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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촌 美來村

미래촌생활강좌 제198강 080221(목) : 사회기업/유병선(경향신문논설위원)

'사회적 기업'공존의 혁명 일구다


■ 보노보 혁명 / 유병선 지음 부키 펴냄


“약자 배려하며 성공 경영 가능”
빈민 대출·저가 의료품 판매등
공익 사업 펼치는 기업들 소개


홍성욱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생명공학부 교수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 제3세계에 도서관을 설립하는 '룸투리드(Roon To Read)'의 설립자 존 우드.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희망학원 BELL의 설립자 얼 마틴 팰런과 아이들.

찰스 다윈은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확산되던 19세기 중엽에 진화론을 완성했다. 그가 살았던 세상은 경쟁과 약육강식이 판치는 세상이었다.

그는 종(種)이 생존경쟁을 통해 진화한다고 보았고, 다윈의 진화론은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과 같은 사회다윈주의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상에 널리 유포되었다. 경쟁을 부르짖는 기업가들은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생물학자들은 자연에는 경쟁만이 아니라 협동과 공생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1960년대를 통해서 문화혁명, 소수인종, 여성, 동성애자와 같은 소수자의 권리 찾기를 경험했던 과학자들은 종이 경쟁만이 아니라 협동과 공생을 통해서 진화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침팬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이 침팬지만을 닮은 것이 아니라, 온순하고 협동적이며 타자를 배려하는 보노보의 특성 역시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침팬치의 아종(亞種)으로 발육이 불완전해 피그미 침팬치라고 불리는 보노보는 책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우리의 모습을 상징한다.

저자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사회적 기업'의 활동과 주인공을 소개한다. 이것이 '혁명'인 이유는 기업의 혁신성과 창의성이 공공의 이익과 공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나 시민단체가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주주의 이윤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 특히 사회적 약자의 공익을 위해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평등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의 공상이 아니라, 지금 세계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책에서 우리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기업가들을 만날 수 있다. 빈민들을 위한 도서관 건설 사업을 하는 존 우드의 이야기부터, 빈민에게 대출 사업을 해서 큰 성공을 거둔 그라민 은행, 아프리카의 농민에게 값싼 펌프를 만들어 판매하는 킥스타트 회사, 저가 의료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오로랩, 소득에 비례해서 의료비를 내는 아라빈드병원, 고령자들의 창업과 혁신을 지원하는 시빅 벤처스, 헝가리의 장애인 공동체 초모르, 우수한 사회적 기업가를 선정해서 지원하는 아쇼카 재단 등 사회적 기업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기업의 활동이 정부로 대표되는 제 1섹터, 기업과 시장으로 대표되는 제 2섹터, 그리고 시민단체로 대표되는 제 3섹터 등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제 4섹터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사회의 양극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잘 사는 나라에서도 부자와 빈자의 간격이 커지고 있고, 전지구적으로도 제 1세계와 제 3세계의 간격이 벌어진다.

좋은 일자리는 사라지고, 낮은 임금에 고용이 불안정한 서비스직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의 효과는 사회의 약자를 위한 기업만이 아니라 사회의 약자가 주체가 된 기업이 될 때 배가된다.

사회적 기업은 '돈'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일을 추구하며, 이는 사회의 양극화를 견제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이중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21세기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로서 저자가 제시하는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경향의 눈]방치의 참상을 보존하라  
입력: 2008년 02월 11일 18:15:48
짝사랑으로 달뜬 친구에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말해주면 솔깃해 한다. 사랑에 눈 멀어 ‘하면 된다’는 말밖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일이 잘 풀리면 ‘내 덕’을 내세우겠지만, 백 번쯤 찍다 지쳐 억장이 무너졌더라도 해 줄 말은 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옛말이 그것이다. 은근히 ‘네 탓’을 내비치며 왜 실패했는지를 따지느니 ‘신포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출발 하라고 말을 바꾸는 것이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게 말이다. 사람의 일에는 하기 전엔 그러해야 할 구실이 있고, 벌어지고 난 뒤엔 온갖 미련과 미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위안이 뒤따른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고 부추기다가도 돌아서선 ‘넘치는 건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고 하는 게 사람이고 사람의 말이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도, ‘지옥으로 이르는 길은 온갖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는 경구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래서이다.

국민 가슴 태운 국보1호 화재
숭례문의 화재가 모두의 가슴을 새카맣게 태워버렸다. 국보 1호의 잿더미 위로 억장이 무너진 사람들의 말이 쏟아지고 있다.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누구든 잡아 볼기짝을 내리치고 싶은 분노와 왜 우리는 이 지경까지 왔는가라는 미련이 뒤엉키고 있다. ‘~라면’이란 말이 끓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가 2006년 3월 숭례문을 시민에 개방하지 않았더라면, 개방을 하더라도 문화재 보호를 위한 대책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여론을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무시하지만 않았더라면, 그 흔한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라도 설치했더라면, 일자리 늘린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마당에 야간 경비원 한 명이라도 두었더라면, 화재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초기 화재 진압이라도 제대로 했더라면, 화마에 낙산사를 잃었을 때 문화재 관리의 ‘외양간’을 고쳤더라면….

오죽하면 ‘~라면’을 끓이고 있겠는가. 다 부질없는 일이다. 600년 풍상을 견딘 누각은 이미 무너졌다. 목재 유물의 최대 적이 화마라는 사실은 문화재청도 알고, 남대문 개방을 청계천과 함께 역점사업으로 추진했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도 몰랐을 리 만무하다. 문화재란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뜻하며, 국보란 국가가 보존을 책임지는 문화재라는 것 또한 초등학생도 안다. 문화재가 근대 국민국가의 출현과 함께 ‘만들어진 개념’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국가와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상징으로 기능함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런데 지키지 못했다.

숭례문 개방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국보 1호를 시민의 품으로 되돌린다는 취지는 외려 칭찬할 만하다. 문제는 관리다. 만전을 기해도 모자랄 판에 활짝 열어만 놓고 보호와 관리에서 손을 놨다면, 이번 참변의 불쏘시개는 ‘개방의 선의’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일만 벌여놓고 방치한 것이다. 숭례문 화재는 ‘방치된 개방의 참담한 귀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말이 차고 넘치는 것은 실수가 반복된다는 뜻이다. 개방을 하면 문을 잠갔을 때보다 더 엄중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표로 먹고 사는 정치인들이 특히 그렇다. 개방은 보이지만 관리는 보이지 않는다. 개방은 생색이 나지만, 관리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여긴다. 시장개방의 불가피성을 목청 높이던 이들이 숭례문 주변에 늘어나는 노숙자에 대해선 고개를 돌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자고 입에 거품을 무는 이들도 사후에 ‘~라면’은 끓일 수 있을지 몰라도, 관리에 관한 한 물만 뿌려댔을 뿐 불길을 잡지 못한 소방당국과 다를 것 같지 않다. 따뜻한 정책을 표방한 차기 정부는 시장이 알아서 서민을 섬길 것이라고만 말한다.

‘관리 부재’의 비극 남겨둬야
벌써부터 숭례문 복원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옛 모습을 되살린다고 복원이 아니다. 숭례문을 태운 것은 전쟁도 천재지변도 아니다. 잿더미 자체가 우리 시대의 역사가 됐다. 보기 흉하더라도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래서 두고두고 관리 부재와 방치의 비극을 눈으로 보여주고, 말이 필요없게 해야 한다.

〈 유병선 / 논설위원 〉

사회적 기업의 아름다운 반란

1998년 샌프란시스코의 간호학교 교사인 켈리 심슨은 남편과 함께 저축한 돈을 '캘버트 지역사회투자(CCI) 증권'에 투자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소액 투자금은 어느덧 3만달러로 늘었고 해마다 900달러의 투자 소득을 올리면서도 600달러를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 있게 됐다.

투자와 자선이 별개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보노보 혁명'(유병선 지음,부키)은 날로 역할이 커지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기업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보노보는 같은 유인원이면서도 폭력적.이기적.탐욕적인 침팬지와 달리 평등과 평화를 추구하며 낙천적 천성을 지닌 동물.저자는 사람에게는 침팬지 같은 본성뿐만 아니라 보노보의 특성이 함께 있다는 전제 아래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혁신하기 위해 돈을 벌고 쓰는 '사회적 기업'과 사람들의 아름다운 혁명에 대해 소개한다.

'필요에 따라 치료받고 능력에 따라 낸다'는 혁신적 가격 시스템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는 '프로젝트 임팩트'의 데이비드 그린,아프리카의 가난한 농부들에게 펌프를 싸게 공급해 소득 증대를 돕는 '킥 스타트'의 마틴 피셔….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인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고령자를 사회적 기업활동으로 이끄는 '시빅 벤처스',빈곤.환경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 펀드를 운용하는 캘버트 재단 등 다양한 사례들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저자는 "침팬지의 세상인 듯 보였던 지구촌 구석 구석에 조용히 사랑을 나누는 수많은 보노보들이 존재한다"며 정부와 민간 기업,시민 사회가 실패한 사회적 빈틈을 메우는 '제4섹터'로서 사회적 기업들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252쪽,1만2000원.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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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사회적 기업가의 아름다운 반란!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생리상 어쩔 수 없는 것인가? 80대 20의 법칙은 무한경쟁 체제에서 불가피한 것인가? 이 책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와 가까운 유인원 침팬지의 본성이 폭력과 탐욕인 만큼 이런 현상들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는 사랑과 배려를 나누는 보노보들이 많다.

『보노보 혁명』은 지구촌 곳곳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와 사회적 기업, 제4섹터를 소개한다. 본문은 존 우드, 데이비드 그린, 빌 드레이튼 등 사회적 기업가와 그라민 은행, 캘버트 재단, 스프링보드 포워드, 알트루세어 증권 등 사회혁신에 힘쓰는 보노보 기업을 하나씩 설명한다.

이를 통해 이윤 극대화를 최선으로 생각하는 기업 및 기업가들이 무한 경쟁으로 생겨난 사회적 빈틈을 메우며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활의 손길을 내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회적 기업가는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 사회적 기업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오해는 무엇인지,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대학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도 이야기한다.
유병선(劉炳銑)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정선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춘천고등학교를 거쳐 1985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일요신문》 《평화신문》 《경향신문》의 편집부, 국제부, 경제부 기자 및 국제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경향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밀레니엄 키워드.com』(2000, 웅진)이 있다.
1장 아름다운 반란, 사회적 기업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 ‘도서관 제국’으로 ―― 존 우드(John Wood) 17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희망 학원’ ―― 얼 마틴 팰런(Earl Martin Phalen) 29
기타로 사회적 혁신을 연주하다 ―― 데이비드 위시(David Wish) 41
필요에 따라 치료 받고, 능력에 따라 낸다 ―― 데이비드 그린(David Green) 55
초모르에서는 장애인도 디스코를 춘다 ―― 에르지벳 세케레시(Erzèbet Szekeres) 67
가난을 벗어나게 해 주는 값싼 기술 ―― 마틴 피셔(Martin Fisher) 77
전 세계 프리랜서여, 단결하라! ―― 사라 호로위츠(Sara Horowitz) 87
사람을 키워 혁신을 복제한다 ―― 빌 드레이튼(Bill Drayton) 99

2장 세상을 바꾸는 ‘보노보 기업’
가난한 사람들의 손으로 빈곤을 물리친다 ―― 그라민 은행(Grameen Bank) 113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투자형 자선 ―― 캘버트 재단(Calvert Foundation) 127
노동하는 빈곤층, 일자리의 질을 높인다 ―― 스프링보드 포워드(Springboard Forward) 135
사회 공헌으로 빛나는 인생 이모작 ―― 시빅 벤처스(Civic Ventures) 143
돈도 벌고, 세상도 구하는 착한 기업 ―― B랩(B Lab) 155
공익 재단, 증권 시장에 뛰어들다 ―― 알트루세어 증권(Altrushare Securities) 165
사회적 빈틈을 메우는 정보기술 ―― 모바일 메트릭스, 위트니스, 키바, 마이크로플레이스 171

3장 세상의 난제에 도전하는 사회적 벤처
사회적 기업가는 누구인가 185
사회적 기업가의 조건 199
인적 네트워크의 힘 207
사회적 기업에 대한 다섯 가지 오해 213

4장 사회적 기업의 신 생태계, 제4섹터
사회적 벤처 캐피털의 등장 221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대학들 233
떠오르는 제4섹터론 241
1998년 세계 최대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시아 지역 마케팅 총책임자로서 중국 베이징에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이메일, 새로운 업무와 씨름하던 우드는 조용한 곳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며 지친 심신을 달래기 결정했다. 그는 곧 배낭을 꾸려 히말라야의 오지 네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네팔 여행 중 우드는 중년의 네팔인을 만났다. 그는 자신을 네팔 교육부의 관리라 소개하며 이웃 마을에 있는 학교를 찾아가는 길인데 동행하면 어떨지 우드에게 물었다. 어쩌면 관광으로 포장된 네팔이 아니라 화장하지 않은 진짜 네팔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발동한 우드는 애초 계획했던 행로를 벗어나 그를 따랐다.
그 관리가 우드에게 함께 가자고 한 이웃 마을은 말이 이웃이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한참을 가야 했다. 그는 열정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는 교육부 관리였지만, 그가 그 학교에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렵게 찾아간 그 마을과 학교는 네팔이 직면한 곤경을 맨얼굴로 보여 줬다. 20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교실에 80명이 넘는 아이들이 끼어 앉아 있는 것은 차치하고, 수업을 받는 아이들 앞에 책이 한 권도 없었다. 더욱 놀란 것은 아마도 자신과 같은 여행자들이 배낭 속에 있던 것을 남겨 놓고 갔지 싶은 문고판 소설과 배낭여행 안내서인 ‘론리 플래닛’ 따위의 여행서 몇 권이 보물처럼 소중하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책장 속에 모셔져 있는 것이었다. 혹여 아이들이 그 귀한 책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염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그만큼 책이 귀했다.
우드가 마을을 떠나던 날, 교장은 “우드 선생, 혹여 다음에 다시 들를 일이 있으시면 책 좀 가져다주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것은 물음이라기보다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우드는 그의 부탁은 흘려듣지 않았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우드는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돌렸다. 네팔에서의 일을 전하며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니 보내 달라고. 반응은 놀라웠다. 2달 새 3000여 권의 책이 도착했다. 이듬해 우드는 그 책을 가지고 네팔로 달려갔다. 야크의 등에 책을 싣고 산 넘고 강 건너 그 학교로 갔다. 이 두 번째 네팔 여정에서 우드는 마음을 굳혔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 새로운 비영리 도서관 사업을 시작하기로. 우드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수백만의 아이들이 읽을 책이 없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번 달에 대만에서 윈도즈를 얼마나 팔았는가를 헤아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1999년 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사표를 제출하고, 룸투리드를 설립한다. 우드의 결단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우선 동료들은 그의 생뚱맞은 행동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여자 친구는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곁을 떠났다. 세계 제1 기업에서 엄청난 연봉과 두둑한 스톡옵션을 받으며 평생을 호사스럽게 지낼 수 있는 예약된 탄탄대로의 삶을 포기하고, 저 작은 나라 네팔의 어린이들에게 헌책이나 갖다 주는 일을 하겠다니 그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만도 했다.
가만히 보노보의 등 뒤에 서면 우선 사람이 달리 보인다. 사람의 본성이 침팬지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에서 비롯했다는 ‘상식’이 뒤집힌다. 사람과 침팬지를 비교한 많은 연구들은 탐욕이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본성이며, 이기심이 인간의 원동력이라고 ‘선동’해 왔다. 이는 사람의 또 다른 친척인 보노보를 전혀 모르고 한 소리다. 보노보와 침팬지의 본성은 낮과 밤만큼이나 다르다.
침팬지는 우락부락하고 야심만만하며 폭력적인 반면, 보노보는 평등을 좋아하고 섹스를 즐기며 평화를 추구하는 낙천적인 천성을 지녔다. 침팬지가 ‘도살자 유인원’으로, 다시 말해 인간의 공격적 본성의 뿌리로 지목되었다면, 보노보는 인간의 또 다른 특성인 공감(共感) 능력을 대표한다. 침팬지가 우리에게 씌워진 악마의 얼굴이라면 보노보는 천사의 얼굴이다.
사람의 유전자에는 침팬지와 보노보의 서로 다른 본성이 나란히 새겨져 있으며, 이들 양극단의 속성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긴밀하게 협력하기도 하면서 최적의 균형을 찾아간다. 폭력과 탐욕이 인간의 본성이고, 평화와 공감은 단지 포장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은 ‘철학이란 이름의 신화’이자 ‘과학이란 이름의 선동’일 뿐이다.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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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노보의 등 뒤에 서면 우선 사람이 달리 보인다. 사람의 본성이 침팬지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에서 비롯했다는 ‘상식’이 뒤집힌다. 사람과 침팬지를 비교한 많은 연구들은 탐욕이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본성이며, 이기심이 인간의 원동력이라고 ‘선동’해 왔다. 이는 사람의 또 다른 친척인 보노보를 전혀 모르고 한 소리다. 보노보와 침팬지의 본성은 낮과 밤만큼이나 다르다.
침팬지는 우락부락하고 야심만만하며 폭력적인 반면, 보노보는 평등을 좋아하고 섹스를 즐기며 평화를 추구하는 낙천적인 천성을 지녔다. 침팬지가 ‘도살자 유인원’으로, 다시 말해 인간의 공격적 본성의 뿌리로 지목되었다면, 보노보는 인간의 또 다른 특성인 공감(共感) 능력을 대표한다. 침팬지가 우리에게 씌워진 악마의 얼굴이라면 보노보는 천사의 얼굴이다.
사람의 유전자에는 침팬지와 보노보의 서로 다른 본성이 나란히 새겨져 있으며, 이들 양극단의 속성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긴밀하게 협력하기도 하면서 최적의 균형을 찾아간다. 폭력과 탐욕이 인간의 본성이고, 평화와 공감은 단지 포장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은 ‘철학이란 이름의 신화’이자 ‘과학이란 이름의 선동’일 뿐이다. 따라서 보노보의 존재는 신화 파괴이자 신선한 전복(顚覆)이라 할 만하다.
침팬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엔 온통 침팬지들만 우글거리는 듯하다. 지난 30년, 세계화의 대로를 따라 흐른 것은 탐욕과 이기심이었다. 침팬지들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렸다. 돈 놓고 돈 먹기의 도박판과도 같은 ‘승자 독식의 경제’, 80퍼센트를 가난하게 만들고 20퍼센트만 살찌우는 ‘80 대 20의 사회’, 부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는 ‘금권의 정치’는 침팬지의 본성으로 모두 용서되는 듯했다. 세계는 넓고 개인의 탐욕은 끝이 없다고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침팬지 경제학’을 신주단지처럼 받들고, ‘침팬지 기업’과 ‘침팬지 정치’, ‘침팬지 언론’이 공을 들인 ‘침팬지 세계화’는 난공불락인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또 다른 유인원 보노보는 어디에 있는가. 침팬지에게 모두 도살됐을까? 아니면 우리의 유전자에서 삭제됐을까? 이 책 『보노보 혁명』은 그 물음을 좇은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침팬지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지 않는 한 보노보는 있다. 그것도 아주 많다. 보노보의 렌즈는 거꾸로 된 세상의 상을 바로잡아 준다. 침팬지의 세상인 듯 보였던 지구촌 구석구석에는 조용히 사랑을 나누는 수많은 보노보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개인과 이기심만 있을 뿐’이라며 침팬지들이 내팽개치고 뭉개 버린 공감적 사회성을 착한 힘으로 되살리고 있다. 이 새로운 보노보들은 침팬지 경제학의 돈독을 씻어 내고, 무한 경쟁으로 생겨난 사회적 빈틈을 메우며, 벼랑 끝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활의 손길을 내민다. 또한 시장에 뛰어들어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고, 사회적 유익을 극대화한다. 요컨대 제 지갑에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혁신하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쓰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를 혁신하기 위해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 ‘보노보 경제학’이며, 이를 통해 ‘침팬지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보노보들은 이미 대오를 갖춰 행진을 시작했고, 새 길을 열고 있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사회적 기업가와 사회적 기업, 그리고 제4섹터가 바로 그것이다.

책 소개 (인간에 가장 가까운 유인원)

다윈의 갈라파고스 발견 이후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 인류의 기원을 다시 기록할 것을 요구하다


이 책은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보노보’라는 4번째 영장류에 대한 세계 최초의 종합적이며 대중적인 보고서이다. 다윈의 갈라파고스 발견 이후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으로도 비견되는 이 ‘잊혀진 유인원’은 최근 ‘살아 있는 “잃어버린 고리”’, ‘인간 이외에 직립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최초의 영장류의 발견’, ‘모권제 사회의 살아 있는 실험실’이라는 경이적인 평가와 함께 국제 영장류학계와 인류학계, 여성학계, 사회학계의 열화와 같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보기만 해도 즐겁고 읽기만 해도 가슴이 뿌듯한 책이다. 물론 이들에 대해서는 ‘매춘하는 동물’이니, ‘성 테크닉의 도사’니 하는 식으로 아주 단편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왜곡된 평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20세기에 마지막으로 발견된 이 동물의 연구자들의 연구 업적을 생생한 사진들과 함께 기록한 이 책이 이제 비로소 나오면서 서구학계는 ‘보노보 열광’에 휩싸여 있다. 이 보노보는 아마존 밀림에 못지 않게 광활한 적도의 한가운데 살기 때문에 심지어 지금도 접근하는 데 몇 주가 걸리는 오지 중의 오지에서 약 1만 마리밖에 살지 않는 데다, 포획된 개체 수도 채 몇 백 마리밖에 되지 않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이들이 사는 콩고 지역이 30여 년 동안 약 300만~5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콩고 내전’이 벌어진 지역이어서 연구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얼핏 보기에는 모양도 침팬지와 비슷해 ‘꼬마 침팬지’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다윈이 갈라파고스라는 지구의 한 섬에서 거북이 등을 보고 진화론을 구상했듯이 이제 많은 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육지에 있는 또다른 섬에서 사는 이들 보노보를 통해 진화론과는 전혀 다른 인간 이해의 방식을 혁명적으로제시한다. ‘사랑,평등,평화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보노보는 ‘약육강식’, ‘적자생존’, ‘도구를 만드는 동물’, ‘수컷 지배’, ‘집단 간 전쟁’ 등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동물의 본능’처럼 설명해온 거의 모든 가설을 재검토하거나 부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동물이 인간 중심, 남성 중심, 힘 중심의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노보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침팬지와 함께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데도 말이다. 아니 그것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표지 사진을 비롯해 이 책 곳곳에 실려 있는 이 보노보의 얼굴을 잠깐만 들여다보아도 이들이 단지 ‘동물’이 아니라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예컨대 원숭이의 눈이 노란데 반해 검고 깊은 이들의 눈을 바라보면 이들이 ‘원숭이’보다는 생각하고, 말하는 인간 쪽에 얼마나 더 가까운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보노보는 신체 구조도 원숭이와 달리 직립에 가깝기 때문에 동물의 세계 중에서 인간과 함께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정상위로 섹스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다. 유명한 밀림 전문 사진 작가인 프란스 랜팅도 “어두움 속에서 사람 같은 것이 걸어나와 기겁을 했다”고 했을 정도로 이들의 자세는 직립에 가깝다. 그리고 이들의 서식지 인근 주민들도 다른 동물은 다 잡아먹어도 보노보만큼은 ‘우리의 조상’이라고 손을 대지 않는 터부를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제인 구달은 왐바에서 침팬지들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이후 동물도 인간과 같은 지능을 소유하고 있음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되어 왔다. 그리고 상자 몇 개를 가져다 놓고 지붕에 바나바가 달려 있는 방에 원숭이를 들여보내는 실험은 원숭이의 지능을 실험하는 상투적인 방법이 되어 왔다. 하지만 보노보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더 놀랍게도 보노보는 상징 언어로 인간과 거의 막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칸지’라는 보노보가 이 분야의 국제적 스타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상징 언어를 이해하는 ‘총명함’으로 유명한 보노보는 동시에 풍부함 감수성으로도 유명하다. 198-200쪽에 걸쳐 ‘다른 존재에 대한 섬세한 배려’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 글은 이들 보노보가 우리 인간 못지않게 아니 우리 인간보다 더 ‘함께 행복하게 살기’에 정통해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준다. 이처럼 상징 언어로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이들의 능력은 인간만이 상징적 동물이라는 기존의 학설을 의문시하도록 만든다. 인간이 동물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한 것을 도구 제작에서 찾는 기존의 인류학설은 동시에 도구의 제작과 함께 집단 사냥, 남성 지배, 계급 사회와 같은 진화론 모델로 이어진다 하지만 ‘상징 언어의 사용’과 ‘친밀성’이 기본적인 소통 수단인 보노보의 세계는 이러한 진화 경로를 근본적으로 의문시하도록 만든다.

사랑의 연금술사 : 전쟁이 아니라 사랑을


지금까지 보노보는 성과 관련해 단편적으로 왜곡되어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을 가만히 읽어보면 보노보에 대한 그러한 잘못된 생각은 오히려 성에 대한 인간의 오만과 편견,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과 함께 정상위로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보노보는 동시에 온갖 체위로, 온갖 상대와 무시로 성적인 접촉을 하는 동물로 유명하다. 그래서 보노보에게는 ‘호색한’, ‘매춘’ 등의 오명이 따라 다닌다. 하지만 이 세계 최초의 보고서는 전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오히려 성에 대한 기존의 모든 인간학적 사유를 원점으로 되돌려버린다. 예를 들어 인간 사회에서 성은 지배를 위한 도구이지만 보노보들 사이에서는 성은 화해와 협력을 위한 도구이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는 권력에 따라 성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지만 보노보 사회에서는 성이 권력 관계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게다가 성이 강제나 욕망의 배설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이 흥미를 잃거나 즐거워하지 않으면 중간에 행위를 그만 둔다는 이들의 보고서를 읽다보면 보노보야말로 차라리 인간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성이 사회의 아교와 같은 역할을 하는 보노보의 성생활을 보면 오직 인간만이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성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가설 또한 무색해진다. 성이 욕망의 해소와 지배의 도구로 되어 있는 원숭이나 인간 세계와 달리 이들 보노보들에게서는 성이 평화와 우정의 매개체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성에 대한 기존의 모든 상식(?)과 편견은 근본적인 재검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평화와 평등의 연금술사


게다가 서열은 존재하지만 평등과 평화가 사회의 기본 원리로 유지되는 이 보노보 사회는 평등과 평화에 대한 기존의 모든 인간학적 사유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원숭이들의 경우 대장 원숭이가 바뀌면 이전의 대장 원숭이의 모든 새끼들을 죽여버리지만(이것은 코소보라든가 콩고 내전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에게서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보노보 사회에서는 이러한 ‘유아 살해’를 찾아볼 수 없다. 또 늙거나 병든 동료, 또는 다른 장애를 가진 동료를 내팽개치거나 적자 생존의 냉엄한 자연 법칙에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보듬고 배려하는 이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누구나가 코가 찡해 올 것이다. 처음 이사온 늙은 보노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우왕좌왕하자 젊은 보노보들이 친절하게 그의 손을 끌고 가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즐거웁다. 또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보자. 한 학자가 보노보를 대상으로 녀석이 글자판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가리키면 그 음식을 갖다주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함께 있던 다른 보노보 두 마리에게는 다이어트를 시키고 있는 중이었고 실험 대상인 판바니샤에게 음식을 줄 때마다 이 두 녀석은 온갖 난리를 떨었다. 그런데 어느 날 판바니샤가 주스를 갖다달라고 하더니 동료 보노보를 손으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 학자가 “이 주스를 쟤들에게 주고 싶니?”라고 묻자 녀석을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팔을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마치 자기가 먹는 맛있는 먹이를 동료들에게도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이 밖에도 보노보가 다른 존재를 배려하고 이해한다는 인상을 주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수컷의 힘이 아니라 모성적인 친밀성과 배려의 사회로


여기까지 읽다보면 이 보노보 사회가 힘과 완력, 폭력, 도구를 중심으로 하는 대부분의 다른 영장류 사회에서처럼 수컷 우위 사회가 아니라 친밀성, 상호 배려, 함께 살기의 대가인 암컷 중심 사회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의 새로운 모델을 찾는 여성학계에서 이들에 주목하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보노보 사회는 성, 사랑, 에로티시즘, 결혼, 출산 등과 관련해서도 기존의 모든 인류학적 가설과는 또다른 모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인원 사회에서는 수컷이 무리를 지배한다. 또한 수컷들의 무리 내 서열이 확고하여 성은 서열이 높은 개체들에 의해 독점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서열이 바뀔 경우 새로 우두머리에 오른 개체가 이전 수컷의 새끼들을 죽여버리는 유아 살해가 드물지 않게 발생하기도 한다. 어린 새끼를 돌보는 암컷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다시 새끼를 밸 수 있으므로 새끼를 죽임으로써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보노보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유아 살해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보노보 사회는 암컷 중심의 일종의 모권제적 모습을 보인다. 암컷들 사이에 좀더 긴밀한 유대관계가 이루어지는 반면 수컷들 사이에는 그러한 유대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며 어른 수컷들은 대개 집단의 주변부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물론 보노보 사회에서도 무리 내 서열이 존재하며 서열이 높은 수컷들이 보다 많은 성행위 기회를 갖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수컷의 서열은 어미의 서열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노보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잦은 성행위와 암컷의 긴 발정기를 고려하면 수컷이 어느 새끼가 자기 새끼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직까지 보노보 사회에서 유아 살해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가 소개
저자 | 프란스 드 발
프란스 드 발 (Frans De Waal) 동물행동학자인 그는 1948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위트레흐트 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에서 영장류 행동 및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여키즈 영장류연구소 리빙링크 센터의 소장이다. <선한 본능(Good Natured)>, <보노보 : 잊혀진 유인원(Bonobos: The Forgotten Ape)>, <영장류 사이의 평화구축(Peacemaking among Primates)> 등의 저서가 있다. 그의 최근 관심은 인간 사회에서 통용되는 도덕과 정의의 기원을 바탕으로 하여 이를 영장류 사이의 평화구축, 다름 아닌 음식 나누기, 사회적 호혜성, 기타 충돌에 대한 해결방법 등을 모색하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