번째 개인전 - 물속 돌을 그리다



물 속 돌을 그리다 Drawing rocks submerged in water

한경혜展 / HANKYOUNGHYE / 韓鏡惠 / painting

2010_1103 ▶ 2010_1109

한경혜_날개옷을 입다_한지에 수묵담채_60.5×72.5cm_2010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_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한경혜는 계곡물이 고요히 잠긴 곳에 가득한 돌을 그렸다. 수묵에 은은한 담채가 얹혀져 그린 자취는 조심스

럽고 소박하다. 인적은 지워지고 오로지 돌과 물만이 가득하다. 수면으로 육박해 들어간 좁혀진 시선에 의해

물과 물에 잠긴 돌들만이 화면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보는 이들을 그 물 속으로, 돌로 유인하는 화각

이다. 흡사 우물 안을 내려다보는 듯, 혹은 사찰 마당에 자리한 수각 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체험을 준

다. 그림을 보고 있다기 보다는 실제 계곡물이나 그 안에 잠긴 돌맹이들을 접하고 있는 느낌이다. 물이나 돌

을 그린다기 보다는 그 물과 돌이란 존재로 보는 이들을 추인해내는 장치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산수

화의 한 부분을 확대해 그린 이 그림은 맑고 투명한 물, 그 물에 잠긴 다양한 돌들의 자취를 적조하게 보여준

다. 그것은 돌의 극진한 묘사나 재현, 혹은 산수풍경적 시선에서 조금은 빠져 나와 보인다. 그런 풍경적 요인

에 의해 유인되기 보다는 물과 돌이란 존재 자체를 사유하게 하기 위한 배려에서 이런 장면, 구도가 우선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구체적이고 특정한 풍경의 한 자락이 그려진 것이라기 보다는 실경을 근간으로 하되 작가

의 상상력과 의도에 의해 조금은 가공된, 관념취가 풍기는 그림이다. 결국 작가는 우리에게 돌과 물만을 독대

하게 하고 그 존재를 새삼 사유하게 한다.

한경혜_보금자리_한지에 수묵담채_60.5×72.5cm_2010

물은 동양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 존재다. 군자의 덕목의 하나인 지혜를 상징함과 동시에 모든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 변화무쌍한 우주자연의 이치와 순환의 논리를 여실히 보여주는가 하면 정화와 환생, 윤

회, 완벽한 수평의 고요와 평정, 헤아릴 수 없는 깊음과 차가운 성찰 또한 상징한다. 물은 동양인들의 사유와

삶의 핵심에 자리한다. 그 한 켠에 돌이 침묵으로 놓여있다. 돌은 산이 쪼개져 태어난 존재라 하나의 돌은 산,

자연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결정적 얼굴이다. 아득한 시간, 세월이 최후로 남긴 얼굴인 것이다. 부동과 정적

속에 단호한 물성으로 굳은 그 돌은 영원성을 또한 보여준다. 그 돌 안에 놓인 아득한 시간을 헤아리면서 저

돌의 얼굴을 본받아 자신의 최후의 상 하나를 간직하고자 했던 이들이 바로 옛선비들이다. 그들의 수석취미

란 결국 그런 의지의 표상이다.

한경혜_청순함을 말하다_한지에 수묵담채_45.5×53cm_2010

한경혜_마음을 읽다_한지에 수묵담채_45.5×53cm_2010

그런데 그 돌은 물을 만났을 때 가장 아름답고 돌답다. 물에 잠긴 돌은 반짝이며 윤기를 내고 부드럽고 강한

얼굴을 드러낸다. 물속에 잠긴 다양한 돌의 모양과 색채를 음미하면 흡사 그 돌들이 제각각 인간의 얼굴을 닮

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일까, 한경혜는 그 하나하나의 돌을 그리면서 누군가의 얼굴들을 떠올렸다고 한

다. 개별적인 인간의 모습을 돌에서 본 것이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른 것처럼 돌도 제각기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계곡물에 잠겨 오순도순, 저희끼리 모여 살고 있는 돌의 풍경이 마치 인간세와도 같았던 모양이다.

그 돌들은 그토록 정적이고 부동이다. 작가는 물과 돌을 조용히 관조했다. 흐르는 시간과 순간 멈춰선 영원이

그곳에 얼핏 보였다. 깊은 산 계곡에서 혹은 사찰 경내에 있는 수각에서 물을 보았다. 수각에 담긴 물에서 계

곡 물을 떠올렸고 계곡물에서 수각이나 일상에 놓인 물의 모습을 보았다. 물을 보노라면 모든 게 가라앉으면

서 마냥 차분해진다. 그것은 여유를 주고 평화를 주고 정화와 치유의 기능을 한다. 그렇게 보고 있노라면 그

물은 가슴에 오래 남아 찰랑이고 고여있다.

한경혜_꿈꾸는 동화Ⅰ_한지에 수묵담채_60.5×72.5cm_2010

한경혜_물속에서 물을 보다(달을 담고 있다)_한지에 수묵담채_97×130cm_2010

작가는 계곡물에 잠긴 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투명한 물에 비친 돌의 형태와 색채가 더없이 아름답게 반짝

인다. 작가는 그 돌과 물을 그렸다. 아니 물에 잠긴 돌을 그렸다. 물, 수면을 경계로 풍경은 구분되는데 사실

그림은 물 안의 풍경을 집중시킨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물과 돌을 동시에 본다. 물과 돌은 분리되는 존재가

아니라 상보적이고 공생적 관계로 다가온다. 돌은 물을 만나야 빛나고 물은 돌이 없으면 허전하다. 물은 돌을

녹이고 돌의 표면에 형상과 색채를 새기며 돌은 물을 가두어 형태를 부여한다. 그 둘은 서로의 존재를 하나의

이미지로 환하게 밝혀준다. 새삼 한경혜의 이 그림은 현대판 수석(水石)그림으로 다가온다. 그림은 더없이

차분함과 여유를 지니게 하는 그림이다. 전체적으로 통일된 색조로 물든 화면은 문득 보는 이들의 내면을 비

추는 거울이 되어 다가온다. 더러 고인 물 위쪽으로 색동의 채색으로 민화에 등장하는 해와 달의 형상이 떠있

기도 한다. 물 자체 역시 십장생 중에 하나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연출보다는 물, 돌 자체를 보여준 그림

이 담백하고 좋다. 작가는 말하기를 맑은 계곡의 물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한다. 순박한 아이의 마음 같아서

좋고 무섭게 흐르는 시간을 잠시 멈춰 세운 체 '순간'을 잠시 되돌아보게 하는 여유가 있어서 좋다고 한다.

새삼 물과 그 물에 잠긴 돌이 우리들 삶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던져주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

서 작가는 그림 그리는 행위를 통해, 그리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정화와 치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몸과 정신을 저 돌처럼 물 안에 고요히 안치시키고 싶은 것이다. ■ 박영택

한경혜의 작가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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