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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지소연의 어머니 김애리 씨

우리나라 골프선수 뒤에는 아버지가 있었고,

축구선수 뒤에는 가난한 어머니가 있었네요!

우리의 자랑스런 딸들이 8월 1일(한국시간) 오후 7시

독일 빌레펠트에서 콜롬비아와 3,4위전을 하였습니다.

국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세계 3위를 차지 하였습니다.



4강 신화를 이끈 지소연의 어머니 김애리 씨

어릴 때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작고 피부가 까만 탓에 '지똥이'라고
한국미술신문


U-20 여자축구에서 6골을 몰아넣으며 여자축구 4강 신화를 이끈 지소연의 어머니

김애리 씨가 서울 동대문구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지소연이 어릴 때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작고 피부가 까만 탓에

'지똥이'라고 불렸다고 전했다 .

그러나 지금은 '지메시'로 불리며 세계 최고의 골게타가 되었다.





지소연(사진출처=지소연 미니홈피)

지소연의 어머니 김애리(43)씨는 2002년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했지만 수술후에도

난소종양 등 각종 병으로 고생을 했다. 어려웠던 살림에 건강까지 안 좋아지자

부부간 불화가 생겼고 결국 이혼까지 갔다. 이혼 후 김씨는 지소연과 지소연의 동생과 함께

기초생활수급자 정부 보조금 30만원을 받으며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었던 지소연은 현재 디스크를 앓고 있는

엄마를 위해 "성공하면 찜질방 딸린 집을 사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소연은 지난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후에도 매 경기가 끝날 때 마다 미니홈피 방문자가 폭주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FIFA 역시 지소연의 플레이를 주목했다.

FIFA는 지난 20일 '지소연과 김나래: 승리의 조합(Kim and Ji: A winning combination)의 제목의

기사에서 "지소연의 활약으로 한국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지소연은 오랜 꿈이었던 '미국 진출'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소연, 반지하 방서 여자축구 꿈을 쏘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 60㎡(약18평)인 연립주택 3층에 들어서자
상장과 트로피가 빼곡했다. 이 집을 김애리(43)씨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봉제공장에서 바느질해가며 마련한 집이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그는 반지하 셋방에 살았다.

■18평 연립

지금은 이혼한 남편과 김씨는 슬하에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뒀다.
2002년 가정에 풍파가 닥쳤다. 김씨가 자궁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여기저기 돈을 빌려 수술했지만 부부의 앞날은 밝지 못했다.
남편 역시 봉제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불화(不和)가 시작됐고, 부부는 남남이 됐다.
남매를 맡아 집 나온 김씨에게 이번엔 난소종양이 찾아왔다.
암 수술받은 지 1년 만이었다.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고 했다(禍不單行).
그 이듬해엔 내장협착증이 생겼다.

김씨가 할 수 있는 건 15살 때부터 해온 봉제공장 바느질뿐이었다.
김씨는 작은 공장을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오로지 남매 뒷바라지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도 허리를 잘 쓰지 못한다.
아이들을 등에 업고 공장일을 한 탓이다.

■ 홍일점 선수

그랬던 김씨가 26일 새벽 밤새워 TV를 지켜보다 환성을 질렀다.
맏딸 지소연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멕시코 와의 20세 이하 여자월드컵 축구 8강전에서
골을 넣은 것이다. 1―0으로 앞선 전반 28분 잡은 프리킥 찬스 때였다.

1m61인 딸 소연의 오른발을 떠난 볼은 멋지게 휘어지며 멕시코 네트를 흔들었다.
김씨는 "이 골이 엄마를 위해 딸이 보낸 선물 같았다"고 했다.
딸은 이 대회에서 6골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한 여자축구의 신데렐라가 돼가고 있다.


소연이 처음 축구를 시작한 것은 이문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짧은 머리로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축구팀에서 사내아이로 착각해
선수 모집 전단을 주고 갔다.
부모의 고집을 꺾고 딸은 남자 축구팀의 홍일점 선수가 됐다.

좋은 선수가 되려면 잘 먹여야 했다.
어머니는 그런 딸을 위해 공장에서 버는 돈의 절반을 내놓았다.
지소연 가족은 지금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다.
한 달 30만원 남짓한 정부 보조금과 엄마가 봉제공장에서 번 돈으로 이 가족은 먹고산다.

딸 소연은 갈비찜을 제일 좋아한다.
그 소릴 들을 때마다 엄마의 가슴은 뜨끔해진다.
엄마는 "소연이의 키가 1m61에서 더 자라지 못한 것이
내가 못 먹인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여자축구의 박지성으로 크다

지소연은 집념이 강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를 가르친 김광열 감독(현 고양시 코리아 레포츠 클럽 축구 감독)은
유일한 여자 선수인 지소연이 힘들까 봐 단체로 벌을 받을 때도 빼주거나
가끔 훈련에서 열외도 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소연이 "왜 나만 남자 아이들과 차별하느냐?"고 따지는 바람에
오히려 달래느라 진땀을 흘렸다. 지독한 연습벌레인 지소연은 타고난 재능도 눈부셨다.
같은 나이의 남자 아이들보다 기술적으로 2~3년은 앞서 있었다.

5학년 때는 이미 남자애들을 제치고 베스트11로 고정 출전했다.
다른 팀 감독들이 여자 아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학교로부터
"남자 선수 3~4명을 줄 테니 지소연하고 트레이드하자."는 제안이 올 정도였다.



김 감독은 "가르친 아이 중에서 남녀를 떠나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며
"여자축구의 박지성 이 있다면 바로 지소연"이라고 했다.
지소연은 동산정보고 1학년 때인 2006년에는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15세8개월)가 됐다.

피스퀸컵 국제여자축구대회를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지소연을 앞세운 동산정보고는 각종 전국대회를 휩쓴 무적(無敵)의 팀이었다.
아르헨티나 의 리오넬 메시 같다고 '지 메시'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렇게 축구만을 위해 살아온 소연이 엄마 속을 썩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고 한다.

오주 중학교(여자팀) 시절 다른 학교 축구부와 '패싸움'에 가담한 일이 있었다.
사소한 시비 끝에 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끼리 '대결'을 벌였는데,
오주중 대표로 나간 지소연은 상대방을 시쳇말로 '밟아 놓았다.'고 한다.

그 바람에 엄마는 없는 돈에 300만원을 융통해 치료비를 물어줘야 했다.
그러나 이 일로 딸을 탓하지는 않았다.
마음 여린 소연이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마음 속 응어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올해 한양여대 를 졸업하는 지소연은 엄마와 약속을 했다.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얘기였다.
지금 고2인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도 마련해야 하고
이틀이 멀다 하고 병원을 찾는 엄마도 편히 모실 생각이다.

지소연의 소속팀인 한양여대 이상엽 감독은 "어려운 형편에서 성장했지만
너무나 밝고 쾌활한 선수다. 어쩌다 상금이라도 타면 전부 엄마에게 갖다 드린다.
이런 효녀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19세 여대생 소연이 갖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지소연은 그 흔한 노트북 컴퓨터 한 대가 없다.
해외 전지훈련이라도 나가면 친구들의 컴퓨터를 빌려서 이메일을 확인해야 한다.

이번에 난생 처음으로 엄마를 몹시 졸랐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너무 눈치가 보여. 이번 대회 끝나면 작은 노트북 컴퓨터 하나 사줘."
엄마는 지소연에게 컴퓨터를 사주기로 약속했다.

엄마는 "소연이는 마음이 약하고 속이 깊다."고 했다.
"경기가 시작되면 아이가 어떻게 그리 바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소연은 엄마의 힘겨운 삶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그는
"엄마가 편안히 쉴 수 있게 찜질방 딸린 집을 사 드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선수다.
지소연 0.004% 눈물의 도전에 네티즌 감동 댓글...

지소연이맹활약을 펼쳤지만 결국독일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쉽게도4강 신화에 그쳤습니다.

이번 U-20(20세 이하) 대회는 아직3-4위전이 남아 있어최대 3위를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여자축구팀이 콜롬비아전에 승리를 하여 3위만 해도 남녀 월드컵 통산 최고의 성적이 됩니다.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할 수 있는 이번4강 독일전에서 한국팀이 보여준 5대 1 점수차는

단순한 셈법으로 보면 기대에 못미쳤습니다.

그러나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 이룬기적의 4강이란 점에서 앞으로 더 큰 희망을 보았습니다.

실제 실력차도세계최강에는 조금 모자라지만 옥석을 다듬는다면

단기간내 세계최고의 자리에 우뚝 설 날도 머지않았다고 봅니다.

지소연이 독일전에서 수비수 2~3명을 골에어리어에서 제치고 골인을 넣는 장면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단 1골이었지만 남자축구팀 선수들도 못해낸 놀라운 골이었습니다.

161Cm의 작은 키의 지소연이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빼내며

첫 번째 수비수를 제친 지소연은 순간적인 오른쪽 드리블로 두 번째 수비수 마져 제친 후

골키퍼를 피하기 위해오른발로 감아차 독일 오른쪽 골대를 갈랐습니다.

골에어리어에서 직접 수비수들과 골키퍼를 자신있게 따돌리고 골인을 넣는 배짱과 실력을 보면서

지소연을 왜 '지메시'라 부르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여자 박지성이 아니라 여자 메시와 더 닮아있는 플레이였던 셈입니다.

FIFA(국제축구연맹) 홈페이지는 한국과 독일의 4강전 리뷰를 통해 후반 19분 지소연 골을

이날 '경기 최고의 골'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아름답고 가슴아팠던 지소연과 여자축구, 그러나 희망을 쐈다.



경기가 끝난 후 지소연 관련 기사를 우연히 봤는데 거기에달린 댓글 하나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104만명 대 1414명의 차이에서 - 댓글달기 미안해라.'라는 제목으로

별빛 나그네 님이 댓글을 달았는데 이번 대회를 지켜본 국민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갈만 했습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소개해 봅니다.

104만명대 1414명의차이에서--댓글달기 미안해라. (별빛 나그네 님)

울면서 글을 올립니다.
제발 남의이야기다고 댓글 함부로 달지 맙시다.
교체멤버 조차 빈약한 선수층--왜소한 체격
짖궂은 날씨에 그라운드는 미끄럽기 한량없고
이제 20세미만 우리 청소년 국가대표선수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장한 우리딸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노트북 하나 없는 지소연
넉넉치 못한 환경에서 불굴의 의지로 일궈낸 저들에게
우리는 한없이 미안 합니다.
아시아 유일의 생존 팀 --대한민국
그녀들이 있기에 요즈음 행복했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일부 네티즌은 5대 1로 큰 점수차로 패배한 것에 비난 댓글을 달기도 하지만

지소연과 여자축구의열악한 현실을 생각하면이번 4강 신화 기적만으로도 큰 박수를

보내주어야 할 것이란 의미입니다.

실제 한국팀 선수들은 독일에 비해 왜소한체격이었지만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끝까지 열심히 싸웠습니다. 비록 점수차는 컸지만 실제 경기 내용은 크게 밀리지 않았습니다.

조금만수비력을 보완한다면 독일도 머지않아 능가할 것 같았습니다.

울면서 글을 올린다는 별빛 나그네 님이 한국 여자팀이 있어 행복했고

그녀들이 자랑스럽다고밝힌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우리모두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자 반성문일지도 모릅니다.

독일은 무려 105만명의 여자축구선수가 등록돼 있는 반면

한국은 여자축구선수가 고작 1404명에 불과합니다.

독일 여자축구선수들과 비교해 겨우0.004%의 선수로 대적한 셈입니다.

화려한 기술과 골결정력,

지소연의 플레이는 메시 보다 오히려 더 빛났다.

그 마저도 지금은 줄어들어전국 축구대회를 열기도 힘든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등을 모두 합쳐서 56개팀 밖에 안됩니다.

수천개의 팀이 있는 독일과 너무 차이가 납니다.

그런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한국 여자축구팀은 4강이란 기적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아직20세 이하로 나이도 어리기 때문에

앞으로 성인 축구무대에서 월드컵영광을 이어갈 수있어 희망은 계속 남아 있습니다.

다만 여자축구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지원과 국민들의성원이 이어져야 겠습니다.


지소연과 여자축구 선수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지소연이 지메시라고 불리지만 메시 보다 오히려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메시가 볼을 잡으면 몇 명의 수비수가 달려들 듯이

지소연이 공을 잡으면 떡대 좋은 수비수 여러 명이 에워쌓았습니다.

메시는거의 골을 못넣었지만 지소연은 스스로 골도 넣고 공간도 확보하며

다른 선수들에게 골 찬스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소연은 이번 대회 한 경기헤트트릭을 비롯해 무려 7골을 기록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남자 선수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이뻐 죽겠네요 정말.

홍명보 장학생 지소연과 여자축구,

무관심과 냉대 속에 아름답게 꽃피다.

"눈물을 거둬, 지소연. 잘 싸웠다." 독일전 직후 지소연이 눈물을 흘렸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과거 휴대폰도없었고 지금도 컴퓨터가 없다는 지소연.

그런 지소연의 최근 소식을 듣고삼성전자는 영악하게도 지소연 어머니에게

노트북과 갤럭시S 스마트폰을 몰래 보냈다고 합니다.

지소연이 뜨니까보내는 것 같아한편으로 씁쓸합니다.

지소연이소속된 한양여대 총장도 노트북을 준비해 성대한 환영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하니 역시 개운치 않습니다.

평소 지소연과 여자축구 선수들에 대해 관심과 지원을 더 많이 했다면 더 좋았겠지요.

지소연은 홍명보 장학생출신이기도 합니다.

홍명보는여러 여자선수들이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축구를 하기 때문에

도움을 줄 선수들이 많은데 자금이 넉넉하지 않아 장학금을 모두 줄 수 없어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이제는 국민의 관심이 증대된 만큼 예전 보다 좋은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번 대회 지소연은 FIFA 홈페이지에서도

'조별리그에서 최고로 빛난 별'(tournament's brightest stars)이라고 칭찬을 할 정도로

눈에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골든골 후보에도 올랐지만

9골을 기록 중인 독일 포프에게 밀리겠지만 유감없이 기량을 발휘한 지소연도 최고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지소연을 비롯한 여자축구는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비록 독일에 졌지만 0.004%의 기적을 일군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한편 미안하면서도 더 밝은 희망을 향해 큰 박수를 보냅니다.



'골키퍼' 문소리 엄마 "동대문서 장사하면서..."

밤새 지옥과 천국을 동시에 경험했다.

29일 밤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무려 5골이나 내주고 눈물을 흘리는 딸을 지켜봐야했던

어머니 백정아씨(42). 동대문시장에서 10년여간 의류와 벨트 장사를 해오며

딸을 뒷바라지해온 그녀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가게로 돌아가 밤새 일했고

아침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격려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문소리의 미니홈피에 접속했다.

그런데 비난에 파묻혀 있을 줄 알았던 딸에게 얼짱 골키퍼라는 수식어와 함께

수만여명의 팬들이 보내온 격려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무겁던 마음이 조금은 밝아졌다.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점수차가 조금만 줄었어도.... 애가 기가 죽을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었어요.

차마 전화는 못하겠고 미니홈피에다 '잘했다.

용기 얻어서 3, 4위전은 꼭 이기자'는 글만 남겼어요."

"5골 먹은 딸 기죽을까봐 걱정…"
"축구 시켜달라." 초등생 때 6개월간 매일 편지
동대문시장서 10년 의류 장사하며 뒷바라지
독일과의 여자청소년월드컵 준결승전을 통해 일약 인터넷 스타로 떠오른 골키퍼 문소리의 어머니 백정아씨는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애가 기가 죽을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문소리 미니홈피 사진. <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사진출처=문소리 미니홈피>
 ▶만년 벤치에서 대표팀 수문장으로!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 뛰는 많은 선수와 가족들이 그렇듯 문소리와 백씨 역시 힘든 여정을 거쳐왔다.
"초등학교(능곡초등학교) 때 남자 축구부 애들이랑 공 차다 축구와 인연을 맺었어요.
처음엔 저도 '여자가 무슨 축구냐?'고 안된다고 했죠.
6개월 내내 매일 편지를 쓰더라고요.
학교 성적을 잘 내오면 시켜주겠다고 조건을 걸었더니 곧바로 세 과목을 90점 넘게 받아왔어요."

창덕여중 여자축구부로 진학하면서 미드필더에서 골키퍼로 포지션을 바꿨다.
"중학교 2학년 때 키가 지금과 같은 1m75였어요. 신체조건이 좋다보니 감독님이 먼저 제안을 하셨죠.
초반 몇 년은 벤치 멤버였고 동산고 2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어요."
문소리의 대오각성 뒤에는 어머니의 정성이 있었다.
"밤새 일하고 피곤했어도 전국을 다 찾아다니며 응원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무렵에 소리가 '내가 뛰지도 않는데 왜 오냐'며 울더라고요.
그러더니 작심을 한듯 열심히 했어요.
비오는 날도 나가길래 왜 가냐고 물었더니 '비오는 날은 경기 안해?'하며 되묻더라고요."

한번 딸 자랑이 시작되니 말문이 술술 열린다.
"성적도 좋았어요. 3년 내내 성적표를 감독님이 관리하셔서 제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평소에 애들한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실 때 '소리만큼만 하라'고 꼭 예를 드셨다고 들었어요.
요즘엔 남몰래 불우아동 후원도 하더라고요. 가계부 쓴 걸 우연히 들여다보다 알게 됐어요."

그러다 두차례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다.
"한번은 어깨, 한번은 무릎 연골이 찢어졌어요.
높이 점프를 하다보니 팔을 뻗고 착지하는 과정에서 부상 위험이 따라요. 매일 울면서 힘들어했죠.
영영 못하는 게 아닌가 고민이 많았어요.
속상했지만 이걸 못 버티면 어디 가서도 못한다면서 독하게 다그쳤어요.
(소리가) 그때부터 종교를 갖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이겨냈죠."

 ▶선수 가족이 본 4강 비결은?

늘 봐온 선수 가족들이지만 29일 밤 여자축구연맹 측이 서울 축구회관 로비에 마련한
단체 응원 현장에서 재회하자 감회가 또 다른 표정들이었다.
모두들 벅찬 감동에 평소 보다 오히려 말수가 적어졌다. "출국할 때 애들이 다짐했데요.
꼭 좋은 성적 내서 여자 축구도 관심받도록 하자고. 돌아올 때는 공항에서 주목받고 싶다고."

사실 여자 축구 선수 가정의 70% 이상이 어려운 환경에서 공을 찬다고 봐도 무방하다.
"후원도 거의 없다보니 모든 걸 개인이 해결해야 해요.
다치면 수술하고 재활하는데도 돈이 많이 들고."
딸의 진로를 놓고 부부간 의견차가 많이 발생하면서 불화를 겪는 집도 적지 않다.
먼저 말하지 않으면 각자의 가족사에 대해 서로 묻지 않는 게 일종의 불문율.

그러나 시스터후드, 패밀리십만큼은 어느 종목에도 뒤지지 않는다.
"(강)유미는 부모님이 재일교포라 혼자 한국에 있는데, 친구들이 서로 챙겨줘요.
소리도 종종 외박주에 집으로 데려와 불고기, 핫케이크 같은 거 해줬어요.
집이 대구인 (이)현영이도 가끔 와요."

그래서일까.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백씨를 비롯, 선수 가족들은 내심 4강까지도 기대했단다.
"늘 경기를 보니까 실력이 많이 올라왔다는 걸 알 수 있잖아요.
최인철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축구 밖에 모르세요.
늘 공부하시고. 숙소 가까이 집이 있으신데도 거의 안 가고 애들이랑 같이 사시니까요."

 ▶문소리의 꿈은 일본 진출

문소리의 미모는 척 봐도 엄마를 빼닮았다.
백씨는 "소리가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다고 자랑하고 다니긴 했다."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사실 눈에 띄는 외모 때문인 지 문소리의 팬은 이번 대회 이전부터 꽤 많았다고 한다.
"작년 월드컵 평가전과 올 3월 한중일 동아시아대회 등을 통해 얼굴이 알려지면서 팬들이 생겼어요.
축구화 핸드폰 샤워세트 인형 등 숙소로 선물이 많이 들어와요.
가까운 일본 경기는 응원하러 가는 분도 계세요."

울산과학대 2학년에 재학중인 문소리.
가을에 신인 드래프트를 거쳐 실업팀에 적을 둬야 한다.
단짝인 지소연이 미국리그를 희망하고 있는데,
문소리의 경우는 남몰래 일본어 공부를 병행하며 내심 일본리그 진출을 소원해왔다.

 < 정경희 기자 gumnuri@sportschosun.com>


“무명가수로야간업소 뛰며 혜인이 뒷바라지”

[정혜인 어머니 공민주씨 인터뷰]

스포츠동아 | 입력 2010.07.31 07:11

넉넉지 않은 살림 10년간 홀로 키워외롭게 자란 딸 선수생활 만류도
이젠 잠자는 모습만 봐도 힘이 절로 "혜인아, 엄마 응원소리 들리지?"

무명 가수 엄마와 무명 여자축구 선수. 소설이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아니다.

바로 우리에게 뜨거운 감동을 안겨준 U-20 여자월드컵에 출전한 한 소녀의 집안 얘기다.


소녀는 어릴 적부터 또래들과 달랐다. 인형보다 장난감 총을 더 좋아했고,

순정 만화보다 운동장에서 뛰는 공놀이를 훨씬 즐겼다.


그래도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미워할까.

대표팀에선 맏언니지만 스트라이커 정혜인(20·현대제철)은

어머니 공민주(50) 씨에게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예쁘고 착한 딸일 뿐이다.


"조금 선머슴처럼 보이죠? 옛날에는 정말 늘씬했는데…." 공 씨와 대화하는 동안,

'늘씬' '날씬'이란 단어가 쉼 없이 반복됐다.


공 씨는 야간 업소에서 주로 활동하는 무명 연예인이다.

예전에는 유명 개그맨 구봉서, 배삼용, 백남봉 등과 함께 종종 코미디 공연을 함께 했지만

지금은 주로 노래를 부른다. 또한 미사리 개그 클럽에서 매니저로도 활동하고 있으니

소위 '프리랜서' 연예인이다.


살림살이는 넉넉지 않다.

수입이 많지 않아 하루 8∼9군데씩 뛰어야 한다.

저녁 6시쯤 출근해 새벽 4시나 돼야 퇴근하니,

정혜인이 합숙을 끝내고 가끔 집에 와도 자는 모습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 씨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바로 그 때였다.

"딸이 오랜만에 집에 와서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쌓인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죠.

요즘 우리 딸이 축구하는 걸 알아서인지, '너 참 딸을 잘 키웠다'라고

칭찬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공 씨는 10년 째 딸을 홀로 키웠다. 2000년 혜인이 아빠와 이혼했으나

앞서 수 년 간의 별거 생활까지 합치면 '강산이 한 번 이상 바뀌는 시간'을

모녀 둘이 함께 지낸 셈이다.


그래서일까. 공 씨는 외롭게 크는 딸에게 힘든 운동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집념과 열정, 재능은 숨길 수 없었다.

딸은 엄마 몰래 홍제초등학교에서 남자 선수들과 공을 찼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여자도 축구로 성공할 수 있다"고 일러준 이가 당시 오주중을 이끌었던

최인철 감독이다. 오랜 제자와 인연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시련도 많았다.

오주중-동산정보고-한양여대를 거쳐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WK리그 현대제철에 입단했으나 작년 3월 왼발 피로골절이 왔다.


하지만 재활에 성공, 다시 그라운드에 선 정혜인은 독일 무대를 누볐다.

"엄마로서 부족한 게 많아요. 딸이 뛰는 시합도 많이 가지 못했죠.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찾을 때가 있었는데, 사실 제 목소리가 엄청 크거든요.

이름 없이 '잘한다'만 외쳐도 혜인이는 '엄마가 왔다'고 알 수 있데요.

이번에도 멀리서나마 제 목소리가 전해졌으면…."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